불행하진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아

<스테르담 심리 에세이>

by 스테르담

오늘도 이성(理性)적인 '척'하면서 사느라 다들 고생했을 것이다.

현대 사회는 우리를 감정적으로 살게 놔두지 않는다. 감정을 내보이면 '하수' 취급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알게 모르게 감정을 숨기는데 익숙해져 있다. 정확히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다. 감정은 어떻게든 표출되게 되어 있다. 억압된 감정은 언젠가 폭발한다.


감정의 폭발은 작게, 그저 그렇게, 또는 한 번 크게 발발한다.

삶의 요소요소에 지뢰처럼 널려 있다. 상사에게 들이 박거나, 가족이나 친구와 갈등이 생기거나. 갑자기 눈물이 나거나, 필요하지도 않은 걸 산더미처럼 살 때. 무기력하게 방구석에 틀어박혀 짧은 동영상을 좀비처럼 넘기는 날도 그렇다.


'이성(理性)'의 역설을 깨우쳐야 한다.

아니, '이성의 변질'이라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본능과 감정에 충실했던 인간이, 사회제도를 통해 질서를 세워가는 과정에서 '이성'은 지대한 역할을 했다. 문제는 '이성'과 '감정'의 불균형이다. 언제나 그렇듯 균형이 깨지면 문제가 발생한다. 극도로 '감정'을 숨겨야 하는 숨 막히는 삶을 살면서, 우리는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있지만 그만큼 자신의 감정은 돌보지 않고 있다.


보복 운전을 하는 사람을 보고 우리는, '아니, 그 한순간을 못 참아서 저러냐...'라고 말한다.

그러나 막상 무례하기 짝이 없는 운전자를 만나면,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나며 어떻게 보복할까를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현대인의 가장 큰 문제는, 타인의 감정을 이성적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반면, 막상 자신에게 같은 일이 생기면 감정에 호소하며 그에 대한 반응을 합리화한다.


타인의 감정은 '생각'하고, 자신의 감정은 '느끼기' 때문이다.


감정을 내보였다고 남을 하수 취급하는 사람을 보면, 나는 그들의 이중성을 (속으로) 반박한다.

그러한 사람에게 대놓고 반박해야 이해할 리 없으니까. 아니, 그러할 시간에 내 감정을 돌아보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다.


어른이 될수록, 나이가 들수록 더 이성적이어야 할까?

아니라고 본다. 진정한 성숙은 감정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고 건강하게 다루는 능력에서 온다. 그러니까, 진정한 '이성'의 발휘는, '감정'과 연계되어 있다. 그저 이성적인 척하는 것은 위험한 자기기만이다.


감정은 인생의 나침반이다.

'행복'과 '불행'도 감정에 기인하지 않는가. 그로 인해 우리가 내리는 결단과 다짐, 그리고 선택이 생각보다 더 크게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감정이 가리키는 방향은 무엇인가. 나는 감정을 제대로 돌아보고 있는가.


이 각박하고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용기와 강함이 필요하다.

진정한 용기와 강함은, 감정을 외면하고 억누르는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는 능력에서 온다.


행복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고.

불행하지 않아야 한다는 당위에서 벗어나야 한다.


행복하면 웃고.

불행하면 울면 된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불안해할 필요 없고.

운다고 부끄러울 일도 아니다.


행복에 대한 허락을 누군가에 구할 필요 없는 것처럼.

불행과 슬픔에 대해서도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다.


행복과 불행의 중간 어디 즈음.

우리네 자아는 존재하고 있다.


이제는 '나'라는 사람을, '이성'이라는 압박에서 벗어나.

'감정'에 충실하게 돌아봐야 할 때다.


시대가 하 수상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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