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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l 27. 2020

직장인, 내 자리는 일 인분이 아니다.

내가 얻어가는 깨달음과 의미를 일 인분 이상으로 챙겨 가야 하니까.

내 자리는 일 인분일까?


책상 하나.

의자 하나. 언뜻 직장 내 나의 자리는 일 인분으로 보인다. T.O. (Table of organization)상으로도 분명 숫자 '1'로 표기된다. 'HR (Human Resource)'인 직장인은 그러니까 그렇게 '1개의 resource'인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해야 하는, 처리하고 맞이해야 하는 업무량을 볼 때 그게 일 인분인지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월급과의 상관관계를 따져 보면, 좀 더 머리가 복잡해지는데 결론적으로 '업무'는 일 인분 이상이고, '월급'은 일 인분 이하라는 생각이 든다. 월급을 받는 모든 존재는 아마 이 생각에 흔쾌히 동의할 것이다.


먼저, '업무'를 보자면.

'R&R(Role & Responsibility)'이 정해져 있긴 하나, 각 R&R의 영역 상 'Grey zone(애매한 영역, 불분명한 범위)'가 존재한다.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일. 그러나 어찌하다 보니 해야 하는 일. 아니라고 했다간 사회생활, 조직 생활에서 제명될 수밖에 없는 일. 또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나를 위해 꼭 해야 하는 일(ex. 정치) 등.

그것은 결코, 일 인분이 될 수 없다.


'급여'는 어떠한가.

'급여'는 이미 합의가 된 구체적인 숫자지만, 앞서 말한 '업무'를 떠올리면 '상대적' 개념이 된다. 즉, 일하기 전엔 그나마 괜찮아 보였던 액수가, 일 인분 이상의 업무를 하게 되면서 일 인분 이하로 쪼그라드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 알게 된다. 그러니까, 위에서 이야기한 온갖 'Grey zone'의 일과 바가지로 먹어야 하는 '욕'이 급여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것들이, 명시된 것보다 (직장에는) 훨씬 많다는 것을 말이다.


내 자리는 일 인분이라는 착각


조직도나 프로젝트를 편성할 때 재미있는 표기를 볼 때가 있다.

바로 인원 한 명을 0.5로 표기하는 것이다. 즉, A와 B라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한 사람이 A와 B에 그 역량을 반반 기여하라는 이야기다. 후라이드 반, 양념 반도 아니고... 그러나 직장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실화라는 것을 잘 안다.


물론, 결과적으로 볼 때 그 한 사람에게 '0.5+0.5=1'이 되지 않는다.

좀 더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조직은 '1.5+1.5=3'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실제로 프로젝트의 막바지에 이르면 '3'까지는 아니라도 '1.5~2.0'이상 쥐어 짜냈음을 알게 된다. 앞서도 말했지만, 명시되지 않은 것들이 명시된 것보다 많은 세계가 바로 직장이다.


월급쟁이 입장에서 급여는 만족할 수 없는 숫자지만, 사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그건 우리가 생각하는 일 인분이 아니다. 

인건비는 '노무주비'와 '노무부비'로 구성되는데, '노무주비'는 임금, 급료, 수당, 상여, 퇴직금을 이야기하고, '노무부비'는 직원의 관리 및 복리후생을 목적으로 하여 기업이 부담하는 비용 전체를 말한다. 그러니까, 내가 보는 급여는 일 인분이 아닐 수 있지만, 그 기준을 고수하면 급여 외에 들어가는 비용을 통틀 때 일 인분 이상의 금액이 나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내 자리는 일 인분이 아니라는 걸 인정할 때


그러니까 아예, 내 자리는 일 인분이라는 생각을 버리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업무'는 항상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고, '급여'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알게 모르게 나를 더 감싸고 있다는 것이다. 월급쟁이가 지겨워 회사를 박차고 나가 사업을 한다고 생각해보면 더 쉽다. 아마 그 기준은 쉽게 반대로 전환될 것이다. '업무'는 일 인분이 안된다는 생각, '급여(비용 포함)'는 일 인분 이상이라는 생각.


그래서 고분고분하게 직장생활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생산적으로 어느 중간에 서서 양쪽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리하면 시야가 넓어지고 관점이 바뀐다.


일 인분 이상의 일을 우리는 어찌 되었건 해내고 있다.

해야 하니까. 하고 싶지 않아도. 간혹, 아주 간혹. 내가 원해서. 이를 통해 성장한다는 생각을 솔직히 해본 적 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하기 싫어서, 힘들어서 기분이 그저 그런 것과 그럼에도 내가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했다는 건 별개다. 그러니까, 기분이 좋지 않고 힘들다고 내가 성장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내 자리를 일 인분으로 한정 지으려 할 때, 우리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걸 알아야 한다.


급여 또한 전체적으로 보는 게 맞다.

불만은 분명 있지만, 나를 둘러싼 모든 비용과 지원을 종합적으로 생각해야 혹시라도 급여만 보고 쉬이 다른 곳으로 이직하여 후회하는 일을 최소화할 수 있다. 급여 얼마 차이로 이직을 했는데, 전체적인 혜택이 기존보다 못하다면 낯선 이동의 Risk-taking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뜻이 있거나 그럼에도 본인이 원하는 곳이라면 가야 하는 게 맞다.)




나는 가끔, 내 일이 지겨워질 때.

그래서 나태해지려 할 때. 혹시,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내 자리에 오지 못하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고 스스로 반성한다. 이것은, 있어 보이려고 하는 이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는 약침이자 자극제다.


다시, '업무'는 언제나 일 인분 이상이고, '급여'는 언제나 일 인분 이하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일 인분'에 연연하지 말고, 몇 인분이든 간에 그것에서 얻을 것들에 대해 집중하는 것이 좋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내가 얻어가는 깨달음과 의미를 일 인분 이상으로 챙겨 가야 하니까.


월급쟁이의 고만고만한 외침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언젠가 월급쟁이 신분을 벗어야 할 때가 분명 온다는 걸 떠올리면 마냥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란 걸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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