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Jul 23. 2017

반 고흐의 마지막 숨결, 프랑스 오베르 쉬르 우아즈

미친 열정, 밀밭, 죽음 그리고 영원한 슬픔


- 여정 -


암스테르담 To 벨기에 브뤼헤 (265km, 1박)

벨기에 브뤼헤 To 프랑스 옹플레흐 (385km)

프랑스 옹플레흐 To 프랑스 몽셸미셸 (227km, 1박)

프랑스 몽셸미셸 To 프랑스 오베르 쉬르 우아즈 (359km, 1박)

프랑스 오베르 쉬르 우아즈 To 암스테르담 (516km)



그곳의 이름은 낯설었다.


그리고 잘 외워지지 않았다. 와이프에게 몇 번을 물었다. 우리가 가는 곳이 어디라고? 반 고흐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그곳. 인상파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순례지와 같은 그곳에 다다랐을 땐, 반 고흐의 죽음이 연상되지 못할 정도로 햇살이 밝았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이순신 장군이 마시고 내뱉었던 공기를, 통영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을까란 의문을 던졌다. 통영에서 우리가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면, 반 고흐의 마지막 숨결은 분명 이곳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미친 열정.


반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유럽을 벗어난 적은 없지만, 영국과 벨기에 그리고 프랑스를 오갔다. 그리고 프랑스 남부 아를을 거쳐 이곳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왔다. 자신이 자른 귀를 한 매춘부에게 준 그에게는 이미 '미친 네덜란드 사내'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반 고흐는 이 마을을 사랑했다.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약 70일 간을 이곳에 머물면서 70여 점의 유화를 완성했다. 어쩌면 미친 자만이 이루어낼 수 있는 열정이었다. 그 열정을 느끼라는 듯이 그렇게 햇살은 뜨거웠을지도 모른다.


어디에서나 느껴지는 그의 숨결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도착하면, 그의 숨결을 느끼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화가로서, 예술가로서 그는 그림으로 호흡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호흡과 숨결은 도처에 널려있다. 차를 주차한 그곳이 바로 오베르 시청이었으며, 그 주위에는 걸어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여러 장소가 있었다. 그가 그린 교회, 정원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 밀밭과 무덤까지. 70여 일간 토해낸 70여 점의 작품에는 그렇게 이 작은 마을이 생생하게 녹아 있다. 70여 일간 머문 그였지만 아직도 이 작은 마을을 반 고흐가 먹여 살리고 있다고 보면, 평생을 가난하게 동생 테오에게 돈을 받아쓴 그의 삶과 매우 대조적이다.


마을 전체가 그의 박물관과 같다. 곳곳에 그의 숨결이 느껴지는 작품의 배경이 널려있다.
바닥 곳곳에 그의 이름이 반짝인다.


(지금은 호텔로 쓰이는) 오베르 시청 건물 바로 앞에는 라부 여인숙이 자리 잡고 있다. 미친 사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정신병원에 갔다가 1890년 5월에 정착한 곳. 그는 3층 다락방 한편에서 수많은 작품을 그려냈다. 마치,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지금은 1층 식당을 기반으로, 2~3층은 반 고흐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반 고흐는 오베르 교회를 지나 펼쳐지는 밀밭에서 가슴에 총상을 입었다. 그 총상이 자살인지, 아니면 타살인지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수 킬로미터를 가슴을 부여잡고 그의 방까지 돌아온 그는 치료를 거부하고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동생 테오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슬픔은 영원하다."
반고흐의 방으로 올라가는 길
2층 기념품 샵. 밀이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가슴에 총상을 입은 그가 기어코 올랐을 계단. 하루하루 실패한 인생이라며 자책하며 올랐던 계단. 어쩌면 그 자책의 정도가 총상보다 더 쓰렸을지 모른다. 그래서 반 고흐는 총상 따위는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며 죽음을 택한 것일 수도. 2층에서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정해진 시간에 오를 수 있었다. 계단을 오르고, 그가 생을 마감한 방을 바라보고 있자니 먹먹함이 몰려왔다. 예술가로서 세상 모든 근심을 가지고 있던 그의 죽음은 그래서 고결했다.


그가 생을 마감한 방에는 햇살이 어거지로 드는 작은 창과 외로운 의자 하나가 놓여있다. 우측 벽면엔, 그가 작품을 벽에 걸어 말리다 묻은 물감의 흔적을 보존하려 유리벽을 설치했다. 실제로 그가 사용한 의자는 아니지만, 그것은 반 고흐의 외로움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었다.

우측 방에는 누군가 사용했을 침대의 앙상한 뼈대가 자리 잡고 있고, 우측 문으로 들어서면 큰 스크린과 함께 이곳에서 지낸 반 고흐의 시간을 설명해주는 시청각실이 있다. 도시의 소음이 시끄러워 이곳에 왔다는 반 고흐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찬양했다. 내가 바라던 시골, 내가 바라던 자연, 내가 바라던 풍경이라며.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고 밖으로 나와 조금만 걸으면, 그의 무덤으로 가는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좁은 골목길을, 석회암으로 지은 독특한 색감의 집들을 보며 걸으면 어느새 오베르 교회가 끄트머리에 보이기 시작한다.

반고흐 무덤으로 가는 길. 오베르 교회와 밀밭, 그리고 그의 무덤을 차례로 볼 수 있다.


교회에 이르러, 과연 반 고흐가 봤던 교회 지붕의 보라색과 오렌지 색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색채는 좀 더 강렬했지만, 그래도 그가 본 비슷한 색을 볼 수 있다는 건 그의 시선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림과 실제가 같으면서도 다르다. 그 다른 정도가 바로 반 고흐의 사상이자 예술적 감흥 일지 모른다. 그래서 더 특별하고, 실제보다 더 기억에 남는다. 실제와 같지 않아서 비판받았던 그의 그림이, 지금 우리에게 우리가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무한의 것을 속삭이고 있다는 건, 정말 큰 선물이다.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보이는 교회의 첨탑
그의 그림과 함께 교회가 나란히 위치해 있다. 실제로도 지붕의 색상이 매우 독특해 시선을 앗아간다.
그 날의 하늘은 맑았고, 햇살은 뜨거웠으며 바람은 고요했다.


교회를 지나면, 마침내 반 고흐가 사색하고 그림 그리고 죽음을 준비한 밀밭이 보인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그가 죽기 전 그린 마지막 완성작이다. 반 고흐는 밀밭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항상 그곳엔 길이 나 있다. 그리고 밀밭의 노란색은 황금색에 가까워 눈이 부시지만, 어쩐지 그의 마지막 그림의 밀밭은 황금색이라기보다는 축 처진 노란색과 같다. 게다가 어둡게 내려앉은 하늘과 그 경계에 있는 까마귀는 그의 죽음으로 가는 길을 암시한다. 우리는 태어나서 살아가는 것인지, 아니면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출생입사(出生入死). 반 고흐의 이 그림은 '입사(入死)'에 가깝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90년 7월. 반고흐 생의 마지막 주에 그려진 그림.
교회 위쪽으로 올라가면 그의 무덤으로 가는 길에 밀밭이 펼쳐져 있다.


밀밭을 지나면 서있는 공동묘지 입구는 그리 슬프지 않은 모양새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공원과도 같은 이곳에서 각자의 무덤은, 죽음을 그리 슬퍼하지 말라는 속삭임을 전하는 듯했다. 반 고흐가 말한 '영원한 슬픔'도 이곳에선 느껴지지 않았다. 날씨 탓이기도 했고, 지금은 그의 명성이 초라하지 않는데서 오는 작은 위로이기도 했다. 반 고흐의 무덤 옆엔 동생 테오가 함께 하고 있는데, 네덜란드에 묻혔던 테오의 시신을 그의 부인이 우애를 기리고자 1914년에 이장했다. 헌화가 놓인 그곳엔 어김없이 해바라기가 있었다. 그 노란색의 향연은, 뜨거운 햇살을 이기고도 남았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조금은 시원한 바람이 얼굴에 흐른 땀을 식혀줄 때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작은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

곳곳에서 반 고흐의 숨결을 느끼며 그의 미친 열정이 부럽기도 하고, 그의 죽음이 안쓰러웠다. 그를 몰라준 세상이 야속하기도 했고, 정신병을 이겨내기 위해 강렬하게 그린 그의 그림 속에서 그의 번뇌를 엿볼 수도 있었다.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죽어가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당연하면서도 무거운 그의 질문은 달갑지 않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이었다. 그 자신도 그것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을 것이나, 그 번뇌를 표현하는 데는 천재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마냥 신나는 여행은 아니었지만, 가슴속에 퍼진 울림은 이곳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안도감으로 매듭지어졌다.



묘지를 나와 맞이한 그저 평범한 방향 안내판 하나가 눈에 보이고, 가슴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종합 정보]

스테르담 저서, 강의, 프로젝트


[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신간 안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찾은 벨기에 브뤼헤 Part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