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을 글로 바꾸기

<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by 스테르담

괴로움의 원천은 실로 다양하다.

그러나 그 모든 책임은 나의 것이다. 괴로움은 마음에서 비롯되는데, 그 마음은 다름 아닌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피해를 봐서 피어오른 것이든, 가해자가 되어 솟아오른 것이든. 괴로움은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무엇이며, 때로 이것은 과도한 압박이 되어 신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가하기도 한다.


현대인들은 말한다.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라고. 이 마음의 괴로움을 잘 다스려야, 몸도 나아질 수 있다는 말이다.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병을 설명할 때에, 스트레스나 마음의 괴로움이라는 단어를 갖다 대면 다들 쉽게 이해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도파민을 급상승시켜 잠시 기분이 나아지는 걸, 스트레스 해소라고 하거나 마음의 안정을 찾는 활동이라 착각한다. 그 결과는 잘 알 것이다. 허무하고 또 허탈하다. 급격히 채워진 무언가는, 급격히 사라진다. 허뿌연 연기로 마음을 채운 것이라고나 할까. 사라져 남는 건 무기력이며, 무기력에 지배당하는 건 마음과 영혼이다.


지금의 시대는 우리로 하여금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를 잘 주지 않는다.

너만 힘드냐? 사는 게 다 그렇다란 논리가 우리를 지배하고, 힘들어진 마음은 카드로 결제하여 소비로 무언가를 채우라거나, 멀리 여행을 떠나라고 우리를 종용한다. 돈이 돌고 경제가 숨 쉬어야 하니까. 물질적인 것들 아래에 개개인의 괴로움은 하찮은 무엇이니까. 그저 지갑을 열라고 하거나, 짧은 동영상을 보며 시간을 허비해 플랫폼의 가치를 높이는데 일조하라는 압박은 그렇게 계속된다.


괴로움은 피해야 할 게 아니라, 마주하고 바라보고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내 마음을 잘 살펴야 한다. 내 마음을 잘 살피기 위해선 나와 대화해야 한다. 나와 대화를 잘하기 위해선 혼자 있어야 한다. 사실, 우리는 생각보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고, 혼자 있다고 한들 그저 휴대폰만 바라보며 살고 있다는 걸 자각해야 한다.


내 마음을 돌보고, 혼자 있는 시간을 나와 대화하며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글쓰기'다.

글쓰기 그 자체가 본질이라고 나는 말한 적이 없다. 글쓰기는 수단이다. 나를 돌보고, 대화할 수 있는 아주 아주 아주 좋은 수단. 이 방법보다 더 나은 게 있다면 나는 그걸 했을 것이고, 지금은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을 알지 못한다.


아마도 누군가에겐, 나에게는 글쓰기와 같은 무언가를 따로 가지고 있을 것이다.

등산이든, 술이든, 커피든, 요가든 그 어떤 운동이든.


나는 괴로움을 글로 바꾸는 걸 좋아한다.

괴로움을 글로 표현하면, 어쩐지 안정이 된다.


무서워 피하던 것을 표현하는 쾌감은 생각보다 크다.

괴로움을 마주하여 대화하다 보면 방법이 생긴다. 내가 덜 괴로울 수 있을, 더 괴로워도 감당할 수 있을 그 어떤 힘도.


나는 더 이상 괴로움과 싸우지 않는다.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감당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쓰다 보면 안다.

내 마음을 돌아보다 보면 알게 된다.


지금도, 어쩐지 마음속 괴로움의 크기가 작아지고 있는 것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글쓰기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