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5년 만에 지구 반대편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곳에 두고 온 아쉬움보다는 다시 집으로 왔다는 안도감이 더 크다.
그래서일까. 그곳보다는 몇 배는 더 많이 걷고 있지만 어째 살이 더 찌고 있다.
그동안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것들, 한국에 가면 먹고 말 거라는 다짐을 너무 빨리 실천해 버린 탓일까. 아직도 먹지 못한 것들이 수두룩한데. 어째 무언가 몹시 야속하다.
나는 이것을 나이 탓으로 돌린다.
어리고 젊었을 때야 먹고 싶은 것 먹었을 테고, 하루만 잠시 굶어도 체중은 쉽게 제자리로 돌아갔을 텐데. 더 맛있고, 더 비싼 걸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는데 이제는 몸이 그걸 뒷받침하지 못하는 현실.
어디 먹는 것뿐일까.
젊었을 때, 그러니까 철이 없었을 때 난 덥석 (중고로...) 외제차를 산 적이 있다. 그땐 외제차가 드물어 희소가치가 있었다. 괜히 뭐라도 된 것처럼 으쓱하여 운전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참 가소롭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것 또한 '나'였으니 겸허히 그 부끄러움을 수용한다.
아이들이 태어나자 멋지고 잘 달리는 차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다.
낮고 단단하고 빠른 차는 높고 물렁하고 느린 차로 교체되었다.
지금은 아예 차가 없다.
한국으로 온 지 얼마 안 된 이유도 있지만, 이미 훌쩍 커 수험생인 아이들은 이제 어디 하루라도 같이 놀러 갈 여유가 없다.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으니 내가 운전할 일도 별로 없다. 생활비와 아이들 학원비, 일주일에 5일을 그냥 서 있을 차를 생각하니 멋이고 편리고 나에겐 중요하지 않는 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참아야 하는 게 점점 더 많아지는 나이.
'중년'과 '불혹'은 흔들리지 않는 나이가 아니라 유혹이 물밀듯 쏟아지니 흔들리지 말라는 경고라는 걸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다행히(?), 이제 글쓰기와 산책은 그러한 나에게 큰 위로가 되는데 게다가 돈도 들지 않고 (아니, 오히려 돈을 벌어다 주고), 건강까지 챙길 수 있으니 괜스레 마음이 풍족하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오징어 땅콩과 맛동산을 마음껏 먹지 못하는 게 좀 서럽긴 하지만. 참아야 하는 게 많아지는 게, 어째 결국은 나를 위한 것인 것 같아 잘 참아보려 한다.
참아야 하는 게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책임이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책임은 무겁고 힘든 것이다. 그러나 그 책임은 온전히 나의 선택이란 걸 잘 안다.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것, 가족의 웃음과 꿈을 지켜주는 것.
묵묵히, 참아야 하는 게 많아지는 걸 견디고 받아들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