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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Feb 21. 2018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그 겨울, 모나코

니스에서의 일주일


- 여정 -


암스테르담 To 프랑스 니스 (비행기 이동, 1박)

프랑스 니스 (1박) To 모나코 (렌터카 이동)

프랑스 니스 (1박) To 프랑스 깐느 (렌터카 이동)

프랑스 니스 (4박) To 암스테르담 (비행기 이동)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사람들은 수식어에 주목한다.

그 앞에 무엇이 붙든 간에 '세계에서 가장'이란 말이 붙는 순간 그것의 가치는 커진다. '가장' 뒤에 오는 것이 '아름다운', '큰', '오래된', '깊은' 등의 최상급 수식어를 받는 형용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들을 기대하게 한다. 그리고 그 기대감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결국 여행을 떠난다. '세계에서 가장 어떠한 곳'에 가서 사진을 담는 일. 그리고 그곳까지 가는 과정에서 보고 듣고 맛보는 즐거움은 여행의 묘미다. 물론, '가장' 뒤에 오는 것이 꼭 거대할 필요는 없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작은 나라 '모나코'처럼 말이다.


예전의 여행과는 다르게 니스에서 일주일을 꼬박 지내고자 마음먹었지만, 좌로는 깐느가 있고 우로는 모나코가 있으니 그 둘을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차로 달려 약 30~40분 거리다 보니 잠깐 바람 쐬러 다녀오는 코스로도 괜찮았다. 깐느야 레드카펫이 떠오르기 때문에 당장 가봐야 할 곳이라지만, 모나코에 대한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다. 몬테카를로라는 단어가 불현듯 떠오르긴 했지만, 그것이 도시 이름인지 나라 이름인지도 모를 만큼 관심이 없었다. 다만,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라는 말을 들었을 땐, 왠지 꼭 가봐야 할 것 같았다. 나도 결국 그 '수식어'에 주목한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여행은 시작되었다.


모나코로 가는 길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이라는 수식어는 바꿔 말하면, '세계에서 작은 나라로는 서열 2위'라는 뜻이다. 말장난 같지만 그 의미는 다르게 다가온다. 나라가 굳이 그렇게 클 필요가 있나라고 말하는 것 같다. 지도에서는 항상 작게 느껴지는 우리나라, 게다가 반절로 잘린 반도는 더없이 작아 보이지만 여기저기 다녀보면 남한의 크기보다 작은 나라가 의외로 많다.


때는 크리스마스 당일. 설레는 온기가 가득했던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을 뒤로하고 맞은 아침은 차분했다. 숙소의 난방 상태가 영 좋지 않아 웅크렸던 몸이 찌뿌둥했지만, 역시나 따뜻한 라면은 우리 가족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달랬다. 잠시 렌트한 차량에 시동을 걸고 수동 기어를 당기며 모나코로 출발. 클러치에 이내 익숙해졌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바쁘게 움직이는 왼쪽 발과 오른팔은 결국 우리 차를 꿀렁이게 했다. 니스 시내를 벗어날 때까지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어야 하니 어서 빨리 고속도로에 차를 올려놓고 싶은 생각뿐. 니스의 교통 체증은 그리 즐겁지 만은 않았다. 그나마, 바다를 보며 가다 서다를 하는 것이 위로라면 위로일까.


얼마 달리지 않아 모나코 표지판이 보이고, 우리는 어느새 국경을 넘었다. 잦은 터널은 우리가 산비탈을 올라 산기슭을 가고 있음을 말해줬다. 모나코 입구부터는 운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GPS는 곧잘 끊기고, 앞에 두 개에서 세 갈래길이 나 있어 길을 잘못 들곤 했다. 길을 잘못 들면 또다시 돌아 원점으로 돌아와야 하고 거기서 다시 끊기는 GPS 때문에 오롯이 표지판을 주시해야 했다. 노래방 기계가 없으면 노래 가사가 기억나지 않고, 휴대폰 저장 목록이 없으면 전화번호가 기억나지 않듯이, GPS가 없으니 표지판을 보지 않았던 습관은 여지없이 길을 헤매게 했다. 디지털 치매는 한 두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겨울


크리스마스 당일의 모나코 역시 차분했다.

몬테카를로는 카지노로 유명하고, 돈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여가의 장(場)이기에 여기저기 슈퍼카들이 즐비하긴 했지만 소란스럽진 않았다. 한 겨울의 쌀쌀한 날씨는 아이러니한 따사로운 햇살과 어울려 우리 가족을 맞이했다. 몬테카를로 근처에 차를 대고 나온 우리는 한가로운 거리를 걸었다. 이른 아침이라서인지 사람들은 생각보다 적었다. 아마도 크리스마스인 전날 밤을 즐기고 어느 따뜻한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부둥켜안고 세상 편하게 잠들어 있지 않을까.


모나코에서도 교회나 성당을 마주하는 일은 여느 유럽과 같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우리 가족은 익숙하게 움직인다. 나는 교회의 전방을 감상하고, 이내 뒤를 돌아 오르간을 마주한다. 교회 각각의 오르간을 보는 것은 소소한 재미다. 그리고 천장을 보고 벽화를 본다. 아이들은 촛불 쪽으로 달려가 엄마를 졸라 1유로를 받아내 초에 불을 붙인다. 기도를 하고 소원을 빈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소원들. 기도하는 김에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하라고 슬쩍 귀띔을 하곤 한다.


지나치다 마주한 화려한 쇼핑몰은 역시나 오늘이 크리스마스 임을 알려준다. 화려한 조명과 장식. 바로 어젯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홀렸을까를 떠올린다. 그 빛에 감동하고, 즐거워하며 소란 소란했을 것이다.

몬테카를로 주변으로 가면 역시나 바다가 보인다. 멀리서 보는 바다는 평화롭다. 한 겨울이지만 따뜻하게 내리쬐는 태양은 바다와 잘 어우러진다. 눈이 부셔 찡그릴 정도로 바다와 맞닿은 태양의 빛은, 홀로 화려했다. 아이들은 결국 점퍼를 벚어젖혔다. 니스에서도 매일 봤던 바다를 또다시 신기하게 쳐다본다. 그리고 즐긴다. 난 그 모습을 보는 게 참 좋다. 바다와 어우러진 녀석들의 모습은 참 아름답다. 그 모습을 가슴속에 다시 한번 더 간직한다.


몬테카를로의 화려한 쇼핑몰
바다와 어우러진 가족을 마음에 담는 건 참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마주한 모나코의 크리스마스 마켓.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얼핏 모두 비슷하다. 정겹고 전통적이고, 조금은 촌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흥미롭다. 복사하기 해서 붙여놓은 것 같지만 저마다의 특색이 자세히 보면 보이기도 한다. 마시는 것은 비슷하면서도 먹는 것은 다르다. 빵과 고기를 다루는 것이 그렇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마켓을 지나 오르막길을 오른다. 이내 어느 광장이 나오고 전망이 보이며, 골목골목을 누리는 호사를 누린다. 유럽의 골목골목은 어디나 매력적이다. 날이 어둑어둑 해질 때까지 돌아다닌 우리는 그렇게 모나코를 즐겼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 두 번째로 작은 겨울과 크리스마스를. 어쩌면 우리 가족의 추억이 모나코 땅보다 더 클지도.


다시 니스로 향하는 길에는 GPS가 끊겨도 표지판을 보는 여유가 생겼다.

니스 숙소로 향하는 길이 어쩐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같았던걸 보면, 역시 집은 물리적 공간의 개념이라기보다는 '가족이 함께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어느 곳에서라도 말이다.


거리 곳곳의 오렌지 나무가, 이곳이 얼마나 따뜻한 곳인지를 말해준다.
크리스마스 마켓에는 흔히 서 있는 관람차
관람차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언제나 좋다.
모나코 크리스마스 마켓은 여느 유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정겹고 소박했다.
어둑어둑해진 저녁. 모나코와 안녕했던 그 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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