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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여행
by 스테르담 Sep 09. 2017

아내의 가방 속으로 떠난 여행

그 가방엔 무엇이 들어있을까

사실, 아내란 말이 아직도 낯설다.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의 서로에 대한 호칭은 '여보' 또는 '누구 엄마, 아빠'였다. 그래서 난 이다음에 커서 결혼을 하면 당연히 그 호칭을 답습할 줄 알았다. 결혼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와이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땐 여전히 '와이프'란 호칭이 가장 부담 없다.)는 아직도 날 '오빠'라 부른다. 나도 와이프의 이름을 성을 빼고 부른다. 가끔 장난 삼아 '엄마'라고 아이들 목소리를 흉내 내며 부른다. 뭔가를 못 찾거나, 뭐가 필요할 경우에.

와이프의 이름이 입에 둥글둥글 착 감기는 발음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여보'라던가 '누구 엄마'라는 것을 입으로 읊조리기가 여간 낯설지 않다. '자기야'나 '달링'이라는 간드러진 표현보다 하기가 더 힘들다. 뭔가 어울리지 않는 존재로 규정하거나, 규정되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아니면, 시대가 바뀌어서 일까.


각자의 역할이 변했다. 저도 모르게.


부부에게 아이가 태어나면 인생이 바뀐다는 당연한 조언은 이제 나도 쉽게 할 수 있는 말이다. 더불어, 결혼하기 전이나 아이를 낳기 전에 무수히 들어온 말이기도 하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막상 닥쳐보면 다르다. 번지 점프를 하는 사람이 겁먹어 주저하는 것을 보고 "그냥 뛰어내리면 되지 뭐 저렇게 호들갑이야!"를 외치던 사람이, 막상 번지 점프대에 서서 울며 부는 것과 같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참으로 역할극이다. 태어나서 시작한 아기라는 역할부터 우리는 남자, 여자, 학생, 아들, 딸, 제자, 선배, 후배 등 다양한 역할을 거쳤다. 남자와 여자가 격렬하게 사랑해서 한 결혼은, 남편과 아내라는 역할을 시작하게 했고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부모라는 역할에 진입한다. 인생이 재미있으면서도 쓰디쓴 건, 이 역할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는 데에 있다. 하나의 역할이 끝나고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을 쓰고 또 쓰고 다시 쓰는 모양새다. 그것도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저도 모르게.


어느 날, 아내의 가방을 보다.


우연히 와이프의 가방 안을 본건 약 2주 전이었다. 보려고 보는 것보다, 우연찮게 보는 것에서 사람은 더 많은 걸 보고 깨닫는다. 그 순간 감성이 치고 올라와 '의미'라는 잣대를 사물에 들이대어 만들어내는 결과일 수도 있겠다.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다 보니, 한국 스타일(?)로 이발하기가 어려워 찾아간 한국 프리랜서 헤어 디자이너의 집에서었다. 먼저 머리를 만지고 기다리던 거실. 와이프의 가방이 열려 있었고, 그 안에 보이는 내용물들이 가방을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되도록 빼꼼하게 머리를 내어놓고 있었다.

그것들의 면면은 분명,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필수품인 휴대폰.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담긴 책 한 권. 혹시나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하면 입에 물려줘야 하는 과자. 혹자는 주재원 와이프라서 좋겠다고 하지만, 와이프의 삶을 보면 두 아이의 로드매니저와 같이 혹한 직업 그 자체다. 온 일정과 신경은, 아침에 눈을 뜨고 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아이들에 맞추어져 있다. 학교는 물론, 방과 후 수업, 친구들의 생일, 박물관과 경험 쌓기에 좋은 곳이라면 어디든. 운전하고 보살피고, 음식을 싸간다.

그러다 보니 자신은 온전히 뒷전이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연애할 때 와이프의 가방엔 자신을 꾸미고 유지하기 위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출장을 다녀올 때면 립글로스나 향수, 고급 화장품 등을 선물하곤 했는데 아마 그것들이 가방 안에 있었을 것이다. 그런 가방 안에 지금은,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고민과 아이들의 입에 물릴 먹을 것과 마실 것들이 가득하다.


부모라는 여행 그리고 가족이라는 여행


나는 사람으로 태어나 아기를 거쳐 지금은 남편과 아빠라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역할이 있지만, 가장 크게 와 닿는 것들. 이 역할극은 하나의 '여정'으로 표현해도 어색함이 없다. '인생'은 어딘가로 가는 '여정'이라는 것에 대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할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여정'은 여행 중에 거쳐가는 길이나 여행의 과정을 말한다. 즉, 우리는 삶 자체로 여행 중이다. 나의 여행을 하던 중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같이 걷고, 어느새 그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이에는 또 사랑하는 존재들이 생겨났다. 와이프와 나는 그렇게 수많은 역할과 여정을 거치며 지금은 아이들을 만나 부모라는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아이들은, 또 우리를 만나 누군가의 자식이라는 여행을 하고 있고 자라고 자라 우리와 같은 부모로서의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즉, 우리는 결국 그렇게 가족이라는 여행을 하고 있다.




와이프의 가방을 보며 떠난 생각의 여행이, 이렇듯 많은 여정을 떠올리게 했다. 좋은 엄마, 좋은 아빠가 되고자 하는 열망과 갈망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온전히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숙명이라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가족 여행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가족들의 건강과 하나 되는 마음이다. 누구 하나 아프거나, 누구 하나 마음이 비뚤어지면 그 여행은 삐걱 거리게 된다. 하지만, 그 삐걱거림도 받아들이고 이겨내고 이해해야 하는 것 또한 가족 여행의 매력이다.

가방 안에 든 것들을 보며, 와이프가 자기의 역할을 묵묵하게 잘 해내려 노력하는 것을 보며 나 또한 다짐하게 된다. 우리의 여행이 잘 이어질 수 있도록 나 또한 노력할 것을. 그리고 드는 고마움의 마음은 이 글로 대신 표현하고자 한다. 사랑한단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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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고, 노래하고, 강의하는, 나는 스테르담입니다.
ch.songs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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