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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y 21. 2018

유럽바다와 함께한 시간들

바다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사람들은 조용히 열광한다. 다 똑같다.

바다와 함께한 시간들


'흐르는 물'과 '넓고 거대한 바다'와 같은 존재는 치유의 힘이 있다.

씻어버리고 싶은 상처, 떨쳐내고 싶은 아픔.

가슴 답답할 때 우린 샤워를 하거나 바다를 찾는다.


한국으로 복귀해 떠난 강릉 바다.

푸르지만 거센 파도를 보며,

유럽에서 함께 했던 바다를 떠올려본다.


산이 있기에 오르고,

바다가 있기에 떠났다.


내륙에 있으면 바다가 그립고,

바다에 가면 내륙의 편안함이 떠오른다.


바다의 포용을 배워야 하지만,

그 매서움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구구절절이 이른다.


바다를 응시한 눈빛들은

아마도 수많은 다짐으로 승화되었으리라.


그런 점에서 바다는 똑같다.

유럽의 바다든, 어느 나라의 어떤 바다든.




1. 이탈리아 베네치아


바다 위 인공섬과 같은 베네치아는, 사방에서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거대한 바다라기 보단, 곤돌라를 타고 돌아야 하는 골목골목의 '길'이다.

어스름한 새벽, 산마리노에 차오르는 안개는 잊지 못할 추억이다.


2. 프랑스 에트르타


노르망디 3대 절경이라 불리는 바다 중 하나.

자갈 해변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엄마 아빠는 물론 아기 코끼리를 만나게 된다.

언덕 바로 옆에는 골프장이 있어 바다를 바라보는 관광객과 퍼팅을 하는 플레이어들이 대조를 이룬다.


3. 프랑스 옹플레흐


사티의 짐노페디가 흐르는 바다, 사티의 생가가 해안 가까운 쪽에 있다.

해수욕의 이미지 보단 항구로서 그 역할을 다한다.

이 마을을 먹여 살린 든든한 가장과 같은 이미지다.

전승 기념일에 치러지는 범선 다이빙 대회,

해안가에 있는 관람차를 타고 바다와 어우러진 마을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4. 프랑스 몽셸미셸


몽셸미셸의 바다는 낭만과 거리가 멀다.

그 바다를 봄으로써 느껴지는 치유도 없다.

그 가운데 홀로 있는 몸셸미셸 성을 더 외롭게 만들어주는 조력자다.

그 바다는 듬성듬성하고, 갯벌은 바닷물의 색을 잿빛으로 만든다.

한 때는 감옥으로 쓰였던 이곳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는 듯하다.


5. 이탈리아 친퀘테레


웬만하면 운전하는 사람은 차멀미를 안 하지만 그 고정관념을 깨준 친퀘테레.

꼬불꼬불한 산등성이 길은 올라갈 때도, 내려갈 때도 사람을 힘겹게 한다.

등성이에서 보는 바다로 만족하고 발길을 돌릴까 하다,

결국 그 소소한 마을과 바다를 마주한다.

아이들은 자갈을 들어 그 큰 바다에 도전장을 내민다.

그 웃음을 보고, 소리를 들으며 차멀미의 안 좋은 기억은 점차 사그라든다.

바다와 가까운 쪽 주차장에 차를 댔다가, 거주자 지역이란 것을 몰라 딱지를 뗀 것은 잊히지 않는다.


6.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여름이지만 매서웠던 바다.

역시, 바다는 멀찌감치서 보는 것이 심신에 안정적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던 추억이다.

고래를 보겠다고 올라탄 배는 파도를 마주하며 바다로 나아갔다.

프리윌리를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은 단 10분 만에 뱃멀미로 장렬하게 전사하고,

고래는 영 나타나지 않다가 등 쪽을 살짝 보여주고는 야속하게 사라졌다.

사람들은 흡사 막 전쟁을 치르고 부상당한 채 배에서 내리는 모습으로 땅을 밟았다.


7. 아이슬란드 남부 바다


아이슬란드는 섬이기 때문에 어딜 가도 바다를 쉽게 볼 수 있지만,

해변 자갈색 하나만 달라도 그 의미가 달라진다.

검은 자갈로 가득한 해변은 바다보다 더 주목받는다.

한 여름이었지만, 아이슬란드를 둘러싼 바다의 성격은 순하지 않다.


요쿠살롱으로 발길을 옮기면, 강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곳에 빙하가 있다.

바다로 흘러가 녹는 빙하가 마치 그 생을 다하고 스러지는 한 생명체와도 같아 보인다.

마치 우리처럼.


8. 스페인 네르하


유럽의 발코니 네르하.

한 겨울 12월이란 게 믿기지 않는다.

아이들은 두터운 점퍼를 벗어던지고 바다로 향한다.

무릎 위까지만 젖자는 약속은 잊은 채, 어느새 물속에 온전히 온몸을 적신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난 아직도 찬란하게 뛰어놀던 아이들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그거면 됐다.


9. 스페인 말라가


바다라기 보단 작은 항구지만, 그 앞에서 하늘 높이 뛰어오르던 아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깊은 바다와, 높은 점프가 어울리던 그 날.


10.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기차에 차를 싣고 떠난 여행.

무더운 한 여름이라도, 해가 어스름해지면 여지없이 시원한 바람은 바다로부터 불어온다.

흐바르 섬으로 향하 배를 기다리며,

아이들은 저너머 내일 아침을 기약하는 태양을 바라본다.

작은 체구로 거대한 바다를 마주하고 있지만,

어쩐지 녀석들의 원대한 다짐이 느껴지는 모습.

나보다 더 큰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던 내 기도는 스플리트 바다에 가지런히 뿌려졌다.


11. 크로아티아 흐바르 섬


단연코, 최고의 바다였다.

스플리트에서 2시간 넘게 배로 이동하여 밤늦게 도착한 곳.

파도 소리만 가득한 밤을 보내고, 아침에 창문을 열었을 때 펼쳐진 바다가 온 가족을 들썩이게 했다.

무덥고 습한 한여름의 공기는 빨리 바다로 가라고, 아직도 가지 않았냐고 부추겼다.

맑은 물과 자갈, 해산물이 어우러진 모든 조화가 그리도 완벽했었다.


12. 크로아티아 자다르


자다르는 해를 삼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것도 아주 멋스럽게, 여운이 남게 넘긴다.

자다르의 바다가 해를 부드럽게 삼키고 나면, 사람들은 박수를 친다.

석양도 일출처럼 그토록 설렐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일출은 많은 것을 다짐하게 하지만, 석양은 지나간 일을 용서하는 여유를 선사한다.


13. 슬로베니아 피란


피란에 도착했을 땐, 햇빛이 쨍쨍했다.

우리 가족을 환영한다는 듯, 강렬한 태양이 빛을 쏘아댔다.

숙소에 짐을 막 풀었을 때, 갑자기 바다로부터 무언의 경고가 몰아쳤다.

바다로부터 온 빗줄기는 모든 것을 날려 버렸고, 한 성깔 할 수도 있다는 피란의 모습을 보여줬다.

잠깐의 짜증이 지나고 난 뒤의 피란은, 헤비메탈을 부르다가 클래식을 연주하는 것처럼 고요했다.

그래서 피란의 첫인상은 나에게 '변덕'과도 같다.


14. 프랑스 니스


니스의 바다가 아름다운 건 니스 때문일지 모른다.

아니, 니스가 바다 때문에 아름다운 것일까.

가슴 아픈 테러가 일어났던 곳이지만, 바다는 아픔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파도는 여전하다.

따사로운 햇빛은 모든 것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몰려오는 파도는 적당히 부서지고, 드넓은 풍경은 마음의 시야를 넓게 한다.

니스의 매력이다.


15. 프랑스 깐느


깐느는 끝내 우리에게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눈치 없이 흩뿌리는 비 때문에, 깐느의 바다는 멀리서 봐야 했다.

작은 항구 도시의 레드카펫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끌어 모아서일까.

조금은 도도한 도시의 새침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16. 모나코 몬테까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

그래도 해안 마을은 어느 곳에 못지않다.

관람차를 타고 바라보는 바다는 그렇게 드넓다.

나라가 작다고 바다가 작은 건 아니니까.


17. 네덜란드 스케이브닝엔


네덜란드 주요 절기에 대규모 불꽃축제가 열리는 곳.

수도 헤이그 부근에 위치한 해변가다.

즐비한 레스토랑에선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클럽 라운지 음악이 흘러나온다.

비스트로에 앉아 시원한 맥주와 햄버거를 시키고 바다와 마주하고 있으면,

모든 근심 걱정은 잠깐이라도 잊힌다.


18. 네덜란드 텍셀 섬


네덜란드 북쪽.

배에 차를 싣고 20~30분을 가면 텍셀 섬에 도착한다.

크지 않은 그 섬은 네덜란드스럽지 않은 또 다른 이국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날씨만 잘 골라서 간다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이태리나 스페인의 섬으로 갈 필요가 없을 정도다.

다만, 좋은 날씨를 만날 확률은 그렇게 크지 않다.


19. 네덜란드 카트바이크


고양이 해변으로 불리는 카트바이크는 젊은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래서 톱리스를 한 여성들도 눈에 많이 띈다.

해수욕은 물론, 산책하기도 좋은 곳.


20. 네덜란드 잔드포트


네덜란드의 바다는 북쪽 아니면 서쪽인데, 서쪽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석양과 친숙하다.

날씨로 악명이 높은 네덜란드지만, 그래도 한여름의 석양은 잠시라도 그것을 잊게 한다.

석양은 어쩐지 마음을 정화하는 힘이 있다.

그것이 바다와 만날 때면 언제든.




유럽의 바다도 다르지 않다.

바다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사람들은 조용히 그 바다에 열광한다.

탁 트인 바다를 보는 일은 행복이다.

그리고 다짐이자, 정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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