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두 아이들에게
어느 날 문득.
문득 말이야. 아빠가 너무 '소비적'으로만 산다는 생각이 들었어. '소비'란 말은 '재화를 소모하는 일' 또는 '시간이나 돈을 들이는 것'을 말해. 그런데 이 뜻 앞에 오는 또 다른 전제가 있어. 바로 '인간이 욕망의 충족을 위하여...'라는 말이지. 즉, '소비'라는 행위는 '욕망의 충족'이라는 목적을 위한 거야. '욕망'이라는 말은 감이 오지? '무언가를 가지거나, 하고자 간절하게 바라는 것'.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떠한 '욕망'을 가지고 있어. 배고파서 밥을 먹고 싶은 본능적인 것부터, 예수나 석가모니와 같이 고결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자아실현의 욕망까지.
그런데 무언가를 '소비'하면서 아빠는 생각했어.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소비를 하고 있지? 그러니까, 나의 욕망은 무엇인 걸까. 이것을 소비함으로써 내가 가지고 싶거나 이루고 싶은 게 뭘까?'라고 말이야. 아빠가 소비하는 것은 주로 '돈'과 '시간'이었어. 사실상, 살아가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두 가지. 그리 큰 부자는 아니지만, 어른이 되어 돈을 버니까 아빠가 원하는 작은 것들은 바로 사서 소비할 수 있고 시간도 어느 정도는 자유롭게 쓸 수 있는데, 돌이켜 보니 돈으로 산 것들이나 시간으로 소비하던 가십 뉴스거리들이 아빠에게 행복을 주지 못하더라고. 오히려, 후회가 되었고, '소비'에만 집중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땐 앞에서 말한 것처럼 무엇을 위해 '소비'하는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던 거지.
그러다 결심했어. 무언가를 '생산'하기로.
그렇다면 아빠가 당장 '생산'할 수 있는 건 뭘까? 직장이 있기 때문에 일도 열심히 해야 하고, 큰 종잣돈이 있어 당장 공장을 짓고 뭔가를 말 그대로 '생산'을 하거나 할 수는 없는 상황. 결국, 아빠가 당장 '생산'할 수 있는 건 '무형'의 것이라 결론지었지. 예를 들어, 아이디어로 새로운걸 발명한다던가 하는. 여러 고민 끝에 결국 택한 건 '글쓰기'였어. 무엇을 위해 할 것인지,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막막했지만 일단 무어라도 생산해보자는 마음이 간절했던 것 같아. 그러다 보니, 아빠가 모르던 아빠의 모습도 만나게 되고 또 글을 쓰려다 보니 생각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읽고. 작은 보상이었을까? 너희들도 알듯이 얼마 전엔 아빠 이름으로 된 책이 나왔어.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너희들도 아주 신기해했지. 얼마나 뿌듯하고 좋았는지 몰라. 주말에도 글 쓰느라 많이 놀아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멋진 변명이 되었으니.
아빠가 글을 쓰는 이유는 세 가지야.
첫째, 앞에서도 말했듯이 무언가를 '생산'하기 위해. 생산된 그것이 아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책을 내게 된 것도 그러한 이유고. 아빠가 지향하는 '홍익인간의 생산자'를 실천에 옮기고자. 아빠는 너희가 아빠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응원해주리라 믿어.
둘째는 아빠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야. 사람은 누구나 기록하고 싶어 하고, 자신의 생각과 족적을 남기길 원해.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또한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있지.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은 이러한 인간의 욕구를 잘 설명해 놓았는데, 생리/ 안전/ 애정과 소속/ 존경/ 자아실현의 단계로 그것을 분류해 놓았어. 이후에 매슬로우는 자아실현의 단계를 넘어선 자기초월의 욕구를 주장하기도 했고. 자기초월의 욕구란 자기 자신의 완성을 넘어선 타인, 세계에 기여하고자 하는 욕구를 뜻하는데 이는 앞서 말한 첫째 이유와도 연관이 되겠지? 아빠의 생각과 경험, 즉 스스로를 표현하고 자아실현과 자기초월을 이루어 보려고 해. 물론, '글쓰기'를 통해서 말이지.
세 번째 이유는 너희를 위해서야. 아빠는 너희에게 물려줄 것이 많지 않아. 앞으로 아빠가 얼마나 큰돈을 벌고, 많은 유산을 물려줄 수 있게 될지 모르지만 그런 것에 기대를 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 아빠가 너희에게 물려주고 싶은 건 바로 아빠의 '글'과 '생각'이야. 아빠는 어렸을 때 아빠의 아빠를 너무 일찍 잃고 말아서, 삶의 지혜에 대해 많이 듣지 못했어. 스스로 깨달아 나아갔지만, 늦은 감이 많더라고.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많이 몰려오더라. 그래서 아빠는 나중에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게 되면 우리 아이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많이 해줘야지... 생각하고 결심했었어. 아빠가 부딪치면서 배워 온 인생의 쓰고 단 맛. 희로애락. 그와 더불어 우리는 왜 살아야 하고 무엇을 위해 사는 건지. 세상 만물과 사람을 바라보는 자세와 방법. 그리고 깊은 생각.
아빠는 혼자 고민이 많았던 터라, 전공도 심리학을 택했었어. 나 자신을 너무나도 알고 싶었지. 물론, 아직도 그 답을 찾진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생각하고 고민한 많은 것들을 너희들과 같이 나누어 보려 해. 그러다 보면 더 알아갈 것들이 많겠다는 생각도 들고, 또 너희에게 해 줄 말들도 많고 말이야.
글을 쓰는 이유 세 가지를 늘어놓았지만, 어쩌면 마지막 세 번째 이유가 가장 의미 있을지 몰라. 너희에게 가장 큰 자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거든. 아빠의 아빠는 일찍 돌아가셨지만, 아빠의 엄마에게서 받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성격과 생각이 이제껏 아빠를 지탱해 준 큰 힘이었거든. 아빠의 생각과 성격도 너희들에게 살아가는 데 있어 큰 버팀목이 되었으면 해.
자, 이제 그동안 아빠가 해왔던,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하게 될 고민과 생각들에 대해 너희들과 나누어 보려 해. 아빠도 답은 잘 몰라. 그리고 답이란 없을지도 모르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똑똑한 것 같지만, 결국 어디에서 와서 왜 살고 있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은 사람은 없어. 그것은 우리를 만든 어떤 절대자만이 알고 있겠지.
그럼에도 우린 하나씩 알아나가야 해. 또 깨달아 나아가야 하고. 우리의 본질과 삶의 목적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꼭 가져야 그 답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거든. 최소한 답을 알지는 못하더라도, 스스로 답을 만들 수 있기에. 이를 위해 아빠는 인문학에 기대 보려 해. 인문학은 말 그대로 사람을 공부하고 사색하는 학문으로, 몇몇의 학문으로 정의 내릴 수 없어. 다만, 철학과 심리학을 바탕으로 접근해보려고. 물질적인 것들로 인해 천시되었던 인문학이 조명을 받는 요즘, 결국 사람은 자기 본연의 것을 잃고 달려왔기에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지점에 이르게 된 것 같아. 위기가 기회일 수도 있는 것처럼, 늦게나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 다행이기도 해. 기술과 문화의 발달, 그래서 소비할 것이 많지만 결국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것들을 만들고 소비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알아가고 어쩌면 행복이란 것을 만나게 될지도 몰라.
아빠가 되어, 이러한 생각을 함께 나누고 물려줄 수 있는 너희가 있어 참 고마워. 아빠가 되어 쓰는 인문학 편지는 아주 오랫동안 남겨지게 될 거야. 아빠가 너희들의 아빠로 남아있는 그 날까지. 아니, 어쩌면 그 이후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