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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기계 맞지 뭐.

<스테르담 심리 에세이>

by 스테르담
"힘드냐?"
"네."
"가족들은 잘 지내고?"
"네"
"그러면 됐다. 그러려고 힘든 거 아니냐 우리."


주재원의 삶은 녹록지 않다.

물론, 소위 말해 좋은 꿀 빠는 조직이나 포지션도 많다. 대개는 실적과 관계없거나, 마감이 없는 곳이 그렇다. 한국 돈도 아니고, 외화를 벌어야 하는 주재원은... 그러니까 실적에 직결되고 늘 마감이 있는 사람은 하루하루가 고통이다. 숫자가 좋을 때야 허허실실 할 수도 있겠지만, 심지어 그러한 때에도 늘 불안을 달고 살아야 한다. 경제 현황과 사업이라는 상황은 늘 굴곡이 있게 마련이며, 오늘 좋다고 내일도 좋으리란 법은 없기 때문이다.


다운 사이클에 접어들어 실적이 늘 좋지 않았던 언젠가.

늘 호통만 치던 상사가 위와 같은 말을 했다. 그리 큰 위로가 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해는 되었다.


그래. 그런 거지 뭐.


때로 나는, 내가 돈 버는 기계와 같단 생각이 든다.

물론, 이건 내 선택이었다. 아이 둘이 태어났을 때, 나는 아내와 상의하여 역할 분담을 했다. 육아와 집안일은 철저히 아내가. 경제 활동은 또한 철저히 내가. 전통적인 방식(?) 또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역사적으로 증명된 생존의 방식이니까. 다양한 삶과 선택이 있을 수 있지만, 어찌 되었건 우리 가족의 결론은 그랬다.


그래서 '돈 버는 기계'란 말이 나와도 난 억울하거나 서럽지 않다.

돈 버는 기계가 맞기 때문이다.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 혹자는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으로 인해 직장인은 행복한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월급이 꼬박꼬박 하거나 따박따박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이 그러한 것이다. 월급이 끊기지 않았다는 건, 계속하여 출근하고 퇴근했다는 뜻이니까.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기계'가 되어야 할 때가 분명 있다.

어떻게 그 많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다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출근할 때 전용 냉장고에 넣고 온 '간'과 '쓸개'외에도. 직장엔 또 나만의 전용 냉장고가 있는데, 그건 바로 '심장'을 위한 것이다. 심장이 오랜 시간 없으면 안 되니, 회사까지는 가져가지만... 그럼에도 잠시 떼어 놓고 있어야 할 때가 있다.


인격 모독.

자존감의 추락.

쓸모에 대한 공격.

어제의 동료가 적이 되는 오늘.

숫자에 따라 달라지는 시선의 온도들.


제정신, 아니 제 심박수로는 감당해 내기 어려운 것들이다.

고로, 나는 잠시 기계가 되기로 한다.


심장을 떼어 놓고.

월급이 끊기지 않게.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게.


퇴근길에, 빵이니 치킨.

과일을 사갈 수 있다면.

그리하여 가족이 함께 모여 그것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여전히, 심장은 뛰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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