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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pr 09. 2018

직장생활, 정답은 없고 오답은 있다.

'오답' 보다 먼, '정답'에는 더 가까운 '진심'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어느 한 감독의 영화 제목이다.

감독 개인 상황에 비추어보아, 현재를 선택하고 과거를 부정하려는 듯 보인다. 어찌 되었건 이 짧은 문장 안에는 두 가지 조건이 섞여 있다. 첫째는 '내'가 바라보는 관점이라는 것, 두 번째는 '정답'이라는 잣대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정답'은 자신의 관점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또 모른다. 지금의 사랑에 후회하고 조강지처를 찾아가는 일이 생긴다면, 이 영화 제목은 바뀔 수도.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로.


삶이 이렇고, 사랑이 그렇듯 우리네 인생의 엑기스가 함축된 직장 생활은 더더욱 부침이 심하다. 관점에 따라 맞고 틀리고가 반복되는 정도가 상상을 불허한다. 그렇다면 과연 '정답'이란 것이 있긴 한 걸까? 사람들이 말하는 '정답'에 대한 기대는 절대적이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맞고 틀리고'의 관점은 허무하도록 상대적이다.


직장 생활, 정답이 있을까?


우리는 살아오면서 수많은 '정답'을 강요받는다.

'정답'을 찾아내는 것에 얼마나 골머리를 쓰는지, 아예 보기를 4개나 5개로 한정 지어 준다. 그것은 곧 죽어도 '정답'은 있다는 것을 내포한다. 정답 칸을 비우거나, '0'이란 숫자를 넣으면 가차 없이 오답처리가 되고 만다. 기껏해야 그중 답이 2개일 수도 있는 약간의 변수가 있긴 하지만, 어쩐지 모양새가 세상 모든 진리를 그저 몇 가지 보기 중에 가둬 놓은 느낌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학생이라면, 직장인이라면 이래야 한다...'라는 철석 같은 믿음이 있다. 학생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 하고, 직장인이라면 경쟁에서 살아남아 인정받아야 한다는 '정답'. 학생 때야 그 정답을 5지선다 중에서 고르면 되지만, 직장인에겐 '보기'마저 없다. 그래서 더 힘들다. 사회에 발을 갓 들인, 학생으로부터 사회인으로 역할 변화를 겪은 지 얼마 안 되는 신입사원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열심히 한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설렁설렁해도 승승장구하는 사람. 누군가는 죽어라 일하고 일해도 일이 끊기지 않고, 누는 월급루팡으로 하루하루 편하게 사는 사람. 일 잘해서 인정받다가 어르신 모시고 과속 방지턱 한 번 잘못 넘 미운털 박힌 사람, 일은 죽어라 못하는데 노래방에서 분위기 한 번 살려 요직에 배치되는 사람. 모두의 찬사를 받지만 임원한 번 달아보지 못하고 퇴사하는 사람, 아랫사람들로부터 인정은 눈곱만큼도 받지 못하는데 이상하게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는 사람. 빨리 간다고 좋아하다 급격하게 내리막을 겪는 사람, 느리게 간다고 슬퍼하다가 빨리 간 사람보다 더 잘되는 사람 등. 정말 '정답'이란 단어가 무색해질 만큼 별의별 일들이 다 있는 곳이 직장이다.


결국, '정답'은 없다고 이야기해도 큰 무리가 없다.


그래도 오답은 있다!


이처럼 직장엔 '권선징악'이나 '개미와 배짱이' 같은 드라마틱한 스토리, 즉 정답은 없다.

저마다의 생존이 처절한 목적인 직장인들에게, 이러한 것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오답'은 있다는 것이다. 직장도 결국 '사람'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정답'을 찾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우리는 뭐가 '오답'인지는 서로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기본적인 매너에 달려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어수선하고 '정답'이 없는 직장생활 가운데서도, 직장인들에겐 공통된 믿음이 하나 있다. '그래도 진심은 통한다는 것'. 그 알량한 믿음은 아무리 정치가 판을 치고, 공평하지 않은 일이 비일비재한 곳에서도 건재하다. 후배들에게 사랑을 듬뿍 쏟아주었지만 임원을 달지 못하고 회사를 떠난 선배의 진심을 느꼈다면, 어쩌면 그 선배는 우리에게 있어서 '정답'은 아닐지 몰라도 '오답'이 회자되진 않는다.


'오답'은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다. 일도 못하고, 업무에 도움도 안 되는. 그렇다고 후배들을 챙기는 것도 아닌. 뭐 하나라도 특출 나고 도움이 되어야 다른 단점을 상쇄하여 '정답'과 '오답'의 사이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오답'인 것을 누구라도 안다. '진심'이 전해지지 않는 사람. 나에게도 너에게도, 회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을 '오답'이라 분명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이 돌아가는 자태(?)가 너무나 혼란스럽다.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기대치 않게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에 대해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그것에 목말라 있다는 방증이다. 후배들을 진심으로 사랑한 선배, 정치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묵묵하게 잘 해나가고 있는 동료, 속도에 연연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자신과 싸워나가는 후배. 이 사람들이 우리가 기대하는 '정답'의 결과를 내놓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소한 '오답'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은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도 내 '진심'은 무엇인지 고민한다. 나는 '진심'을 가지고 있는가.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누구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가. 어찌 되었건 나는 그 '진심'이 내가 생각하는 '정답'에 그래도 조금은 가깝다고 생각한다. 후배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회사 내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직장은 누구의 행복을 위한 곳이 아니다. 그럴 거면 애초에 월급을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왠지 월급을 받으면서 그래도 조금은 더 행복한 직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오답'보다 먼, '정답'에는 더 가까운 '진심'을 느끼고 만들어가며 살고 싶다.


그것이 나에겐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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