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최근, 일상에 큰 변화가 연속되었다.
5년 여에 이르는 해외 주재를 마쳤고, 그로 인해 가족과 나는 해외에서 다시 한국으로 삶의 터를 옮겨야 했다. 말이 쉽지, 수년 간 이어온 삶의 장소를 바꾼다는 건 생각보다 큰 일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기대감과 함께, 떠나온 곳에 남긴 것들에 대한 서운함과 그리움이 공존했다.
한국에 돌아와선 시차에 시달렸다.
다행히 음력설이 겹쳐, 새로운 일에 복귀하기까지 여유가 있긴 했으나 시차 적응으로 보낸 시간이 한 움큼이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뭔가를 해야지... 다짐하고 동네 근처 카페로 향했다. 노트북을 열고,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몰입'의 상태에 빠져들었다.
최근 들어, 이러한 몰입을 느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전쟁터와 같은 해외 사업 환경에선 어서 빨리 시간이 흘렀으면... 하는 조급한 마음과, 주말엔 시간이 가지 않고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헛헛한 마음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곤 했다.
'몰입'은 분명, 인간이 향유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의 정신적 쾌감이 아닐까 한다.
'동양'과 '서양'에도 그 비슷한 개념과 단어가 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물아일체', '무아지경' 그리고 '심취'라는 말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좀 더 알아보다 맞이하게 된 '삼매(三昧)'란 말도 매력적인데, 이는 불교 수행 단계 중 하나로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여 흐트러짐 없는 상태를 말한다. 여기에 '경'자를 붙이면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가 되는데, 그게 바로 '삼매경'이다.
이와 마찬가지고, 서양에는 '에너지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상태'나 '일상적 의식을 벗어난 상태'로 '몰입'을 정의한다.
'Flow'는 긍정심리학자인 마하이 칙센트미하이가 정의한 개념이고, 'Ecstasy'는 평소 의식 상태를 벗어난 '황홀경' 즉, '탈아(脫我)'로 해석된다. 이 외에도 'In the Zone'이나 'Hyperfocus'와 같은 고도의 집중력을 '몰입'으로 설명하는 용어들이 있다.
재밌는 건 '동양'은 '자아'와 '일치' 또는 '소멸'의 관점에서, '서양'은 '의식'의 '흐름'과 '성취' 관점에서 '몰입'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 중 무엇이 맞고 틀린 지는 중요하지가 않다. 그 모두를 합한 것이 어쩌면 '몰입'의 정수 인지도 모른다.
결국, '글쓰기'는 '몰입' 하기 가장 좋은 수단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글쓰기'는 '자아'와 '의식'에 모두 관여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나에게로 향하는 여정이며, 지금 내 의식의 정도와 상황을 무의식으로부터 활자로 표현해 주는 고귀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때론, 글 한 편 쓰는데 몇 시간이 흘러 버리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무엇으로 치부하곤 하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마만큼 소중한 시간도 없었구나... 란 생각이 든다.
'몰입'은 돈으로 사거나, 인위적으로 주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몰입'은 스스로 결정하고 다짐해야 하며, 자아 그 자체와 의식의 참여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삶이 흐트러져 있을 때.
주섬주섬이라도 그것들을 정리하고 담아내고 싶을 때,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쓰다 보면, 몰입할 일이 많아지고.
몰입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자아는, 분명 더 단단해지고 유연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