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인가 독거노인인가?

<스테르담 심리 에세이>

by 스테르담

수험생 자녀가 있는 해외 주재원이라면, 방학은 아내와 아이들을 한국으로 보내야 하는 시기다.

달리 말하면, 혼자 있게 되는 시간. 약 한 달 반에서 두 달을 그렇게 떨어져 지내는 것이 소위 말해 국룰이다. 아이들은 한국 교과 과정을 따라잡아야 하고, 아내는 온 신경이 아이들의 교육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해도 그걸 막을 도리가 없다.


혼자 남겨지면, 고백하건대 일종의 자유를 느낀다.

집을 어질러도, 먹고 남은 그릇을 그냥 둬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소파와 물아일체가 되어 하루 종일 누워 있어도 죄책감은 덜하다. 가족을 위해 무얼 해야 한다는 강박도 잠시 내려놓는다.


밥은 안치고, 다 된 밥을 작은 용기에 소분하여 냉동실에 넣는다.

빨래는 일주일치를 몰아, 일요일 오후 5시에 세탁기에 돌린다. 그 시간에 빨래를 돌리는 건, 일종의 '전환 의식'이다. 일요일 오후 5시는 참 애매한 시간이니까. 어디를 다녀오려 해도, 또 무언가를 시작해려 해도 애매한. 빨래를 돌리기로 마음먹고, 결국 월요일을 준비하는 모드로 돌입하는 것이다.


중년을 훌쩍 넘기니, 외로움은 친근하다.

아니, 오히려 더 고독을 즐겨야 하는 때다. 가장이라는 무게, 겹겹이 쌓인 사회적 페르소나, 한 치 앞을 모르겠는 인생. 도파민에서 잠시 벗어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을, 나는 어느새 즐기고 있다.


일주일이 지나고.

별로 사용하지도 않은 화장실 변기엔 얼룩이 올라오고. 고된 하루를 마치고 문을 연 집안이 어둡게 나를 맞이할 때. 나는 가족의 온기를 이미 그리워한다. 야근 후 돌아온 나를 따듯하게 맞이해 주는 아내와 녀석들. 그게 없으니 공허함은 집의 평수보다 크게 다가온다.


회사 동료들과 밥을 먹다 우리를 지칭하는 단어에 대해 이야기했다.

'총각'은 거리가 멀다. 이미 쉰(?) 외모로 총각 행세를 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러할 객기도 없다. 그러다 '독거노인'이란 말이 나왔다. 반대는 없었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를 짠하게 바라보기까지 했다. 그날, 한국 식당에서 남은 음식은 모조리 싸갔다. 주말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혼자 있어보면, 많은 것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가족의 소중함은 물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자발적 고독과, 타의적 외로움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진정으로 외로움을 달래야 하고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있다. 우리라고 또 그렇게 되지 말란 법도 없다. 경제적인 이유든, 관계의 이유든, 본질적인 존재로서의 이유든. 우리는 언젠가 혼자가 되는 날이 분명 온다. 어쩌면 지금이 그러한 날을 위한 예행연습이 아닐까... 란 생각을 하며 웃음 짓는다. 그 맛이 꽤나 쓴 이유는 무얼까.


이미 나는 가족이 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공항에 가 아내와 아이들을 마주하면, 한 명씩 꼭 안아주어야지.


홀로 그 모습을 생각하며, 하루라도 그날을 더 앞당길 요량으로 나는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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