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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Oct 14. 2017

지친 직장인이 추구해야 할 마음의 지향점

Part 2. 사람 공부가 필요하다 #4

전쟁터와 같은 직장 생활.

사방에서 날아오는 총알과 포탄을 피하느라 몸과 마음은 이미 피폐해져 있다. 그나마 직장생활이 진짜 전쟁터보다 나은 것은, 그래도 하루 중 언젠간 퇴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퇴근길에는 머릿속이 하얗고, 내가 왜 무엇을 위해 사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떠오르지만 그마저도 깊이 생각하기 힘들다. 어찌 보면 사치스럽고 고상한 고민은 뒤로하고 축 처진 몸을 그저 집 안 한구석에 내동댕이 친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라는 생각뿐.


그렇다면 우리는 '호메오스타시스'라는 말을 떠올려봐야 한다.

호메오스타시스(Homeostasis)

 Homeo(Same)와 stasis(to stay)의 합성어로 외부환경과 생물체내의 변화에 대응하여 순간순간 생물체내의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현상. 쉽게 말해 가장 알맞은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항상성'을 의미한다.


처음 이 호메오스타시스의 개념은 '생리학'에서 시작되었다. 사람의 몸속에 있는 세포들은 신비스럽게도 외부환경과 변화를 조절한다. 외부 기온이 떨어지면 몸을 떨게 하고, 기온이 높아지면 땀으로 열을 조절하는 것이 좋은 예다. 굳이 이보다 어려운 생리적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할 때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지도 않은 온도를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적당한 온도'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기분 좋게 한다. 배가 너무 고파도 불쾌하고, 너무 많이 먹어도 좋지 않다. 그 중간이 우리에겐 딱 좋다.


이러한 생리적 항상성 개념을 심리학에 연결한 사람이 미국의 생리학자인 캐넌(Cannon, Walter Bradford)이다. 감정이 소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를 하기도 했던 그는, 그의 저서 [몸의 지혜, 1932]에서 각종 신경계가 신체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는지 주목하고 서술했다.

즉, 퇴근 후에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는 우리네 직장인의 모습은, 이 호메오스타시스를 구현하기 위한 고요한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해오던 행동과 욕구, 그리고 동기와 연결 지어 이야기해보자. 호메오스타시스는 결국,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이나 상태가 무너질 경우 욕구나 동기가 발생한다는 중요한 단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알맞은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항상성'은 마치 시소와도 같다. 시소가 균형을 이루어 평형을 이룬 상태. 하지만 시소는 그 균형을 맞추어 곧이 서 있는 법이 없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과정 중에 어느 순간 평형이 유지될 뿐이다. 나는 가끔 생각하다. 우리의 삶은 신이 내린 '시소게임'이라고 말이다. 그것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우리는 살면서 이리 쏠리고, 저리 부치고 하며 시소의 '균형(가장 알맞은 상태)'를 맞추기 위해 죽어라 애쓰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다. 어찌 보면 사람에게 내린 신의 저주이자 장난과도 같다. 재밌는 건 그 균형을 맞추었다고 해서 마냥 행복한 것도 아니다. 편안해지면 지루하고, 지루하면 뭔가를 찾아 나서고, 뭔가를 하면 지쳐 쉬고 싶은 것들의 연속이다. 다시, 이건 분명 신의 몽니가 분명하다.


서양의 심리학에서 호메오스타시스를 말했다면 동양엔 '중용(中庸)'이 있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저작한 것으로 알려진 이 중용은, 사람은 누구에게나 인간적 욕심과 도덕적 본성이 함께 내재되어 있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인간적 욕심이 없을 수 없으며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도덕적 본성이 없지 않다고 하였다. 그러니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침이 없다'는 것을 가장 큰 덕목으로 삼아 그것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직장에서는 위에서 말한 '호메오스타시스'와 '중용'을 구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힘든 것이다. 그래서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같이 살펴보았듯이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행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복습해보자면, '행동'의 뒤편엔 항상 욕구나 동기가 존재한다. 그것은 나(우리)도 마찬가지다. 모든 행동의 이유에 대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찌 되었건 그것은 '의식적', '무의식적'인 욕구/ 동기의 과정이자 결과라볼 수 있다. '호메오스타시스'를 구현하기 어렵다는 것은, 뭔가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러기에 수많은 욕구불만이 발생한다. 사람들은 이 욕구불만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저마다의 방법으로 행동하고 표현한다. 누군가는 그 욕구불만을 최소화 시켜려 노력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그것을 회피하거나 아예 원천 봉쇄를 시도할 것이다. 그동안 살아왔던 사람들의 배경, 성격 및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 이러한 반응과 행동들은 천차만별로 갈린다.

한 번 생각해보자. 오늘 또는 예전에 이해하지 못할 행동으로 나를 힘들게 했거나, 업무를 할 때 꼭 소란을 피웠던 사람들. 매사가 부정적이고 방어적인 사람들. 그들도 뭔가 '호메오스타시스'의 균형이 깨져 힘들어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겨를 없이 자신만의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녔을는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 내가 했던 '행동'도 한 번 돌아보자.


사람은 저마다 행복을 추구한다. 위협받고 싶지 않아한다. 또한 욕구와 동기를 이루기 위해 행동한다. 이러한 행동들에 제동이 걸리거나, 제약이 발생할 때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반응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과 반응들이 모여 한 사람의 성향이나 성격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회사 가기 싫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직장이라 했다. 이미 욕구불만을 마음에 품고 모인 사람들의 생태계는 부침이 없지 않을 수가 없다. 각각의 사람들이 처해진 환경과 스트레스. 그리고 마음의 상처와 업무에 대한 중압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 등. '호메오스타시스', '중용'이란 말은 사치 중의 사치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들을 지향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지고 나와 남을 이해해야 한다. 내가 지향하는 가장 알맞은 상태는 무엇인지. 균형이 깨졌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지. 또 남은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지 등.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거나 느껴지기 시작하면 삶이 변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진다. 그것이 심리학을 공부하고 우리 생활에 적용을 해보려고 하는 가장 명확한 이유가 될 것이다.



덧붙임


'호메오스타시스'는 금단 증세에도 적용이 될 수 있다. 담배나 마약 등의 중독성 있는 것들에 대한 금단 현상은 '인공적 호메오스타시스'의 예다. 즉, 본인이 느끼는 가장 알맞은 균형점이 중독에 의해 왜곡되어졌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의 '욕심'도 인공적인 호메오스타시스를 형성한다고 본다. 욕심도 중독되기 때문이다. 특히, 직장인들은 승진이나 고액 연봉에 대한 욕심과 바람이 있다. 원하는 바(직급, 연봉)를 이룬다고 행복해지지 않음을 많이 경험한다. 그러니,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알맞은 상태'는 계속 변하게 된다. 그렇다고 욕심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만족하지 못하여 성장한다는 매슬로우의 이론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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