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직장인, 불행 프레임을 벗어나야 한다.

직장인으로서 행복하지 못하면, 나의 행복도 없다.

by 스테르담
스스로를 행복하다 말할 사람 과연 몇이나 될까?


사람은 기본적으로 행복을 추구한다.

왜 태어나 무엇 때문에 사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존재지만 분명한 건 우리는 기분 좋은 것을 추구하고 그 끝엔 행복이 있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거 철학파 중에는 '쾌락주의'도 있다. 이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이름은, 인생의 목적은 '쾌락'이고 이것은 최고의 선이라고까지 칭했다. 이 쾌락주의는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에 영향을 미쳤고, 제러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은 쾌락의 양과 질에 대한 이론을 내세우는 열심을 보였다. 세월이 흘러 현대에는 '주관적 안녕감'의 개념에 기반을 둔 '긍정심리학'이 그 대를 잇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행복하다 말할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인류의 시초부터 과거 철학자, 현대의 심리학자들도 사람의 행복에 대해 연구하지만, 행복은 근본적으로 추상적이고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알아내려야 알아낼 수가 없는 관념이다. 내가 행복이라고 규정했던 것들도, 시간이 흘러 되돌아봤을 때 아닐 수도 있다. 반대로,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또 언제에는 오히려 행복한 일이 아니었나 생각할 정도다. 행복은 순간이어서 잡아 놓을 수도 없고, 잡아 놓으려 하면 더 불행해지는 아이러니를 겪으면서도 사람들은 오늘도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 나아가고 있다.


그러니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스스로를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을 나는 거의 보지 못했다.

만약,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행복의 정도는 널뛰기를 하는 주파수와 같이 지나쳐갈 것이며, 그렇게 말하는 그 순간에도 내가 정말 행복한 것인가에 대한 합리적 의심은 가능하다. 그저, 우리는 행복하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지금 행복한 사람이라 말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렇게라도 해야 우리는 행복에 가까워질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는 게 맞다.


직장인은 왜 불행의 아이콘이 되었나?


여기 한 존재가 있다.

당최 '행복'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 우리네 직장인들이다. 직장인이 왜 불행의 아이콘이 되었는지를 발해보라면 아마도 수백 가지가 튀어나올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타의성' 때문이다. 이 단어 안에는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다. 내가 원하는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하고, 출근하고 싶지 않은 날에도 꾸역꾸역 일어나 나아가야 하며,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 앞에서 웃음을 보여야 하는 일을 방학도 없이 매일을 반복해야 한다.


"무슨 일 있어? 요즘 왜 이렇게 얼굴이 안 좋아 보여?"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스테르담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직장인, 작가, 강연가의 페르소나를 쓰고 있습니다. '강한 영향력을 나누는 생산자'의 삶을 지향합니다.

1.4만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4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42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매거진의 이전글제가 이룬 것보다 항상 더 많이 불안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