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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도) 경적은 짧게 한 번만

<스테르담 심리 에세이>

by 스테르담

운전하다 보면 감정의 삼라만상을 모두 경험할 때가 있다.

감정을 계절에 비유한다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뒤죽박죽 세차게 몰아치는 것과 같달까. 고백하자면 때론 이러다 생명을 해할 수도 있겠다는 스스로도 무서운 분노의 경지에 오를 때도 있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왜 운전을 하면 유독 더 화가 치미는 것일까. 온순하던 사람들도 운전대만 잡으면 왜 그리 난폭해지는 걸까.


내 결론은 다음의 두 가지다.

첫째, 운전대를 잡는 모두는 조급해진다.

둘째, 도로 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목숨과 직결되어 있다.


첫째부터 돌아볼까.

자동차는 문명의 이기(利器)다. 대개의 '이기'는 제약이나 불편함으로부터 온다. 먼 길을 안전하게 빨리 가는 것. 자동차의 본질이자 목적이다. 그러니 운전대를 잡으면 우리는 '효율'이라는 단어에 매립된다. 빨리 가봤자 5분 차이인데 신호 하나에, 끼어드는 앞 차에, 내 차선만 느리다는 이유로 조급해진다. 조급한 마음이 하나의 공장이 되어, 분노를 대량 생산해내는 방식이다.


둘째.

차는 빠르고 무겁다. 사고가 나면 인명 피해로 이어진다. 고로, 운전하다 어떠한 안전의 위협을 받았다면 '목숨이 위험했다'는 기제가 발동되어 분노의 정당성에 기름을 붓는다. 보복운전이나 위험천만하게 도로 위에서 내려 서로의 멱살을 잡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급함과 나의 생존.

이 둘이 직결되어, 도로 위에선 모두가 민감하고 또 모두가 쉽게 분노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노를 촉발시키는 아주 쉬운 방법이 있다.


소위 말해 발작 버튼이랄까.

그건 바로, '경적'이다.


대개의 경적은 분노를 동반한다.

분노를 동반한 경적은 길고 강하다. 경적을 누르는 사람은 자신이 정당하다고 믿고, 그걸 듣는 사람은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일이냐고 생각한다. 경적의 본래 목적은 알림으로 사고를 방지해 주는 것이지만, 현대 사회에서 그것의 목적은 분노 표출이 된 지 오래다.


나름의 실험을 해봤다.

정말로 상대가 잘못했을 때. 길게 누른 경적과 짧게 누른 경적의 차이를. 눈에 띄게 그 둘은 달랐다. 욕하며 길게 누른 경적엔 거의 모두가 맞대응을 하거나, 보복 운전을 하려 하거나, 같이 경적을 눌러댔다. 그러나, 아무리 황당한 일을 당했을지라도 짧게 경적을 누르고 나면 상대는 자신의 잘못을 인전하고 비상등을 켜 미안함을 표시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어차피 내가 한 욕은 상대에게 들리지 않는다.

그 욕은 내 입에서 나오지만, 온전히 듣는 건 역설적으로 나 자신이다. 분노를 한 껏 담아 길고 강하게 누르는 경적 또한 내 심박수와 건전하지 않은 호르몬을 폭발시키는 생산적이지 않는 행위다. 어차피, 나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 상대방에겐 그러할 수 있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실제로, 내가 상대방과 같은 실수를 다른 차에 분명하게 될 날도 올 것이다.


고로.

아무리 미워도.

경적은 짧게 한 번만.


살짝 터치한 경적에, 내 분노의 마음도 한 결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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