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나는 시장 냄새가 참 좋더라."
20대의 어느 날이었다.
시장 냄새가 좋더라는 말을 내뱉은 어느 친구의 말에 나는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 핑크빛으로 이루어질 사이가 전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에게 무언가 강한 끌림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뭐랄까, 남녀사이를 뛰어넘어 느껴지는 인간적인 매력이라고나 할까. 말 한마디가 사람을 이렇게 혹하게 할 수도 있구나란걸 그때 알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장에 가기로 했다.
아내와 손잡고 시장에 이르는 길에 나는 거대한 행복을 느꼈다. 이러한 소소한 것들이, 때론 삶에 집채만 한 파도보다 더 큰 무언가로 다가올 때가 있다. 나는 그것을 만끽하기로 했다. 소풍을 가는 아이처럼, 나는 신나 줄곧 아내의 손을 주물럭 거렸다.
그러고 보면 나는 시장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왜일까. 사람 냄새 때문이 아닐까. 어릴 적 시장 냄새가 좋더라는 친구의 말은, 어쩌면 내게 사람 냄새를 상기시켰는지도 모른다. 천사도 악마도 사람의 내면에 있다는 걸 떠올려보면, 가장 무서운 것도 사람일 텐데. 사람 냄새가 더 좋아질 세상을 무의식적으로 나는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장 초입부터 걸걸한 어느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지 말 거면 사지 말어. 그거 얼마나 남는다고..."
싸우는 건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없는 어조는 결국 손님의 지갑을 여는데 성공했다.
요즘과 같은 시대에, 도심 속 정찰제로 운영되는 가게들에선 상상할 수 없는 격한 흥정이다. 이러한 투박함이 나는 좋다. 먹고사니즘의 각박함 속에, 어쩐지 알 수 없는 부드러움이 숨어 있는 것 같아서다.
시장을 거닐다 출출해 어느 분식집에 아내와 함께 자리했다.
평상엔 먹음직한 것들이 가득했고, 기다랗게 놓인 일자 의자는 따뜻했다. 주문을 하기도 전에 시원한 식혜와 따뜻한 어묵국물이 나왔다. 이러한 환대(?)가 얼마만일까. 화려함이 아닌 정이 묻은 환대는 그 결이 다르다. 요즘 물가에 비하면 저렇게 팔고도 뭐가 남을까... 란 생각이 들 정도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맛있게 음식을 먹는 동안 식혜와 어묵 국물은 또다시 채워졌다. 계산을 하며 따뜻한 의자에서 일어설 때, 난 허리 굽은 주인 할머니의 안녕을 진심으로 바랐다.
신나고, 즐거웠고.
맛있었고, 울컥했다.
오랜만에 느낀 시장의 바이브는 그러했다.
그래, 시장은 내게 삶의 의미를 되새겨 주는 곳이 틀림없어. 그게 내 결론이다. 먹고사는데 더 진심인 사람들의 바이브를 보면 반성과 용기가 동시에 솟아오른다. 먹고사는 게 힘들다는 말이, 한낱 어린아이의 투정이 되는 곳.
오늘.
시장 냄새가 좋았고.
사람 냄새는 더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느 감자탕 가게의 유리창엔.
삶에 지쳤던 나와 다시 용기를 얻은 나의 모습이 함께 비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