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아가 좀 더 비대해져야 해.

<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by 스테르담

감정이란 좀처럼 가늠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거품이다.

그런데 이게 조금이라도 지속되면, 그건 습관이나 성격 그리고 자아로 고착된다.


초등학교 3학년 때를 떠올린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진 상황에서 그 어린아이가 선택한 감정은 늘 바닥을 쳤다. 그래서일까. 책가방을 메고, 그렇게 나는 땅을 보며 걸었다. 지나가는 누군가가 볼 때, 그 아이의 신체에 문제가 있을 거라 느낄 정도의 구부정함이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소방차라는... 지금으로 치자면 아이돌 그룹을 결성하여 춤을 추며 학교를 휘저었다.

아버지가 없는 것도,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것도 변함이 없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며, 나는 다시 구부정함과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등락을 목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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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가늠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거품이라는, 감정에 대한 표현은 그래서다.

어떠한 감정이 비대해지다가 터지면, 상반되는 감정이 올라오고, 다시 그 감정이 커지다 터지면 또 다른 감정이 생겨나는.


어느 여행지에서, 뷔페 앞에 줄을 서 있는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아빠에게 큰 소리로 이것저것 묻는 재잘거림을 보았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아이에게 강한 질투감을 느꼈다. 당찬 목소리,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호기로운 질문, 똑바로 그의 아빠를 바라보는 시선. 버릇이 없는 걸까, 아니면 자신감에 가득 찬 일종의 발현일까. 나라면 그렇게 큰 목소리로, 그렇게 묻지 못했을 거란 생각에 그 아이의 자아는 커 보였고 나의 그것은 비루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놀라운 건, 그러한 질투심을 느낀 때가 중년이 훨씬 지난 지금 시점이라는데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자아는 좀 위축되어 있는 것 같다.

무엇엔가 주눅이 들어 있다고 할까. 그러나 상반되게 긍정적인 에너지는 그득하다. 너무 예의 바른 걸까. 달리 말하면 너무 남을 배려하는 걸까. 사기를 치는 사람들은 매우 당당하다. 자아가 비대하다 못해 비만의 최고조의 이른 것처럼 보인다. 그 기세가 멀쩡한 사람들도 속게 만든다. 때론, 그들의 자아 비만이 부러울 정도다. 나는 왜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세하지 못하는가.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자아가 비대해져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악'은 늘 '선'을 농락한다. 착하게 살고, 정직하게 살고, 적당한 자아를 유지하면 만만하게 본다. '악'을 품어야 영향력이 커지는 시대.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선'인지 자체가 불분명한 시대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눈에 보이는 뻔한 '악'을 행하고 싶진 않다.


얼마 전엔, 책쓰기 강사로 시작해 자신이 재림 예수라며 추종자들에게서 돈을 갈취한 어처구니없는 일을 봤다.

이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이것에 속는 사람도 있나... 싶지만 어찌 되었건 그의 자아는 나보다 커 보이고, 그것에 속는 사람들도 그 기세에 눌린 게 분명해 보인다.


정직하게, 글쓰기를 전하는 내 모습이 바보처럼 보일 정도로.


나는 자아가 좀 더 비대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좀 많이 든다. 삶은 기세일 텐데. 나는 왜 이리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걸까. 조금은 더 이기적이어야 하고, 조금은 더 악해져야 하는 걸까.


오늘은 자아가 조금은 더 소란스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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