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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y 13. 2018

아내와 10년 동안 여행 중

앞으로 맞이할 더 길고 긴 여행에 대한 기대와 각오를 다짐하며

10년 동안 여행 중


그녀는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나도 그녀의 삶을 그렇게 바꿔 버린 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우린 우리의 삶을 스스로 바꿔 놓았다. '스스로'라는 단어를 사용하긴 했지만, 우리가 '스스로'한 것은 단지 '사랑' 뿐이었다. 그저 '사랑'했을 뿐인데, 우리는 기대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 받아들여야 했다. 그녀는 나에게 남편이라는 이름과, 아빠라는 역할을 주었다. 나도 그렇다. 그녀는 아내라는 이름을 가지고 엄마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우리는 '남자'와 '여자'란 존재로도 마주한다.


30년이 조금 넘게 혼자 여행하다 아내를 만났다. 그리고 시작된 10년 간의 동행. '부부'라는 여행은 가빴다. '사랑'하기에 바빴고, 한시라도 함께 하려 정신없었다. 무언가에 그렇게 탐닉해본 적이 있나, 어떻게 그런 집요함을 끄집어낼 수 있었나 싶었다. 그것도 잠시, 첫째가 태어나 우리의 여행 발자국은 세 명이 되었고 이에 질세라 둘째가 여행에 동참했다.


'사랑'의 대상이 한 명에서 '세 명'으로 늘어나면서 삶이라는 여행길에 들고 가야 할 짐들이 많이 생겼다. 여행경비는 물론. 지켜야 할 것, 조심해야 할 것이 늘어났다. 그런 것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나와 아내의 개인 시간은 줄어들었다. 돈 버느라 바쁘고, 아이 돌보느라 정신이 쏙 빠졌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어려움과 고달픔은 아이들의 손짓과 몸짓 하나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서로 함께 여행의 굴레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어느덧 돌아보니 10년.

아내와 함께 한 여행의 기간은 '결혼 10주년'이란 타이틀로 달력에 새겨져 있다.


앞으로 해야 할 여행


아내와 우리 가족은 이제껏 해 온 여행보다 더 긴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나, 나와 아내가 가진 '이름'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또다시 '할아버지'와 '할머니'라는 새로운 칭호를 받아 분주해질 것이다.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깨달을 것이다. 아, '엄마'와 '아빠'도 처음부터 부모가 아니었구나. 그 둘은 서로 사랑하던 그저 열정적인 '남자'와 '여자'였구나. 그들이 '스스로'한 것은 '사랑'이지만, 기대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마주하며 여기까지 온 것이구나.


가족이라는 여행은 그래서 흥미롭다. 아직은 '가족 여행'가자는 한마디에 흔쾌히 따라나서는 녀석들이다. 함께 하는 우리의 삶도 '여행'이라는 것을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어쩌다 만나 '인생의 여행'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함께 하는 '여행'은 그렇게 행복겹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유한하기에 더 의미가 있다. 언젠가 녀석들은 다른 무언가에, 사랑하는 누군가에 빠져들 것이다. '여행'은 꼭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녀석들도 혼자만의 여행이 필요하다. 내가 30년 동안 혼자 여행했다고 표현한 것처럼, 녀석들도 가족들과 함께 한 시간은 '여행'이라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결혼한 지 10년. 바뀐 건 단지 '남편'과 '아빠'라는 두 단어가 아니다. 다혈질이던 내가 조금은 마음을 다스리게 되었다. 마음 약한 아내 덕 분. 그렁그렁한 아내의 눈을 보면 도저히 화를 내기가 어렵다. 아내의 눈은 내가 화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마력을 가졌다. 연애할 땐 '매력'이었던 것이, 이제는 그 힘이 더 커져 '마력'이 된 것이다. 어찌 되었건, 성질을 어느 정도 죽일 수 있다는 측면에선 많이 고맙다.


아이들도 나를 많이 바꿔 놓았다. 아침이면 일어나 따뜻하게 안아주며 사랑한다는 말을 하게 만든다. 내가 어렸을 때 받지 못했던 것들. 일찍 아버지를 떠나보낸 내가 가진 '결핍'을, 긍정적으로 '승화'시켜 준 고마운 천사들. 내가 받지 못해서,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을 오히려 가능하게 해 준 존재들이다.




다 안다고 생각해도 우린 서로를 아직도 공부 중이다. 함께 한 10년이란 여행의 기간은 충분하진 않다. 앞으로 얼마간의 여행을 더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100% 아내를 알게 될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내 맘도 모르는 존재가, 누구를 온전히 이해한단 것일까. 그리고 빤히 다 아는 상대와 하는 여행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평생을 마주해도 모르는 나 자신과의 여행도, 그래서 매력적일런지 모른다.


앞으로의 여행이 기대되는 이유다.

물론, 각오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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