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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30. 2016

글을 쓰고 싶을 때

두려울수록 좋은. 삶을 달리 볼 수 있는 기회.

글쓰기는 두렵다.

그것도 매우 두렵다. 시작해서 끝을 맺지 못할 거라는 그것 때문에, 시작조차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는 자신은 글쓰기에 소질이 없다고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 글쓰기와 자신을 이번 생에 철저히 구분 짓는 경우다. 그러한 사람과 그러하지 않은 사람을 굳이 나눌 필요는 없다. 모든 번뇌와 고민, 그리고 그 두려움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안에도 일어나는 일들이니까. 좋은 걸 알면서도 안 하고, 못하는 게 우리네 삶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글 쓰는 것이 좋은 거란 걸. 독서도 좋지만 무언가를 음미하고 표현하며,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끄적이는 것. 글을 쓰고부터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번뜩이는 인사이트가 많아진다는 거다. 사물을 달리 본다. 사람을 달리보고, 시간과 공간을 달리 본다. 뭐 하나라도 영감과 맞닿아 글의 주제로 승화되지는 않을까 안달한다. 무언가에 이리 안달해본 적이 있는가 싶다. 사랑에, 사람에게 그랬던 것 이상이다. 그래서 짜릿하다. 하나의 영감이 떠올라 그것이 주제가 되어 기, 승, 전, 결을 막힘없이 써 내려갔을 때의 쾌감은 어마하다. 글의 내용과 질은 차치하고서라도, 다른 사람이 몰라주어도. 스스로에게 전해지는 그 감정은 느껴보면 알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중독되어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아, 나는 다시 그것을 느끼고 싶다. 그것에 취하고 싶다.


문득, 글을 쓰고 싶어 질 때가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말이다. 깜냥의 여하를 막론하고 그저 지르고 싶을 때. 시작해서 끝이 어떻게 끝날지 모르고, 어떻게 맺어야 할지 미리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당장 쓰지 못할 때는 떠오른 한 단어라도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 놓는다. 성격이 칠칠치 못해 볼펜과 메모장을 들고 다닐 리가 없는 나다. 뒤통수를 딱 때리는 영감이 떠올라도, 적어 놓지 않으면 당최 나중엔 생각이 나질 않는다. 어떤 때는 적어 놓은 단어를 보고도 한참을 갸웃거리기도 한다. 그 모습이 참 한심하다.




스멀스멀하게 올라오는 '글 쓰고 싶다'라는 느낌. 그거 참 신비로운 느낌이다. 머리 속 안이 간질간질하고, 손가락에 느껴보지 못한 근육의 감각이 일어난다. 식욕과 성욕에 버금가면서도 뭔가 다른 느낌이 색다르다. 물론, 그렇게 시작하고도 첫 문장에서 애먹거나, 아예 첫 단어를 고르지도 못해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다. 몇 줄 쓰고는 포기해버리는 것도 여러 번. 새삼, 위대한 작가들의 대단함을 변명 삼기도 한다. 나는 대단하지 않으므로 여기서 잠시 쉬어도 된다는 생각으로. 비겁하지만 위안이 제법 되기도 한다.


내가 글을 쓰고 싶어 질 때는...


첫째,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을 때

사랑, 만고의 진리이자 숙제이며, 영원불멸한 불가사의다. 사골도 이런 사골이 없다. 인류의 기원과 더불어 함께해 온 이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 (요즘은 사물이나 동물, 즉 사람과 무엇이라도 그 사이)에 대한 일인데 말이다. 특별할게 뭐 있을까. 사랑에 아파하고, 목말라하고 그리고 행복해하고. 로미오와 줄리엣, 또는 러브 액추얼리를 시대마다 또는 해마다 틀어도 지루하지 않은 것이 사랑의 힘일지 모른다. 더불어 인류를 향한 신의 사랑도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이 인류의 삶과 함께 한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범주는 작다. 첫사랑과 짝사랑, 그리고 뜨거운 사랑이 주를 이루었지만 부모가 되고 나서는 자식에 대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더불어, 자식을 보며 느끼는 나의 부모에 대한 존경과 아련함까지. 신파적인 사랑은 물론, 살아가며 바뀌는 나의 역할에서 느끼는 '새로운 사랑'의 감정. 그것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고 싶게 만든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사랑'이란 글을 백지에 써 놓고 무언가를 쓰라고 한다면 열에 아홉은 줄줄이 무언가를 써 내려갈 것이다.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끝까지 써보면 좋겠다. 사랑이란 소재는 그렇게 시대를 초월하여 반복되고, 또 존재하니까.


둘째, 여행할 때 또는 다녀왔을 때

여행, 참 할 말 많다. 요즘은 보통 사람들도 자신의 책을 출간하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이 되지 않아 버렸다. 그중 가장 많은 소재가 아마 여행일 것이다. 여행은 바이러스와 같이 전염되고, 또 삶의 마스터 키와 같은 역할도 한다. 같은 곳을 가도 느끼는 바가 다르고, 떠올리는 것들이 천차만별이기에 표현의 크기는 더해진다. 가끔은 여행에서 무엇을 보고 느껴야 하는지에 대한 강박관념들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잠시 그것을 내려놓으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비행기를 탈 때, 운전을 하며 장거리를 이동할 때, 그리고 구경하고 사진 찍다 지쳐 잠시 어디에라도 앉아 목을 축이고 살뜰한 바람을 느껴보면 그렇다. 그 순간을 잡고 싶어 떠오르는 생각이 아마 '글쓰기'일 것이다. 사진으로 장소를 기억한다면, 글로 감정을 박아놓기 위함이다. 실제로 가끔 여행 중 또는 다녀와서 쓴 글을 다시 보면, 그때의 감정이 확연히 다가올 때가 있다. 그건 사진과 또 다른 느낌. 감성적인 기억이 사진의 물리적 묘사를 뛰어넘는 순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은 사람을 일상에서 한 걸음 떨어져 스스로를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여행이 필요한 것이고, 그것이 여행의 묘미다. 그래서 여행 중 얻게 되는 소재와 영감은 평소보다 더 풍성한 경우가 많다.


셋째, 삶이란 걸 느낄 때

그 외에도 많은 이유들이 나로 하여금 여기에 적으라고 도사리고 있지만, 세 가지로 압축하기 위해 나는 '삶'을 적었다. 그 외의 것들은 '나를 표현하고 싶을 때', '스트레스받을 때', '힘들거나 기쁠 때 그리고 슬플 때', '멋진 문장이나 단어가 떠올랐을 때' 등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러한 모든 것이 '삶'이라는 범주에 속한다고 한다면, 도사리고 있는 그 이유들도 꼬리를 내리고 동조할 것이다. '삶'이란 많은 것을 양산해 내고 돌이켜 깨닫게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더 풍성해지는 지난날에 대한 그림움과 앞 날에 대한 두려움은 글의 소중한 재료다. 그리고 잊고 있던 '현재'라는 것에 눈을 돌려보면 그것은 더욱더 풍성해진다. 우리네는 과거에 묻혀 미래를 잊고, 미래를 꿈꾸다 현재를 놓지고, 과거 때문에 현재를 발목 잡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러한 소재와 이야기들은 나로 하여금 펜을 들게 하거나 자판을 두드리게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살아갈수록 우리는 또 다른 역할과 마주하게 된다. 이때 느끼는 감정과 깨달음이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향신료와도 같다. 자식일 때는 몰랐던 부모 마음, 남자와 여자의 역할 변화, 아직 어린 나이지만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나. 페르소나 뒤에 감춰진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우습기도 하고, 비겁하기도 하고 또 한 없이 가여워지기도 하니 어찌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머릿속에 글을 한 번 써보자고 했던 것이 십수 년 전이었던 것 같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이제 불과 몇 년. 글을 쓴다고 해서 항상 멋진 작품이 나오거나, 수많은 팬을 거느리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것을 목적으로 했다면 나의 깜냥은 글쓰기를 시작조차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훈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글 쓰는 목적은 '나를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세상엔 나를 표현하는데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몇몇의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표현하는 자신은, 세상을 투영하고 많은 이들의 공감과 감성을 건드려 삶에서 느끼지 못한 촉촉한 그 무언가를 전해주는 또 다른 수많은 자신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유명하고 칭송받는다.

나 또한 '나를 표현하기 위해' 시작한 글 쓰기라는 것은 그들과 다르지 않다. 글을 써가며 깨닫고 느끼는 이전과는 다른 삶의 요소요소는 나에게 어쩌면 축복이다. 글이 막혀 답답할 때, 머릿속이 하얘지는 하얀 종이 앞에 어수선한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할 것이다. 써지지 않는 글에 미련을 가지기보다, 어떻게 하면 '나를 표현'할 것인지. 말 그대로 나 하나만 표현하고 끝이 날 것인지, 아니면 칭송받아 마땅한 그들처럼 언젠가 나 아닌 또 다른 자신들을 건드려 그들에게 삶의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을지는 살아가면서 알게 될 것이다.


멀리 바라보되, 지난날을 벗 삼아 현실에 충실하다 보면 보일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와, 써야 하는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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