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에펠탑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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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개.
내가 현재까지 가 본 국가 수이다.
중동과 아프리카, 유럽을 거쳐 북미와 중남미를 오가며 많은 일을 배우고, 또 때로는 실수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성과도 내왔다.
아직도 처음 출장 가는 그 날을 잊지 못한다.
해외 부서에 얼마 온 지 안되어 네가 출장 가서 뭘 할 수 있겠느냐는 의심의 눈초리와 함께 승인을 하던 팀장의 표정도 생생하다.
사실, 출장을 위한 어떠한 구실이라도 만들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되지도 않는 영어를 해가며 중동 법인의 파트너인 무스타파와 작은 일로도 큰소리로 통화하고 일을 키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당시 팀장도 어설픈 연기라는 것을 다 알면서 보내준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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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장지는 중동, 두바이행 비행기를 탔고 최종 목적지는 레바논이었다.
레바논에 도착, 차로 시리아를 거쳐 요르단까지 이어지는 출장 길.
생각해보면 첫 장기 출장이었는지라 무슨 짐을 어찌 싸야 했는지 알지도 못했고, 짐은 짐대로 거의 이민 수준으로 싸갔던 기억이 난다.
아, 또 하나, 짐은 그렇게 많이 싸 놓고는 노트북 전원은 잊고 갔던 잊을 수 없는 첫 경험.
당시에는 어리바리한 내 모습에 실망도 많이 했으나, 첫 경험이 좋은 건 돌아보며 웃어 넘길 수 있다는 거다.
밤 11시 55분 출발하여 이른 새벽에 도착한 두바이 공항은 전 세계인들이 모인 노숙의 현장, 비행기를 갈아타고 도착한 레바논은 말 그대로 중동의 파리라 불릴 만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히잡으로 뒤덮여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여성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핫팬츠와 탱크톱을 자유롭게 입고 운전을 하는 여성들의 모습이었다.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얕은 지식의 한계를 몸소 느끼는 순간이었으며, 역시 배움은 체험을 통해서 쌓여간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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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뉴스를 통해서만 본, 곳곳에서 폭탄이 터지는 곳이라고만 알려진 그 곳.
사람들은 오히려 전쟁 중인 나라, 한국에서 온 나를 걱정했다.
두바이.
돈으로 지어진 또 하나의 세계.
사막 한 가운데 화려한 도시는 영화의 세트장 같았고,
순간 나는 트루먼쇼의 트루먼이 된 것 마냥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시리아.
최근 뉴스에서 보이는 참혹한 모습은 본 적 없다.
순수한 눈망울을 가진 사람들과 극진하게 대접하는 친절한 사람들.
우리나라 70년 대를 생각나게 하는 근면한 사람들과 야경을 만들어 내는 언덕 위의 수많은 집들.
요르단.
성경에 쓰여져 있는 많은 유적지가 있는 곳.
요단강을 건너고 느보산을 올라가고, 여리고성의 터전이 남아 있으며 사해라는 평화로운 휴양지가 있어 새삼 다시 오고 싶은 나라로 나를 계속 유혹한다.
페트라라는 또 하나의 신비로운 비밀을 간직한 채.
그 외 발 길을 머물렀던 바레인, 쿠웨이트 또한 여러 중동 국가들.
아라비아 상인의 철저하고 냉혹한 장삿속과 그 내면에 감추어진 사람을 대하는 따뜻한 진심.
가끔은 정해진 시간에 모스크에서 흘러 나오는 기도 소리에 낯선 사람이 되어 다른 나라에 있음을
다시금 일깨우게 되는 것은 중동의 치명적인 매력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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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은 걸까.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다양한 지역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한국 시장을 거쳐,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과 미국 시장 등.
2년 마다 이동한 부서에서 다행히도 잘 살아 남았다.
보통 회사에서 부서 이동은 세 가지로 나뉜다.
못해서 방출당하거나, 잘 해서 뽑혀 가거나, 아니면 가만히 있는데 부서 자체가 바뀌거나.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간의 이동이 '방출'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초반에는 텃세가 없던 건 아니다.
사람에 의한, 환경에 의한, 스스로에 의한 텃세는 확실히 있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것이 회사 생활의 핵심 중 하나이다.
그래서 초조해하지 않았다.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고 우직하게 조금씩 이겨 나가고 내편으로 만들어 나가기로 했던 것 같다.
받아들임 그리고 떨쳐버림.
그때의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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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아프리카 지역 이후에 맡은 지역은 유럽이었다.
사실, 처음으로 유럽 땅을 밟은 때는 중동/ 아프리카 지역 담당자 시절이었다.
모로코로 가는 직항이 없기 때문에 파리를 들러야 했다.
트랜짓 시간은 4시간.
에어프랑스 버스를 타고 파리 시내로 잽싸게 내달렸다.
책에서나 보던 개선문 앞에서 내려 뒤도 안 돌아보고 에펠탑을 찾아갔다.
꼭대기만 보이던 에펠탑 앞에 도착해서 그 크기에 놀랐다.
생각보다 컸다.
그 순간 울컥했던 감정과 눈에 맺힌 눈물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졸업 전에 유럽 배낭여행 자금을 빚 값는데 썼었고, 죽을 생각도 했지만 살아서 에펠탑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에펠탑 그 자체도 자체지만, 말 그대로 살아서 보는 에펠탑이라 아름다웠으리라.
마냥 행복했고, 햇살이 아름답게 반사되어 비치던 센강이 생각난다.
이후에도 여러 번 에펠탑에 갔었지만 그 날만큼의 감동과 여운은 더 이상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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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북구/ 남구/ 동구 등 다양한 유럽의 나라들을 겪었지만, 가장 오래, 가장 자주 갔던 곳은 네덜란드였다.
풍차와 바람, 치즈와 홍등가 등으로 알려진 네덜란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적응하기가 매우 쉬웠다.
예로부터 중계무역으로 먹고살던 사람들이었기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인종 차별도 다른 나라에 비해 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드넓은 목초지와 한가로이 수로를 거니는 오리들이 보기 정겨웠다.
"신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네덜란드를 만들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네덜란드 사람들은 근면하고 성실하고, 폭우가 쏟아져도 개의치 않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네덜란드 외에 다른 많은 유럽 국가들을 돌아다니며 생각했다.
빚에 쫓겨 포기하고 죽었다면 보지 못했을 것들.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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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어디까지 가봤니?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유명한 항공사 광고가 있었다.
태어나서 미국 가 본 적이 없었다.
고로 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렇게 교민이 많다고 하고, 웬만한 사람들 한 번 정도는 가 봤다는 미국.
친척 중 누군가는 살고 있고 그곳에서 잘 나간다는 나라.
12년 2월, 뉴욕행 비행기. 생전 처음 동쪽으로 멀리 날아갈 생각에 흥미롭기도 하고 긴장이 되기도 했다.
첫 출장 기념인지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되어 기분도 최고였다.
첫 출장에 대한 기억이 무색할 정도로 지금은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라는 질문에 여러 곳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뉴욕, 시카고, 뉴저지, 위스콘신, 아틀란타, 휴스턴, 로스앤젤레스, 달라스, 미네소타 등
미국에서 가장 인상에 깊었던 두 가지
첫째, 티본 스테이크가 정말 맛있었다는 것. 내가 지금까지 먹었던 것은 스테이크가 아닐 정도로
둘째, 생각보다 순수한 미국 사람들이 많다는 것. 뉴욕을 처음 가본다며, 자신이 사는 주를 처음으로 벗어난다며
상기된 얼굴로 쉴 새 없이 말을 거는 비행기 옆의 아줌마, 아저씨,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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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으로 다닌 지역, 국가는 돌아보니 참 많았다.
그중에는 다시 가고 싶은 곳도, 사랑하는 사람과 꼭 가고 싶은 곳도, 혼자라도 여행하고 싶은 곳, 그리고 마냥 생각 나는 곳이 있다.
주요 도시를 떠 올리면 그 곳의 1년 간 매출액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곤 한다.
그래서 그것을 잊기 위해서라도, 더 여행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의 출장은 여행을 위한 사전 답사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