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글쓰기'엔 여러 종류가 있다.
이 '종류'는 글쓰기의 '목표'에 갈린다. 돈을 벌고 싶다거나, 광고를 한다거나, 소설을 써 유명해지고 싶다거나. 각자의 목표는 각각의 글을 내어 놓는다.
나의 글쓰기는 결이 좀 다르다.
내가 지향하는 글은 '자아실현', '자아 발견' 그리고 '자아 동행'을 위한 글이다. 하여 나는 '목표'가 아닌 '목적'에 좀 더 집중한다. '목표'는 단기적인 관점이다. 반면, '목적'은 좀 더 멀고 긴 장기적인 시선이다. 달리 말하면, '목적'을 향해 가는 중간중간에 '목표'가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글쓰기를 시작할 때, 나는 이 '목적'과 '목표' 사이에서 꽤나 방황했던 것 같다.
이왕 글쓰기를 시작했으니, 빨리 유명해지고 빨리 글을 잘 쓰고 싶고 빨리 글로 돈을 벌고 싶다는 '목표'에 사로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글쓰기'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내 '목표'들은 처참히 무너지곤 했다.
써 본 적도 없는 내가 무슨 수로 단기간에 그러한 성과들을 낼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도 욕심만 앞선 무리한 나날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글쓰기에 있어서만큼은 '목표'를 세우지 않기로 했다.
이미 나는 높은 목표를 세우고 좌절하기를 평생 반복해 왔고, 그게 무서워 아예 목표나 계획조차 세우지 않았던 철부지였기에 행했던 일종의 자기 방어기제였는지도 모른다.
다만, 다시 글쓰기의 목적을 상기하기로 했다.
고개를 들어 더 앞을 내다봤다.
모든 글을 잘 쓰겠다는 욕심은 내려놓기로 했다. 나를 관통하는 글을 쓰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글을 잘 썼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진정한 글을 써 나아갔다.
일명, '목적'은 분명 하나 '목표'는 없는 글쓰기.
목표를 내려놓으니 조급함이 사라졌다.
목적을 상기하니 제대로 된 심호흡을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내가 받은 선물은, 나에게로 좀 더 다가간 나날들과 더불어 꾸준함이었다.
또한, 꾸준함의 결과물은 책과 콘텐츠가 되어 내가 바라던 경제적 자산이 되었다. 돈과 책을 바라던 때는 되지 않던 것들이, 돈과 책이라는 목표를 내려놓으니 자연스럽게 내게 다가왔다. '나'라는 '자아'에 더 가까워지고, 삶의 중심을 잡으니, 나는 강력한 자석이 되어 내가 원하는 것들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잘 쓰는 게 글쓰기의 목적이 아니다.
글의 목적은 바로 '나'여야 한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나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하지 못하는 데, 나를 관통하지도 못하는데 '목표'만 가득한 글쓰기의 여정은 그 끝이 뻔하다.
잘 쓴 글은, 목표를 내려놓고 목적이 분명할 때.
나에게 한걸은 더 다가갈 때. 이러저러한 조급함과 유혹, 핑계와 변명에 치우치지 않고 꾸준히 이어나갈 때 분명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