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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12. 2017

자다르에서 받은 따뜻한 고백

마음이 뭉클했던 그 녀석의 한 마디


- 여정 -


[Intro] 여행은 고단함이다.

암스테르담 To 독일 뒤셀도르프 (228km)

독일 뒤셀도르프 To 오스트리아 비엔나 (차 싣고 12시간 기차 이동, 침대칸 1박)

오스트리아 비엔나 To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373km)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To 크로아티아 플리체비체 (130km, 1박)

크로아티아 플리체비체 To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242km)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To 크로아티아 흐바르 섬 (차 싣고 2시간 배 이동, 2박)

크로아티아 흐바르 섬 To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차 싣고 2시간 배 이동)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To 크로아티아 자다르 (159km, 1박)

크로아티아 자다르 To 슬로베니아 피란 (381km, 1박)

슬로베니아 피란 To 슬로베니아 포스타냐 동굴 (75km)

슬로베니아 포스타냐 동굴 To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 (105km)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 To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400km, 1박)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To 독일 뒤셀도르프 (차 싣고 12시간 기차 이동, 침대칸 1박)

독일 뒤셀도르프 To 암스테르담 (228km)



자다르의 석양은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웠던 석양은 어느새 아침 햇살로 바뀌어 있었고, 우리 가족은 아침을 맞이했다. 아니, 정확히는 첫째 녀석과 내가. 와이프와 둘째는 여행의 고단함을 아침의 단잠으로 풀고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어제의 왁자지껄했던 숙소 주변은 한없이 조용했다. 번화가 한가운데 위치한 아파트였던 터라, 밤늦게까지 우리와 같은 관광객들의 들뜬 목소리와 몸짓 하나하나가 귀에 생생하던 어제였다. 눈을 마주친 첫째에게 내가 말했다.


"우리 산책 갈까?"

"네, 아빠!"


첫째 녀석은 나와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먼저 잠든 둘째를 뒤로하고 손잡고 산책을 즐긴 것도 몇 번이다. 그러니, 아침에 일찍 눈을 뜬 우리 둘이 산책을 나가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자꾸 둘째보다는 첫째와 산책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고 보니, 네덜란드에서 반 고흐 미술관과 국립중앙 박물관을 단 둘이 다녀온 적도 있었다. 예전 글을 뒤져보니, "첫째 녀석과 반 고흐 미술관 데이트"라는 글도 썼더랬다.


길을 나서니 여전히 한가했다. 아마 일요일 오전이라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여기저기 청소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맨들맨들한 돌바닥이 윤이 나는게 괜히 그런게 아닌 것이다. 관광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보이지 않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 첫째 녀석에게 그분들의 수고를 알려 주고 싶었다. 다행히, 설명을 여차저차 해주니 잘 알아듣는다.


오후엔 뜨겁고 습한 날씨로 힘든 곳이지만, 아침은 선선했다. 바로 바닷가 근처라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골목골목을 거닐다 추억을 쌓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잠이 덜 깬 모습이지만, 녀석의 자세가 영 귀엽다. 이 귀여움이 시간이 지나면 든든함으로 바뀔 것이다. 든든해지면 든든해질수록 우리 사이는 점점 더 멀어질지도 모른다. 마음의 표현도 있는 그대로 하지 않을 그때. 아들로서 살아본 내가 잘 안다. 지금은 아빠의 손을 잡고 걸으며, 주위의 신기한 것들을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보지만 언젠간 나와 손 잡는 것 자체를 상상하지 못할 날이 오고 말 것이다. 이 녀석과 살면서, 손잡을 수 있는 시간보다 그렇지 않은 시간이 더 길 것이다. 


녀석이 커가면서 겪게 될 쓸데없는 상념에 빠져있을 때쯤, 갑자기 이 녀석이 불쑥 말을 한다.


"아빠, 아빠랑 이렇게 산책 나오면 느낌이 어떤지 알아요?"

"응? 어떤데? 기분 좋은 느낌? 신나는 느낌?"

"아니요, '따뜻한 느낌'이에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아침의 선선함은 오후의 뜨거움을 준비하기 위해 서서히 달아오르던 시점이었다. 그 더워지는 순간에 '따뜻한 느낌'을 생각해낸 녀석의 말 한마디에, 내 마음은 덜컹 내려앉았다. 더불어, 뭉클한 느낌이 가슴을 지나 목을 타고 코에 다다라 시큰함까지 느껴졌다. 많이 고마웠다. 녀석에게. 해준 게 별로 없지만, 그래도 하루에 네댓 번은 안아주며 바랐던 사랑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전해진 것 같았다. 벅차서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녀석은 나를 올려다보며 웃고는 바다 쪽으로 뛰어갔다.


기억력이 감퇴해서 그런진 몰라도, 이제껏 받았던 어떤 고백보다 따뜻하고 뜨겁고 뭉클했다.

그러고 보니, 난 누군가에게 당신과 있으면 따뜻한 느낌이 든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녀석은 기억도 못할 것이기에, 이렇게 글로 남겨 놓는다.

가족 여행을 하며 쌓은 추억 하나하나를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


따뜻한 느낌을 느낀 녀석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 따뜻함을 전하기를 바라본다.


아침을 준비하는 사람들. 관광객들이 오기 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
아름다운 석양을 삼킨 어제와는 다른 아침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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