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동양의 '전생'과 서양의 '멀티 유니버스'엔 공통점이 있다.
'삶'과 '생(生)'이 한 번이 아니라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전생'과 '멀티 유니버스'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정말일까'란 생각과 '그러하지 않으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란 의견이 팽팽하게 양존하며, 바쁜 현실의 삶에 놓인 우리로 하여금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그러한 진실과 진리에 한 걸음 다가갈 새도 없이, 어느새 세상과 기업은 이를 소비의 소재로 삼아 마케팅에 활용하기 시작한다.
'인생은 한 번뿐! (You Only Live Once)'이란 말은 원래 현재의 소중함을 깨닫고 후회 없는 삶을 살라는 철학적 경구였다. 이게 마케팅의 한 축으로 사용되면서, 이 말은 '그냥 질러라, 이 정도는 해도 된다!'라는 소비라는 마법의 주문이 되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돼.
어차피 하는 거 비싸게.
남들보다는 뒤지지 않게.
소비 앞에서, '한번뿐인 인생'이란 말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이러한 덫에 걸려들고 말았다.
그러다 점점 옅어지는 '자아' 앞에서 나는 번뜩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내 욕망과 타인의 기획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남들이 가서 좋다고 하는 곳을 왜 나는 꼭 가봐야 하고, 타인이 맛있다고 하는 걸 내 입맛과는 상관없이 왜 먹어봐야 하는가.
소비엔 유통기한이 없다.
만족도 없고, 채워짐도 없다. 소비를 위한 마케팅의 소음은 멈추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고, 그 정도는 더 심해질 것이다.
삶은 상품이 아니다.
관찰과 경험, 자아 발견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자아'아 '소비'의 주권 회복이 가장 우선이다.
'소비'는 자아를 위한 탐구나, 존재의 고찰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야 지갑이 열리기 때문이다. 감정과 감성을 자극하여 한 번뿐인 인생을 즐기고 조금은 더 비싼 걸로 지르라고 말한다. 그 결과에 남은 '한 번뿐인 인생'은 내 것이 아니다.
'한 번뿐인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다.
'자아' 또한 그 어느 '전생'이나 '멀티 유니버스'에도 없는 하나뿐인 존재다.
무엇이 중헌 지를, 소란스러운 세상... 영민하게 깨우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