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Aug 05. 2018

나이 들어감을 느낄 때

그 순간을 음미하고자

불혹이 넘었다


불혹을 맞이하고도 벌써 몇 해가 지났다.

분명한 것은 내가 생각했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20살이 되었을 때도, 30살이 되었을 때도 그랬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또는 누군가를 보며 저 나이가 되면 나는 어떨까 생각했던 것들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는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거나. 


불혹이라는데, 나를 유혹하는 것은 아직도 많다. 아직 호기심이 왕성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다만, 불쑥불쑥 용 솟는 치기 어린 충동이 예전보단 덜하긴 하다. 이렇게 보면 '불혹'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스스로 돌아보건대 나는 분명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이를 많이 먹고 있다. 마음은 젊다고 애써 외쳐보지만, 역시 나이가 들긴 드는구나... 하는 순간들이 있다.


나이 들어감을 느낄 때


첫째, '아이고'를 달고 산다.


앉았다 일어날 때, 또는 철퍼덕 주저앉을 때, 승용차와 같은 낮은 의자에 타고 내릴 때 그리고 기지개를 켤 때 등. 확실히 예전 어렸을 때보다 더 '아이고'를 남발한다. 정확히 언제부터 내가 이 말을 달고 살았는지 모르겠는데, 이러한 사실이 정말 나이가 들었음을 실감하게 한다. '아이고'의 어원을 뒤져보니 여러 가지 주장이 있는데, 그 어느 하나 확실해 보이진 않는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을 둘러봐도 확실히 '아이고', '에고', '에구' 등을 많이 사용한다. (내가 보기에 젊어 보이는 친구들도 사용하기 시작...)


둘째, 아이들 사진을 꺼내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나는 분명, 신입사원 때 상사들이 그의 자녀들 사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자기 눈에 예뻐 보이는 아이들 사진을 왜? 이제는 내가 그런다. 후배들과 모인 자리에서, 직장 내에서, 아이들은 잘 크냐고 질문하는 사람 앞에서. 휴대폰을 주섬주섬 꺼내어 가장 잘 나온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귀엽고 예쁘다는 사람들의 어색한 리액션을 보며 신입사원 때의 내가 떠오르지만, 그럼에도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는 걸 보면 분명 나이가 든 것이다.


셋째, '동안'이라는 칭찬을 듣거나 할 때


'동안'이라는 이야기를 좀 듣는 편이긴 하다. 기분이 나쁘진 않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그렇다. 오히려 이제 나이가 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더 든다. '동안'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나이에 비해서'라는 단서가 붙기 때문이다. 젊었을 땐 '동안'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이유가 없다.

나이 먹은 사람들끼리 서로를 보며 (생각보다) "동안 이시네요"라는 칭찬을 주고받는 경우가 있다. 지나가던 초등학생들이 웃을 광경이다. '늙은 사람들끼리 뭐 하는 거지?'라고 말하며 지나가는 것 같다. 정말 뭐 하는 걸까, 나이 먹고.


넷째, 보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매우 이루기 힘든 거란 걸 깨달을 때


결혼, 집 장만, 회사 생활 등. 나이 들면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들이라 생각했다. 어렸을 땐 모든 것이 당연한 거였다. 나이 들면 회사 다니고, 결혼하고. 집 사고, 자동차 사고 가족들과 도란도란 사는 것. 돌아보니, 이 험한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그것들을 하나하나 이루어왔나 믿어지지 않는다. 보통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이루어내기 위해 했던 수많은 특별한 노력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얼얼하다.

부모님의 사랑도, 집 안에 있던 수건도, 내가 사지 않아도 가득했던 속옷과 양말 그리고 우산도. 내가 스스로 해야 할 때 그것들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다섯째, 창피한 것들이 줄어들 때


그땐 그랬다. 모든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스쳐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도, 나를 뭐라 하는 건 아닐까. 이상하게 보면 어떨까. 비 오지 않는 날 우산을 들고나가면, 모두가 나를 보고 수군대는 것만 같았다. 집단주의라는 한국사회에서 철저하게 교육받은 탓일 수도.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런 것들이 확실히 줄어든다. 사회생활을 하며 어떤 일을 맞이해도 가족들을 생각하며 참은 덕에 닳고 달아서인지, 아니면 오만가지 감정과 희로애락을 느껴와서인지. '어차피 난 아저씨'라는 정체성의 수긍이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 같긴 하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것보단 실리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온 세포를 지배한다. 긍정적으로 보면 남 눈치 안 보고 내 할 일 하는 것이다. 물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가 되도록 수위 조절을 해야 한다.




이 밖에도 더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이전과는 다르게 변한 것들. 예전의 나는 꿈도 꾸지 못했을 모습. 지금의 나도 나 자신이 낯선 모습들. 외부의 압박도, 내부의 깨달음도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 나이는 '먹는다', 또는 '든다'라고 한다. 먹는다면 잘 소화해야 할 것이고, 들어간다면 의식하고 행동해야 한다. 

(들다: 생겨나서 의식 속에 자리 잡다 - 어학사전 -)


맞이하지 않을 것 같았던 순간은 오게 마련이다. 길게 늘어선 롤러코스터 줄이 줄어들고, 내 순서가 되면 비로소 느껴지는 긴장감.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그리고 그 이상. 누군가에 의해 줄 세워진 우리는 타고 싶지 않아도 인생이라는 롤러코스터를 타야 한다.


생각보다 짧고 굴곡이 다양한 롤러코스터는 그렇게 인생을 닮았다. 그리고 우리가 나이 들어가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 순간을 음미하고자, 지금 이렇게 짧은 글로라도 나이 들어감을 느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상 (斷商)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