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으로의 관점 전환, 글쓰기

<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by 스테르담

살다 보면 빈 껍데기가 된듯한 느낌일 때가 있다.

사회라는 출발점에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달렸고 산꼭대기 위에 있는 깃대를 잡아챘는데... 정작 거기엔 '나 자신'이 없다는 허탈감. 나를 위해 뜀박질했다고 생각했는데, 역설적으로 '나'는 아득히 저 멀리 두고 왔다는 허무함.


그도 그럴 것이, 세상은 '나'를 챙기지 못하게 하는데 정통하다.

기업은 소비를 부추기고, 소비를 부추기기 위해선 '자아'를 돌아보지 못하게 해야 하고, 자아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가늠하지 않고 지갑을 연다. 허탈하고 허무한 마음에 필요도 없는 것들을 쌓아놓다 보면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도 삶은 피폐해진다. 또한, 먹고사니즘에 빠져 생존을 해야 하는 존재에게, 삶의 시선은 밖을 향해야 하는 게 필수다. 사주경계를 해야 생존의 확률이 올라가고, 도태의 위험성이 내려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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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역으로 생각해야 할 때가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사는가? 그저 숨을 잇는 생존이 삶의 유일한 목적일까? 중요한 목적이기는 하다. 생존하지 못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면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목숨만 부지한다면, 우리가 아는 좀비와 크게 다를 것이 무어란 말일까. 죽지 않는 면에 있어서는, 어쩌면 좀비가 더 고등적인 존재일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삶의 목적과 의미.

이것을 고민해야 한다는 갑작스러운 명령이 마음에서 일어났다. 그래야 제대로 사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껍데기가 아닌 삶, 본질적인 숨을 쉬고 싶다는 강력한 욕구는 나에게 무어라도 하라고 소리쳤다.


슬럼프와 번아웃.

무당은 삶의 큰 전환을 맞이하기 위해 신병을 앓는다. 슬럼프와 번아웃은 일반 사람들이 겪는 자아를 위한 병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것들에 손을 들거나, 그저 지나가는 감기 정도로 생각한다. 심각한 번아웃이 왔을 때, 지금이 아니면 더 이상 삶을 바꿀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바꿔야만 했고, 변화해야만 했다. 번아웃이 지나간 자리, 이전과 같은 삶을 이어간다면 나는 좀비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느새 나는 글을 쓰고 있었다.

내가 찾은 유일하고도 최선인 방법. 먹고사니즘의 속박을 때려치우지 않으면서도, 나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 지금 당장 시작해도 큰 무리가 없는, 감당 가능한 도전.


밖으로 고정된 시선을 안으로 들이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글쓰기의 시작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러나 써보면 안다. 글쓰기만큼 자신에게 솔직한 건 없으며, 제대로 시선과 관점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걸. 나도 몰랐던 것들이 마음에서 쏟아져 나왔고, 어서 이것들을 활자로 담으라고 내 손가락을 간지럽혔다. 자판을 두드리는 건, 다름 아닌 내 마음과 영혼이었고 이 행위는 고귀한 숨결이 되어 내 영혼의 호흡법이 되었다.


글쓰기는 내면으로의 여행이다.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많다. 여행이 계속되면 동행이 된다. '나'라는 존재, 그것을 인식하는 '나'. 둘의 동행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되어야 하며, 그러하기 위해선 밖을 향한 사주경계도 필요하지만 시시때때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내면으로의 관점 전환.

이것은 조용한, 그러나 강력한 삶의 혁명이며.


이것을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건 쓰는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고 또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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