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결핍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
나의 가장 큰 결핍은 가족이었다. 그래서 가정을 빨리 이루고 싶었다. 당시엔 그리 빠르진 않지만, 지금 시대의 기준으론 조금 빠른 나이에 평생의 인연을 만났다.
그렇게 남자와 여자는 남편과 아내가 되었다.
점점 아내의 배가 불러왔다. 이제, 아빠와 엄마가 될 차례였다. 잘할 수 있을까. 멋과 아름다움으로 서로에게 어필하던 커플은, 부모라는 거대한 천륜 앞에 불안했다. 어른이라는 수식어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숙하지 못한 존재가 부모가 될 수 있을까를 수없이 의심했다.
그때 알았다.
부모는 준비된 존재가 아니라, 만들어져 가는 존재란 걸. 나의 부모도 그랬을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인 사람은 없으니까.
첫째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고 아등바등하던 사이 둘째를 맞이했다.
정신없었지만 행복했다. 가족에 대한 결핍이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그에 대한 책임은 내 몫이긴 했지만. 그리하여 불혹을 맞이했던 순간 나는 번아웃과 우울을 함께 맞이했다. 행복하지만 숨 막히는 현실. 도망가고 싶지만 그러할 수 없는. 혼자 있고 싶지만 그러해선 안 되는.
어깨가 가장 무거웠던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오니 아내는 나를 위해 찌개를 끓이고 있었고, 첫째는 피아노를 둘째는 바닥에서 웃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아, 나는 잠시 내가 어느 유토피아에 있는 것은 아닌지를 의심했다. 내가 바라던 평생의 바람이 생생히 눈앞에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그 어떠한 무게도 감당하겠노라고.
가족은, 아이들은 뭉클함을 준다.
뭉클함은 많은 걸 녹아내리게 한다. 가장의 무게, 사회의 압력,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를.
이제 아이들의 키는 나보다 훨씬 더 크다.
그만큼 나는 늙었다. 거대한 나무 앞에 서 있는 지천명(地天命).
아이들이 태어나 탯줄을 잘랐을 때.
처음으로 옹알이와 뒤집기를 하고, 엄마 아빠라는 말을 내뱉었을 때.
둘이 손 꼭 붙잡고, 처음으로 엄마 아빠 없이 등교하던 뒷모습.
너무나도 많은 순간들이 나를 뭉클하게 했다.
지금은 나보다 더 큰 녀석들이지만, 간혹 방에 들어가 자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아이들이다.
곤히 자는 모습이 평온하다.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그 평온함을 언제까지나 지켜주겠노라고.
나의 다짐이 어쩐지.
조금은 더 뭉클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