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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l 04. 2018

푸른 심장이 뛰는 그곳, 네덜란드 델프트

낯선 세계로의 여행

* 본 글은 원고 청탁으로 '현대 모비스 사보 7월호'에 기고된 글입니다.


일상이 눈부신 네덜란드


자전거는 ‘여행’과 잘 어울린다. 조금이라도 빨리, 멀리 가 보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주변을 천천히 음미하고픈 바람의 절충점이다. 걸음보다 빠르지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놓치지 않는다. 마음을 홀리는 매력이 어딘가에 있으면, 곧바로 멈춰 설 수도 있다. 온몸을 보듬어 안아주는 상쾌한 바람은 덤이다. 자전거에 올라타 미끄러지듯 주위를 둘러보면, 모든건 오롯이 나를 위한 파노라마가 된다.


네덜란드는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기 좋은 나라다. 아니, 어쩌면 그 ‘일상’속으로 파고들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다. 관광이나 여행객을 위해 만든 무엇이 아닌, 자전거는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있어 예부터 자연스레 향유되어온 문화이자 생활이기 때문이다. 전체 인구보다 1.3배 많은 자전거 대수와 온 국민이 연간 150억 km를 자전거로 이동한다는 기록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무엇보다, 자전거로 네덜란드 각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그들의 생활과 동화되는 느낌이 여행의 묘미를 더한다. 나의 ‘일상’을 떠나, 다른 이의 ‘일상’에 빠져드는 아이러니라니.


네덜란드가 그렇다. 다른 유럽과는 달리 뭔가 커다란 한방이 없어 보일 수 있다. 에펠탑도 없고, 빅벤도 없다. 피요르드와 같은 자연의 향연은 고사하고, 두오모나 가우디 같은 걸출한 성당도 없다. 그러니 네덜란드만을 유럽 여행의 목적지로 정하여 오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다. 대부분은 당일 경유로 잠시 들르거나, 길어야 1박 2일이어서 암스테르담만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그 ‘일상’은 정말 눈부시다. 유유자적한 사람들. 보트를 타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운하를 가로지르고, 그 끄트머리에 앉아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가족들. 관광객이나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유유함을 뽐내는 백조와 오리, 넓은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과 소 그리고 말은 이게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인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 사이사이를 가로질러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멀리서 바라보면, 이제 막 반 고흐가 캔버스에 그려낸 그림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참 안타깝다. 네덜란드의 매력은 이렇게 소소하지만 눈부신 ‘일상’에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고 스쳐만 가니 말이다.


푸른 심장이 델프트의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이한다.


푸른 심장이 뛰는 그곳, 두근두근 델프트


그런데 만약 당신이 델프트까지 올 수 있게 되었다면, 난 당신이 정말 행운을 얻은 사람이라 말하고 싶다. 암스테르담에서 남서쪽으로 약 70km, 1시간 이상을 차로 달려왔다는 건 네덜란드를 스쳐 지나가지 않는다는 뜻일 테니까. 더불어, 조금은 그 ‘일상’에 다가갔다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젠, 자전거를 빌려 타고 델프트를 둘러볼 시간이다.


도시의 입구에 이르게 되면 푸른색 심장 하나가 사람들을 맞이한다. 1998년에 세워진 “Het Blauwe Hart (The Blue Heart)_by Marcel Smink”다. 델프트의 작은 상징이 된 이 조형물은 끝내 사람들의 걸음을 멈추고 카메라를 꺼내게 만든다. 거대하진 않지만, 사람들은 이제 슬슬 네덜란드의 ‘소소한 일상’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델프트 도자기의 청색을 상기하며, 자신이 델프트에 제대로 왔음을 확인한다.


델프트는 인구 약 10만 명의 소도시다. 네덜란드 주요 도시 20위 권에도 채 들지 못한다. 하지만 그 존재감은 상당하다. ‘푸른 심장’의 조형물이 있다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경제수도 암스테르담과 행정수도인 헤이그의 그것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 네덜란드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시킨 ‘오라녜 공 빌럼 1세’가 주둔지로 낙점한 곳이 델프트였기 때문이다. 1581년엔 임시 수도로 지정되기도 했었다. 이후 1584년 빌럼 1세가 암살당한 곳도 델프트였고, 그의 시신을 품고 있는 곳도 바로 델프트다. 빌럼 1세는 암살당하면서도 다음과 같이 유언을 남기며 대인의 면모를 보여줬다.


“신이여 내 영혼을 가엾게 여기소서. 신이여 이 불쌍한 이들을 가엾게 여기소서”


그래서 네덜란드 사람들은 ‘오라녜 (작가 주: 영어로 Orange) 빌럼 1세’를 기리기 위해, 아직도 ‘왕의 날’이 되면 온 나라를 오렌지색으로 물들인다. 우리가 네덜란드 축구팀을 일컬어 ‘오렌지 군단’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푸른 심장을 지나 우측으로 접어들면 곧바로 ‘마르크트 광장’이 펼쳐진다. 탁 트인 광장과 마주 보고 있는 커다란 건물을 보면 심장이 두근두근 대기 시작한다. 푸른 심장에서 바라볼 때 우측에 위치한 것은 ‘신교회’고, 좌측에 위치한 건 ‘구 시청사’다. 광장 한가운데로 발길을 옮겨 그 둘 사이에 서면 오묘한 기분이 든다. 마치 나를 중심으로 세계가 돌아간다거나, 위대한 어떤 두 존재가 나를 두고 대립해 있는 모양새다. 하늘이 맑아 구름이라도 빨리 지나가면, 내가 밟은 땅이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우리나라 63 빌딩의 250m에 한참 못 미치는 높이 약 109m의 교회지만, ‘신’이라는 존재를 머금은 첨탑의 아우라는 가엽고 하찮은 존재를 끝내 압도하고 만다.


하지만 ‘신’은 자신에게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교회로 들어가면 그 끝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 물론, 절대자에게 가까워지기 위한 비용은 지불해야 한다. 원형으로 좁디좁은 계단은 내려오는 사람과 올라가는 사람으로 뒤엉킨다. 인생의 고단함을 되새기며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마침내 한 줄기 빛이 보이는 꼭대기에 다다른다. 지난날의 고단함을 벗어버리고 천국에 온 듯, 시원한 바람에 온 몸과 영혼을 내맡긴다. ‘구원’이란 이런 걸까 잠시  만끽하다 눈을 들어 흔하지 않은 네덜란드 도시의 ‘정수리’를 내려다본다.


네덜란드는 산이 없고, 지반이 약한 이유로 초고층 빌딩이 드물어 높은 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러니, 델프트에 왔다면 신교회 꼭대기로 가보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이 달라진다. 탁 트인 하늘과 시원한 바람, 가지런히 정리된 도시의 정수리와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은 힐링 그 자체다.


신교회 정상에서 바라본 델프트의 정수리


시간을 머금은 델프트의 골목골목


델프트는 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 그래서 옛 모습 그대로를 잘 간직하고 있다. 광장을 벗어나 골목 사이사이를 지나다 보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한 이유다. 그 세월의 흔적이 델프트의 매력을 한층 끌어올린다.


광장부터 골목까지 “Royal Delft Ware”라는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명품 도자기로 유명한 도시임을 다시 한번 더 느끼는 순간이다. 사실, 델프트 도자기는 중국산 청자의 아류가 그 시작이다. 17~18세기 동인도 회사로 해상 무역을 장악했던 네덜란드는, 청자를 들여와 비싸게 팔곤 했는데 이를 대중화시키기 위해 이탈리아 도예 장인들을 델프트로 영입해 청자를 모방한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에 점점 델프트만의 디자인 요소가 가미되면서, 18세기에 이르러 ‘델프트 도자기’라는 독립적인 정체성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 델프트 도자기는 그릇만이 아니라, 타일과 같은 인테리어 재료로도 발전이 되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그린 델프트 태생의 베르메르는,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우유 따르는 여인’의 우측 아래에 ‘델프트 타일’을 그려 넣기도 했다. 하얀색과 푸른색의 오묘한 조화, 델프트에서만 느껴지는 특유의 디자인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동시에, 그 가격을 보고 나면 더 큰 탄성이 튀어나올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골목을 거닐다 보면 결국 네덜란드 도시 어디에나 있는 운하길을 맞이한다. 운하를 쭉 따라 골동품 시장이 장사진을 이룬다. 내다 팔고 있는 물건들을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만다. 언제적인 것인지 가늠할 수도 없는 희귀한 것들이 한가득이다. 그것이 돈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 하나하나 모든 것들이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지금의 할머니들이 아기 때 가지고 놀았을 인형부터, 중세 시대에나 썼을법한 다리미와 촛대 등. 시간을 거스르는 존재의 모임이 다채롭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면 운하길 옆 길 끝쪽에 ‘구 교회’를 만나게 된다. ‘신 교회’에 비해 작고 수수하지만, 멀리서 봤을 때 약 10도 이상 기울어진 것이 눈길을 끈다. 네덜란드 피사의 사탑이라는 별명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운하를 메꿔 짓다보니 기운 것이라 정기적으로 재건축과 보수를 반복하고 있다.


광장을 지나 골목을 누비며 시간 여행을 하다보면 허기가 어김없이 찾아온다. 이 땐 광장주변이나 어느 큰 골목에 위치한 청어 가게로 향하는 것이 좋다. 양파를 곁들인 하링(청어) 샌드위치는 꼭 먹어봐야 한다. 맛이 낯설더라도 네덜란드의 ‘일상’을 느끼고 싶다면 말이다.  더불어, 갓 튀겨낸 바삭하고 따뜻한 ‘키블링(대구튀김)’은 한국인의 입맛에 제격이다. 곁들어지는 네덜란드 감자 튀김은 허기진 육체는 물론, 영혼까지 위로해준다.


이젠 운하 옆에 가지런하지만 제각각 놓인 테이블에 앉아 커피나 차를 시켜 놓고 주위를 음미한다. 움직이는듯 아닌듯 흘러가는 운하와, 상쾌한 바람. 골동품 가게들을 지나치는 사람과 자신의 추억을 팔려는 사람들의 분주함이 기분 좋게 다가온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네덜란드와 델프트의 ‘일상’에 젖어든다. 어쩌면 가장 빛나는 여행의 순간이 아닐까 싶다.


광장에서 마주보고 있는 신교회와 구시청사
길게 늘어진 운하길에는 시간을 거스르는 물품들이 한가득이다




[델프트를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 자전거로 오래된 운하 길을 따라 유유하게 달려보기

- 델프트 신교회 꼭대기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도시의 정수리 바라보기

- 델프트 도자기 상점 감상하기

- 운하를 따라 쭉 늘어선 골동품 시장에서 시간의 흔적을 따라가보기

- 배가 고프면 하링(청어) 샌드위치와 바삭하게 갓 튀긴 키블링(대구튀김) 먹기

- 운하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나 차를 마시며 ‘일상’에 젖어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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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모음]

'견디는 힘' (견디기는 역동적인 나의 의지!)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지 못했던 네덜란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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