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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Oct 11. 2015

[너를 만난 그곳] #11. 나에게 주는 선물, 여행

나는.... 암스테르담입니다

- 1 -

입사 10년 차.
나를 돌아본다.

감사하게 잘 다녔다. 회사.
힘들고 아팠던 적도 많았지만 살아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가족이 사고 친 빚도 다 갚았고,
죽었으면 못 봤을 에펠탑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보았다.
10년 간 잘 참아낸 내게, 앞으로도 잘 참아낼 내게 무언가를 주고 싶었다.

나를 찾아서... 나를 찾기 위해... 나를 위해....라는 명제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바로 '여행'이다.
출장이 아닌 여행.

그래서 돌아본다.
내가 갔던 곳, 다시 가고 싶은 곳.
아니면 아예 가보지 않았던 곳.

- 2 -

여행을 할 때 가장 빠지기 쉬운 오류가, 바로 그곳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배우고 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생 시절, 공모전을 통해 다녀온 몽골의 사막에서 나는 무던히도 애썼던 기억이 난다.
여기서 무언가를 깨달아야 해, 무언가를 얻어가야 해, 거창한 것을 그리고 꿈꾸고 결심해야 해....

그러는 동안 정작 차창 밖을 지나가는 수 많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지 못했고,
그때, 그 당시, 그 곳의 공기 내음이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겨야 했었는데.
뭐, 괜찮다. 지금이라도 다시금 그러한 여행을 가보자.

어디로? 아... 정말 어디로?

- 3 -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을 때 선택은 더욱 어려운 법이다.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자의 반 타의 반 선택하게 마련이지만, 자의만으로 무언가를 선택할 때는 반대급부를 벌써부터 걱정하며 사람은 소심해진다.

그러나 여행은 그곳에서부터 시작한다.
설렘.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이유도 모르게 뛰는 가슴 운동.

직장인이니 비용은 문제가 아니다.
10주년을 빙자하여 미친척 하고 휴가도 2주간 낼 요량이다.

크고 부담스러운 의미를 두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무언가 나와 연관된 곳을 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 4 -

그래서 나를 돌아보기로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가 보는 나와, 다른 사람이 보는 나는 많이 다를까?

배려심이 깊다. 성격이 급하다. 정이 많고, 열정이 있다.
욱하는 성격에 망친 것들도 많이 있고 때로는 너무 즉흥적이어서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행동을 가끔 하기도 한다.

사람들과 잘 지내고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끌면서도, 혼자 보내는 시간을 매우 좋아하는 아이러니한 사람.

무언가 특급열차의 운명은 아닌 듯하면서도,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가는 꾸준함.
그리고 평범함으로 점철된 남자 사람.

그러고 보니 우리 회사 브랜드와도 닮은 점이 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적 1등은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는, 때로는 절대적 1등을 가뿐히 따돌리는, 그러나 여전히 절대적 1등 뒤에서 엎치락  뒤치락하는...... 더더군다나  더욱더 그러한 지역....

비로소 떠오르는 그 곳.
바로 유럽.

식상하다.
누구나 쉽게 떠올리는 그 곳.

가뜩이나 방송 프로 등에서 심심치 않게 다루고,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막연하게 동경을 가지고 있는 곳이며 가고 또 가도 또 가고 싶은 곳이다.

그럼에도, 대학 시절에 무산된 유럽 배낭 여행의 본전 생각이 났는지도 모른다.

- 5 -

"I Amsterdam"... 유럽이 떠오르며 자연히 떠오른 그 곳.
그래, 정작 많이 가보긴 했지만 여행으로 가보지 못한 곳.

나와 공통점도 찾아내려면 찾아낼 수 있는 곳.

오픈 마인드.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 큰 국가를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 들러 잠깐 구경하는 곳.
여행 순위 절대 1등은 아니지만 분명 매력이 있는 곳.

무엇보다 "IAM"을 되뇌게 하는 이름.
그래, 나를 연관 지을 수 있는, 그리고 복잡한 고민을 한 방에 끝낼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면서도 설득적인 설득.

출장을 그리 많이 가고도 거길 여행으로?... 벌써부터 들려올 다른 사람들의 소리는 미리 접기로 했다.
이해를 바라지도 않지만, 혹자는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할수록 결정을 잘했단 생각이 든다.

"나는.... 암스테르담입니다."

- 6 -

2주 휴가라는 말에 팀장의 눈이 커진다.
그리고 이어진 정확히 30초 간의 정적.

말이 30 초지 직장인이 느끼는 이 순간은 얼마나 긴지, 얼마나 큰 압박감이 느껴지는지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확신은 있었다.
못 가게 될 거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그래, 어디로 가려고?"
30초 후에 돌아온 대답은 승낙의 여부가 아니다.

상사들의 공통점이자 일관적인 수법이다.
질문을 이어가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끌어내는 마법과도 같은 언어유희.

"네, 네덜란드로 가려고요. 입사 10주년 기념, 저를 위한 여행을 가려고요. 아, 팀장님은 10주년 때 어디 가셨어요?"
마법과도 같은  언어유희받고, 질문을 보냈다. 상사들은 자신들의 옛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어, 나... 나는... 나는 10주년 때 뭐했더라... 그러고 보니... 기억이 잘 안나네...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벌써 18년 차네...."
흔들리는 눈동자가 정말로 과거 기억을 헤집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인수인계는 철저하게 해놓고 가겠습니다. 좀 더 성장해서 올게요!"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 자리로 돌아섰다.

팀장은 여전히 생각 중이다.
정말 생각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이미 내 계획을 알고 있던 팀원들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든다.
고맙다. 우리 동료들.

- 7 -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다만, 책이나 블로그에 나와 있지 않은 곳을 좀 더 가보고 싶었다.

출장으로 둘러본 네덜란드는 암스테르담과  풍차마을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들여다봐도 담락거리, 홍등가, 꽃시장 등 거기서 거기였다.

네덜란드를 보기 위해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정말 드물었고, 스키폴 공항 도착 또는 출발을 위해 하루 이틀 들러 암스테르담과 풍차마을 둘러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자, 이제 가볼까.
나를 위한 여행은 처음이다.

대학 때 무산된 배낭여행을, 10년 차 직장인이 되어 간다.
새롭다. 이 기분.
벅차다. 이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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