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팔씨름을 졌다

<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by 스테르담

씁쓸한 날이 오고야 말았다.

첫째 녀석에게 팔씨름을 졌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대가 되지도 않을 만큼 압도적인 승률을 자랑했는데. 생각과는 다른 힘의 세기에 놀라 나의 오른팔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왼 팔도 덤벼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른 팔의 전철을 밟았고, 더 초라하게 무너졌다.


나는 팔씨름을 잘하는 편에 속한다.

몸 쪽으로 끌어오며 체중을 활용하는 기술은 웬만하면 먹혔다. 고등학교 때 반 친구들과 팔씨름을 하면 1, 2위를 다툴 정도였다. 왼 팔은 늘 탑이었을 정도다.


해외 부임할 때까지만 해도 아이들의 키는 내 가슴팍에 머물렀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두 녀석을 올라봐야 할 정도다. 어깨의 높이가 다르고, 눈높이가 이젠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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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하다고 하긴 했지만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쉰다.

어차피 나를 앞질러 갈 아이들이다. 그 속도를 멈추게 할 순 없다. 아니, 그 속도를 더 장려해야 한다. 나를 밟고 일어선다 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러해야 한다는 걸 잘 안다.


아이들의 성장은 나의 노화를 뜻한다.

나는 늘 그대로인 듯 하지만, 아이들의 성장을 보며 나의 쇠퇴를 인정하게 된다.


앞으로도 나는 많은 것을 아이들에게 지게 될 것이다.

달리기도, 매달리기도, 기술의 습득도. 아이들은 이미 근력 운동을 하며 덩치마저 키우고 있다. 내가 받지 못하고,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아이들은 아주 많이 누리고 있다. '나 때는...'이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나는 그저 묵묵히 아이들의 누림을 마음과 물질로 지지한다.


언젠간 아이들도 알게 될 것이다.

쇠퇴하는 존재가,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것 같은 초라한 지천명의 번뇌가 그래도 웃을 수 있는 건, 자라나는 내 새끼들의 성장 때문이라는 걸. 쇠퇴의 한 걸음보다, 성장의 두 걸음이 남는 장사라는 걸.


무언가를 되돌려 받을 기대도 나는 하지 않는다.

이미 그 이상을 받았다.


그거면 된 거다.


P.S


그럼에도 나는, 다시 팔씨름을 이겨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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