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도 글쓰기로

<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by 스테르담

글쓰기를 지속하다 보니, 글쓰기로 할 수 있는 것들이 꽤 많아졌다.


최초의 글쓰기는 대개 '기록'으로 시작된다.

다시, '기록'은 '일기'로 발전한다. 일기는 감정의 해우소다. 기록에 감정을 더하면 일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무언가 깨달음이나 메시지를 담게 되면 에세이가 되고, 여기에 논리나 지식을 더하면 또 다른 글이 된다.


정리하면, 글쓰기엔 감정과 생각, 지식과 배움이 복합적으로 담기게 되고 그에 따라 글의 종류가 갈리고, 반대로 어떠한 글을 쓰려하느냐에 따라 무엇을 담을지를 구상하면 된다.


나는 논리적이고 일목요연한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하지만, 조금은 더 많이 감정에 기반한 글을 쓰는 걸 좋아한다.

글에 감정을 담고, 감정으로 글을 쓰면 무언가 치유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슈퍼히어로의 능력이 몸을 재생하고 치유하는 능력이라면, 나는 글쓰기의 능력이 마음과 생각을 재생함으로써 슈퍼히어로의 능력에 버금간다고 믿게 되었다.


나는 이제 무슨 일이든 글로 써보지 않고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달리 말해, 글로 써보면 대부분의 것들이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치든, 감정이든, 상처든, 부조리든, 타인과 세상의 해괴함이든.


살다 보면 마주하는 것 중에 그리 유쾌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아마도 그것 중에 가장 유쾌하지 않은 건, 어쩌면 '이별'일는지 모른다. 이별은 왜 일어나는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도 그렇고, 죽음도 그렇고. 이별엔 여러 가지 형태가 있고, 가지가지의 모양이 있다. 어떤 것이든 이별이란 말을 갖다 붙이면 그리 불편하지 않을 수가 없다.


때로, 어떤 이별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왜 헤어져야 하는 것인지, 왜 지금인지, 왜 이 모양 이 꼴로 그러해야 하는지.


그럴 때면 나는 글을 쓴다.

이별을 인정하고 그걸 추억하기 위함이다. 모든 이별은 기억과 추억을 남긴다. 감정이 제대로 묻어나지 않으면 그것은 기억으로 저장되고, 무언가를 떠올렸을 때 감정이 흥건히 묻어 나오면 그건 추억이다.


감정은 휘발성이 대단하므로, 나는 그것을 활자로 잡아 놓으려 한다.

글로 추억을 하나하나 남기다 보면 제대로 된 이별을 할 수가 있다. 이별에 대한 아픔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니까. 이해하면 잘 받아들일 수 있다. 영문을 몰라 어리벙벙함으로 보내는 세월들이 생각보다 많다.


글을 쓰면 명확해진다.

왜 이별해야 하는지. 왜 지금인지. 왜 이 모양 이 꼴인지.


추억도 글쓰기로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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