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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Feb 18. 2017

글 쓰는 이에 대한 시선

시선을 결국 나를 향하고, 나는 나를 표현한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어언 1년 반 정도가 지났다.


뭔가 너무 소비적으로 사는 것 같아서 시작한 일이었다. 마음 한 편의 저 멀리, 무의식 속에서는 이미 수십 년을 묵혔던 무엇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였는지 글쓰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많은 것들을 토해냈다. 이리 써보고 저리 써보고. 써 올리는 글의 수가 많아졌고, 조회수는 높아 갔으며, 구독자도 늘어갔다. 요즘은 책을 많이 읽지 못해 글을 쓰는데 꽤나 애를 먹고 있는 것 빼고는, 글쓰기는 나에게 큰 즐거움이다.


사람들에게 글을 쓴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바라보는 시선이 사뭇 다르다. 또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단하다'라는 말을 한다. 그리 바쁜데 언제 그런 걸 쓰느냐고 한다. 나는 술과 담배를 안 하니 스트레스를 글쓰기로 푼다고 대답한다. 그것에 익숙해졌다. 익숙해지니 그것이 사실이 된다. 참 재밌다.

또 어떤 사람들은 왜 외도를 하느냐고 한다. 직장인이라는 직업이 있는데, 글을 쓴다는 것이 외도를 하는 것이라 한다. 이것도 재밌다. 바라보는 시선이 참 다양하다.

회사의 선배들에게 말했다. 단박에 들려오는 소리. "너 요즘 일안 하냐?", "한가한가 보네?", "일이 잘 풀리나 보네?", 이건 좀 그렇다. 다시 버릇처럼 읊조린다. 나는 술과 담배를 안 하니 스트레스를...


조금의 변화도 생겼다.


어느 한 출판사가 나에게 연락을 했다. 내가 쓰는 글 중 하나를 책으로 내잔다. 좋았다. 연락이 안 왔으면 내가 출판사를 좇아 다녔을 것이다. 황송할 따름이다. 계약까지 마치고 마감기한이 다가오니 정말 작가가 된 것 같다. 중압감이 제법이다. 사실 지금도 책을 써야 하는데 이러고 있다. 어찌 되었건 글을 쓰니 생긴 변화다. 막연하게 언젠가 책을 한 번 내야지... 란 생각이 현실이 되었다. 글을 한 번 써야지...라고 생각만 했던 수십 년의 세월을 탓해본다. 아니, 나 자신을.

어느 다른 곳에서는 카피라이팅을 의뢰한다. 나를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다. 뭘 믿고 나에게 일을 맡기는지 모르겠지만, 부끄러운 마음으로 써 내려간 카피는 어느새 어디선가 사용되고 있다. 또 나에게 '기고'라는 걸 부탁하기도 했다. 물론, 대단한 건 아니다. 요즘은 글 쓰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나이와 경험을 불문하고 필력이 대단한 사람들이 도처에 널렸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시선은 나를 향한 시선이다.


존경하는 김훈 선생님은 행운아다. 글을 왜 쓰냐고 여쭈었더니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하신다. 자신을 표현했는데, 그것에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감동을 받는다. 누군가의 표현을 열렬히 읽는 사람들로 인해 부와 명성도 쌓았다. 그저 자신을 표현한 것뿐인데 말이다.

글쓰기로 부와 명성을 쌓지는 못했지만, 난 그것에 동감한다. 수십 년 전부터 가슴속 저 멀리서 스멀스멀 올라오던, 언젠가는 글을 써야지 했던 작디작은 목소리는, 보잘것없던 의지는 바로 나를 표현하고 싶었던 욕망이었던 것이다. 나를 표현하려면, 나는 나를 봐야 한다. 시선을 나로 향해야 한다. 소크라테스의 말이 괜한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 그게 먼저다. 솔직히 답은 없다. 여전히 찾고 있다. 시선을 나로 향했다는 그것만으로 의미는 있다. 그리고 써 내려간 글들을 돌아보면, 그래도 나를 표현하려 애쓴 것은 맞는것 같다.

부와 명성을 쌓았다는 것, 그리고 비교할 수 없는 필력의 차이를 제외한다면, 나는 김훈 선생님과 다를 바 없다. 아, 나는 그분보다 좀 젊다. 아니, 덜 나이 들었다. 어쨌든, 나를 표현하기 위해 쓰는 글들이 많아진다는 건 참 좋다. 그만큼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의미니까.




김훈 선생님께서 주례를 서주셨을 때 말씀하셨다. 행복한 가정은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그것이 가장 근본이라고. 김훈 선생님의 책을 한 두권 읽어보면 안다. 이것이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 그분의 경험에서 뼈저리게 나온 이야기란 걸. 솔직히 나중에 언젠가, 아니 지금이라도 나는 나를 표현하는 글들이 그분의 것 이상으로 유명해지고 각색되어 후일에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길 기대한다. 무엇보다 그 과정으로 나아가는 중에, 나를 바라봐야 하는 시간,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나게 될 또 다른 나의 모습이 기대된다. 그러다 보면 뭐가 보여도 보일 것이다. 뭐가 돼도 될 것이다. 자기암시다. 나에게 시선을 향하니, 그래 지금 필요한 건 이 자기암시였나보다.


스스로에게 보내는 응원.

나 아니면 아무도 보내주지 않을 그것.


그래서, 난, 글쓰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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