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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pr 17. 2017

다시 겨울로 오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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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정 -


1. 암스테르담 To 노르웨이 오슬로 (2박)


2. 오슬로 To 베르겐 (넛셸투어/ 1박)

*넛셸투어

- 오슬로 (Oslo) To 뮈르달 (Myrdal)_ 기차

- 뮈르달 (Myrdal) To 플램 (Flam)_ 산악기차

- 플램 (Flam) To 구드방겐 피요르드 (Gudvangen Fjord)_ 크루즈

- 구두방겐 (Gudvangen) To 보스 (Voss)_ 버스

- 보스 (Voss) To 베르겐 (Bergen)_ 기차


3. 베르겐 To 암스테르담



오슬로 둘째 날

여행을 여유롭게 즐겨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조금은 서둘러야 할 때가 있다. 오슬로가 그렇다. 웬만한 곳들, 특히 박물관은 오후 4시면 닫는다. 하긴, 유럽 여행 치고 그리 여유로운 경우는 많이 없다. 걷는 길의 연속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얻는 눈의 요기는 백미지만, 육체의 허기는 극에 달한다. 시간의 소비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오슬로는 더욱더 그랬다. 울퉁불퉁한 돌바닥, 그리고 다시 겨울로 온, 이곳의 추위는 우리 가족의 신분을 여지없이 '여행자'로 바꾸어 놓았고, '여행자'의 여독을 짧은 시간 극에 달하게 했다.

허기는 달래야 한다. 지금의 것이 아니라 닥쳐올 것에 대해서도. 그래서 조식은 든든히. 부활절 계란은 뚜껑을 따고(?) 퍼먹는다.
길거리 여기 저기서 만나는 트롤들.


새로운 아침의 첫 방문지는 뭉크 박물관이었다. 잠깐, 그전에 하나 해치워야 할 숙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다음 날 떠나게 될 '넛셸투어' 티켓을 찾는 일. 부활절 휴일로 인해 티켓을 받을 수 있는 날짜와 시간에 제약이 있었다. 티켓은 오슬로 중앙역에서 받으면 되었다. 호텔을 나서고 난 후, 걸음걸이로 약 10여분 거리. 토요일 오전의 공기는 여전히 차디찼고, 바람은 여전히 불어댔다. 아직도 봄을 허하지 않겠다는 기세로. 실제로, 작년 이맘때쯤엔 이상고온이 있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실수라도 되는 양, 올해의 겨울은 단호했다.

토요일 오전 10시 중앙역. 넛셸투어 티켓을 받으려는 사람들은 이미 몇몇이 줄을 서있다.


뭉크 박물관에서의 절규

그 언젠가,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를 보고 싶었던 나는, 그 그림이 뉴욕에 있다는 말을 듣고 망연자실한 적이 있었다. 사전에 알지 못했던 스스로를 한탄하며, 다른 그림으로 위안을 삼고 말았다. 그리고 또다시. 뭉크 박물관의 마지막 섹션을 나설 때쯤. 뭉크의 '절규'가 없다는 걸 깨닫고는, 이번엔 절규했다. 이런, 뭉크의 '절규'는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에 있었다. 재빨리 다음 목적지를 국립 미술관으로 변경하고 나서야, 다시 뭉크의 그림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판타지'와 '외로움', '혼돈'과 '외로움'으로 점철된 그의 인생사는 그의 작품들에 여실히 투영되어 있었다. 작품 속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선명하지 않았고, 어떤 눈들은 뭉크 개인의 생각의 많은 것들을 표현하기도 했다. 또 어떤 얼굴들에는 그 눈조차 없이 수많은 점과 붓이 지나간 흔적들이 그것을 대변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작품은 '사람'과 그 '몸'을, 남녀와 누드의 반복이었다. 각진 얼굴에 호기롭게 생긴 그의 자화상이 수많은 여성과 염문이 있었음을 짐작케 했고, 쌓이고 쌓인 그의 화려한 경력이 작품에 투영되지 않을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뭉크 박물관으로 향하는 메트로 길. 숫자로 구분되어 있고 라인이 많지 않아 탑승이 쉽다.
미루어 짐작해도 그의 작품이라고 느낄 수 있는 그림들이 가득하다. 뭉크 이야기는 좀 더 자세히 다음에.


국립박물관에서 다시 만난 뭉크

뭉크 박물관을 뒤로하고 메트로에 올라탄 우리는 국립 미술관으로 향했다. 다음 목적지인 시청사 건물 근처에 있으니 동선상 큰 부담이 없었다. 다시 가보니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조금은 허탈했다. 유럽의 도시는 구획이 잘 그어져 있어 한 두 번 왔다 갔다 하면 금세 익숙해진다. 자로 잰듯한 그것이 빠른 정겨움을 주지만, 어느새 익숙해진다는 것은 낯섦을 향해 나아가는 여행에선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일이다.

예상보다 작은 어느 골목에 위치한 국립미술관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지나치면 모를 건물 규모였지만, 그 앞에 줄 선 사람들이 이곳은 꼭 들러야 하는 곳이란 걸 말해주고 있었다. 일단 줄을 서고 보니 건물 외벽에 뭉크의 '절규' 그림이 있었고, 최근 진행 중인 현대 미술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줄이 줄어드는 속도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정도. 다행히 근처에 카페가 있어 따뜻한 차 한잔을 공수해와 얼어있는 몸을 녹이기에 좋았다. 마침내 줄이 줄어들고 문으로 들어갔을 때, 티켓팅하는 곳과 짐을 맡기는 로커가 협소해 발행한 일이란 걸 보고는 역시나 했다. 우리네 같으면 공사라도 하여 그곳을 넓히고 개선했겠지만, 유럽 사람들은 그저 사람들이 불편하고 말지 건물 (그들의 헤리티지)을 좀처럼 변경하지 않는다. 몇십 년을 다시 찾아도 항상 예전 그대로 남아있다. 그것이 수 백, 수 천년을 이어온 행동방식이자, 그들의 것을 지켜온 비결 그리고 매력일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의외로 배고픔에 굶주렸던 노르웨이의 풍경을 그린 그림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시작되는 그들의 역사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종이가 아닌 나무 그림, 그리고 바다와 함께 해 온 그들의 삶의 모습. 연도별로 정리된 예술의 흔적들은 그렇게 노르웨이와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히 전달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림들 속의 것들이 그리 낯설지 않아 자세히 보면 네덜란드를 배경으로 하거나, 실제 네덜란드 작가들이 그린 그림도 꽤 있었다는 것이다. 주로 네덜란드 황금기였던 16세기 ~ 17세기 그림들로, 노르웨이와 네덜란드의 사람과 역서, 예술이 활발히 교류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어쩌면 바다와 함께한 그들의 동질성이 그들을 묶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건물이 '국립미술관'이라는 이름에 맞지 않게 화려하지 않아 그냥 지나칠 뻔 했다. 사람들의 줄을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눈에 많이 익다 싶었더니 암스테르담과 델프트를 그린 그림들.
구스타프 쿠르베의 두려움으로 미쳐버린 남자
Scream
Madonna


바이킹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국립 미술관 근처,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오슬로 시청사를 둘러보고 그 안을 구경할 요량이었지만, 아쉽게도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는 다음 목적지인 바이킹 박물관으로 향했다. 오후 4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조금은 서둘러야 했다.

공항에서 구입한 '오슬로 패스'는 참 유용했다. 버스, 메트로, 전차, 버스 그리고 페리까지 아우르는 패스는 박물관의 입장료도 모두 포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티켓을 검사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한 편으론, 이거 괜히 산거 아닌가...라는 조금은 못된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한 번 걸리면 어마어마 한 벌금이) 박물관에선 오슬로 패스 뒷면의 바코드만 찍으면 입장권으로 바로 교환된다.

시청사 앞에서 빨간색 버스를 타고 대여섯 정거장. 정류장에서 도보로 1~2분 거리인 바이킹 박물관은 생각보다 작았다. 입구에는 바이킹들이 얼마나 치열하고 도전적으로 뱃길을 개척했는지, 그 동선을 보여주고 있었다.

문에 들어서자 거대한 바이킹의 배가 그 뱃머리를 한껏 하늘로 치켜들고 있다. 그러한 배가 몇 대 정도 위치해 있고 사람들은 아래에서, 그리고 계단으로 오른 중층에서는 위에서 배의 위용을 눈과 카메라에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자칫 작은 규모로 인해 지루할 수 있는 시간을, 박물관 한쪽에서는 바이킹에 대한 영상으로 그것을 달래주고 있었다. 여러 대의 프로젝터가 천장에 그림을 수놓아 입체적으로 바이킹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들려준다. 간이 의자를 대고 앉아, 사람들의 작은 탄성이 그 공기를 채울 때쯤 영상은 아쉽게 막을 내린다. 그리고 둘러보는 바이킹의 유물들이 새롭다. 보존이 잘 되어 발굴이 된 어느 한 바이킹의 신발 한 켤레가 마음에 와 닿는다. 그 신발로 어디를 밟고, 어느 곳을 갔을까. 지금의 내 신발을 내려다본다. 많은 여행을 함께 한 녀석이다.

노벨 평화상을 시상하는 오슬로 시청사
그들의 발길이 닿은 곳
이 신발은 어느곳, 어디까지를 디뎠을까.


오슬로 시티투어의 마무리

목적지를 시내로 돌려 비겔란드(Vigeland) 공원으로 향했다. 노르웨이 왕궁을 거쳐 호텔로 가는 동선에 있는 공원. 갖가지 조각상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이어, '나 조각공원이야'를 외치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거의 모든 조각상이 누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누드는 추상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남성의 성기는 가려지지 않은 그 자체로 여실히 드러나 있고 남녀는 공존한다. 노소(老小) 또한 그 안에 존재하여 결국 이 헐벗은 조각상들은 열심히 '인생'과 '삶'에 대해 이야기함을 직감할 수 있다. 조각상의 정점은 공원 한가운데 저만치 높은 곳에서 찍힌다. 모든 재료 (헐벗은 사람들)를 한데 뭉쳐 쌓은 높은 탑. 차곡차곡 그 몸들을 욱여넣어 마침내 '탑'을, 아니 '삶'을 만들어낸다. 나도 너도 저 탑의 어느 부분에 구겨져 있을지 모른다는 동질감에 추워진 손길로 옷깃을 여민다.

이어지는 노르웨이 왕궁. 소박하고 군더더기 없다는 리뷰가 대부분인 이 곳은 그렇게 뭔가를 수식할 필요가 정말 없다. 계절은 봄이지만 사방은 여전히 겨울인 날씨 탓에 얼굴이 붉게 부르튼 근위병이 좌우로 왔다 갔다 한다. 나이가 드니 군인은 더 이상 '직업'이나 '사명감이 가득한 제복'으로 보이지 않는다. '젊은이', '청춘' 그리고 추위와 지루함을 어떻게 이겨낼지 궁금한 한낱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보인다.

노르웨이 왕궁


비겔란드 공원에 다다랐을 무렵. 첫째 녀석이 뾰로통하다. 이리 와서 사진을 찍자고 해도 오지 않는다. 버럭 소리를 낼까 하다 녀석이 왜 그런지 물어보기로 했다. 대답은 안 했지만 와이프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손수 만들어준, 좋아하는 팔찌를 잃어버렸단다. 그저 녀석의 감정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여기 서라, 마음 풀어라, 어서 웃어라 등의 이야기는 도움이 안 될 것이다. 그렇게 잠시 우울하고 싶으면 그래도 되고,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일어나는 감정의 속상함도 느껴봐야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은 금세 잊고 사방을 뛰어다닌다. 나오는 길에 있던 놀이터에서 동생과 신나게 노느라 정신이 없다. 덕분에 와이프와는 따뜻한 카페에 들러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긴다. 


추위도 모르고 신나게 놀이터에서 노는 녀석들. 그 날의 잃어버린 팔찌는 결국 첫째 녀석의 팔에 채워져 있었다. 쓸려 올라가 손목이 아닌 팔목에 걸쳐져 있던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바로 다그치지 않고 녀석의 감정을 존중해주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저, 웃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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