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지서

<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by 스테르담

긴 출장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찌른 적이 있다.

내가 사는 곳은 해외이고, 가족들은 한국에 있는 상황.


집에 들어가 보니, 냉장고에서 썩은 물이 줄줄 새고 있었다.

전기가 끊겨 냉장고가 꺼졌더랬고,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맡은 사체 썩는 냄새의 궁금증이 풀리던 순간이었다. 제발 우리 집이 아니기를 바랐건만.


우편함에 가보니 전기세 고지서가 있었고, 납입 기한은 일주일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냉장고 문을 열었던 기억은 대단히 끔찍했다. 이곳에서 더 설명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나는 때로 생각한다.

이것처럼, 혹시라도 내가 지불하지 않은 그 어떠한 삶의 고지서가 있는 건 아닐지. 그렇다면 전기가 끊기거나, 물이 나오지 않거나, 가스가 더 이상 공급되지 않음으로 일어나는 끔찍한 상황들이 나에게 일어나는 건 아닌지.


삶엔 분명 고지서가 있다.

내가 사용한 무엇이거나, 누군가를 향했던 나의 선의와 악의, 내가 한 노력과 하지 않은 게으름과 같은 것들. 후회와 미련, 행복과 기쁨.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복잡 미묘한 삶의 비용들.


이것들을 누가 어떻게 정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들은 고지서가 되어 삶의 어느 순간에 우리에게 청구될 것이고 그것을 주의 깊게 살피지 못하면 납입일을 지나쳐 더 큰 무엇으로 감당해야 날이 올 수 있다.


그리하여 나는 삶의 중간중간, 마음의 결산을 하거나 삶을 돌아보는 일종의 의식을 갖는다.

이것을 해내는 가장 쉽고도 쉬운 방법은 바로 글쓰기다. 삶의 속도를 잠시 낮추고, 주위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는 시간.


때론, 삶의 고지서가 수북이 쌓여 있는 걸 발견한다.

하나하나 그것을 열어보며, 비용과 납입일을 살핀다. 만족과 후회, 사과와 미련, 추억과 기억 사이를 오가며 그것들의 비용을 정산하는 시간은 꽤 의미가 있다.


고기의 피가 흘러내리고, 썩어 말라비틀어진 음식들을 청소하며 많은 구역질이 났지만 나는 그 어떤 '정화'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지금 내 마음에도 그 어떤 것들이 썩어 문들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이라도 발견하여 지불할 건 지불하고, 청소할 건 청소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것들의 연속이 결국 삶이니까.

고지서는 내가 했던 무언가를 알려주는 소중한 정산서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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