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세상은 무척이나 소란하다.
그 소란함을 깊게 들여다보면, '생존'이란 한 단어가 보인다.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웃고 울고, 일하고 쉬고, 싸우고 화해하며 산다. 먹고 산다는 곧 생존을 말하며, 이는 개인과 국가 그리고 전 세계에 통용되는 말이다.
그리하여 때론 나 아닌 스스로를 연기해야 하며, 하고 싶지 않은 일마저 웃으며 해야 하는 촌극이 발생한다.
이젠 이러한 것이 먹고사니즘이란 명목하에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린 세상, 돈이라면 넙쭉 스스로를 포기하기도 하는 시대에 '자아'가 설 자리는 없다.
자아가 사라진 자리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들어 찬다.
채우기도 쉽다. 소비하면 된다. 사고 쌓아 놓으면 된다. 필요 있든 없든 간에.
불을 밝히려면 우리는 스위치를 켜야 한다.
'딸깍'... 이란 소리와 함께 빛과 어둠을 조절한다. 내 마음에도 스위치를 하나 갖다 놓는다. '딸깍...'이란 소리와 함께 세상을 끄고, 나를 켜고 싶은 마음에서다.
끄는 기술.
켜는 기술.
이 둘은 상반되어야 하되, 또한 병행되어야 한다.
끄고 켜기는 어느 하나의 끝이자 또 다른 것의 시작이다. 다른 말로 '변환'이라 할 수 있고, '시작'이라 할 수도 있다. 방의 불은 늘 밝지 않다. 열심히 일하고 들어온 뒤 내 방이 주는 아늑함과 함께, 다시 생존의 전쟁터로 나아갈 나를 위해 어둡게 기다려 주는 공간.
세상을 끄고, 나를 켜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나에겐 그것이 글쓰기, 산책, 음악 듣기, 명상이다. 나만의 리추얼을 만들어 생존의 전쟁터에서 잠시의 휴식을 가진다.
나를 켜는 스위치가 그리 많을 필요는 없다.
단 하나만 있어도 된다. 스위치를 켰을 때, 세상의 소란함은 잠시 꺼질 것이다.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는 어떠한 리추얼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하면 된다. 또는, 이미 켜진 나만의 리추얼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퇴근길은 어깨가 축 처져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 산책과 명상 그리고 머리로 글감을 정리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세상을 끄고, 나를 켜는 스위치의 존재를 알지도 못한 채 지난 세월이 안타깝다.
이젠, 그 스위치를 한 번이라도 더 켜야지...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