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마침내 믿은 사나이
"자네, 행복이 뭔지 아나?"
사내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말했다.
"아니,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행복은 믿음일세. 믿음이야. 있다고 믿으면 있는 거고, 없다고 믿으면 없는 거지. 행복이 없을 수도 있냐는 표정이군. 그래. 내 설명해주지. 자네 요 근래 행복을 느낀 적이 언젠가? 하루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익숙한 소파에 앉아 맥주 한잔 할 때? 아니면 배고 고플 때 온몸을 어루만지는 탄수화물의 위로를 받았을 땐가? 사랑하는 사람의 인정을 받았을 때? 그때 기분이 어땠나? 좋았겠지. 그리고 그것을 '행복'이라고 표현했을 테고. 자, 그렇다면 '기분 좋은 것'과 '행복'의 차이는 뭔가? 기분이 좋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는 건가? 그냥 기분이 매우 좋다고 하면 될 것을 우린 왜 '행복'이란 말을 갖다 붙이냔 말일세. 기분 좋은 걸 '행복'이란 단어에 욱여넣고 있는 우리 꼴을 보라고. 그러니 '행복'은 기분 좋은 걸 극대화해 표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일세."
사내의 숨이 멈칫 멈칫했지만 말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있지도 않은 '행복'에 중독되어 있어. '행복'이 있다고 믿으면서 말이지. 자네 골프 칠 줄 아나? 백날 헛스윙을 하고, 원하는 대로 공이 날아가지도 않는 그 운동 말일세. 사람들이 왜 죽도록 그 운동을 하는지 아는가? 어쩌다 잘 맞은 그 한 번의 스윙을 잊지 못해서라네. 그 손 맛을 잊지 못해서. 다음엔 쉬이 그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근데 어림도 없지. 그러다 의도치 않은 우연에 의해 그것을 느끼고, 또 수백 번 수천 번의 헛스윙을 하고 말지. 행복도 마찬가지네. 기분 좋았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해, 그것을 추구하는데 온 몸과 마음을 갖다 바치지. 사랑했던 사람과의 추억은 한순간이라네. 사랑은 변하고 말지. 그 순간의 기분을 다시 만끽하려고 또 다른 사랑을 하지 않나. 다시 사랑해도, 그 유효기간이 얼마 되지 않을걸 알면서 말이야. 어리석은 존재지. 우리네 사람은. 배가 고파 밥을 한 술 두 술 뜨다 보면, 기분 좋은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이내 배가 더부룩해 기분이 가라앉지. 그러고 보면 이도 저도 아닌 그 중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일지 모른다네. 배고프지도 않고 배부르지도 않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 지점. 신은 우리에게 시소를 준거야. 사는 내내 그 균형을 맞춰보라고. 그 중간을 맞추면 우리가 말하는 '행복'이라는 기분 좋은 최고점을 느끼도록 말이야. 내가 신을 싫어하는 이유가 뭔지 아나? 되게 못된 것이 시소를 주고는 그 균형이 절대 맞춰지지 않게 설계를 한 거지.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행복'은 순식간일세. 그곳에서 멈추지 않아. 그리고 우리는 그 '순간'에 중독되고."
사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기침까지 해댔다.
"이 봐, 난 죽어가고 있어. 지난날을 돌이켜 보니 다 부질없네. 살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아. 이대로 편하게 누워 있고 싶네. 돌아보니 인생이 너무 버거웠어. 난 신에게 시소를 달라고 한 적이 없네.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지도 않았지. 어쩌다 맞춰진 균형에, 나도 인간인지라 그 '순간'에 중독되었지. 젊은 시절을 그 '순간'에 중독되어 다 허비한 것 같아. 사랑이었지. 그 '순간'은. (콜록콜록) 그러니까 (쿨럭) 내가 사랑한 (콜록) 그... 아... 잠시만. 신이 나에게 선물을 주려하나 보네. 내가 기분 좋았다고... 행복했다고 믿었던 그 순간순간을 이어 붙여 나에게 보여주고 있네. 내 눈 앞에 그것들이 펼쳐져서 돌아가고 있어. 영사기로 돌아가는 영화 같네. 아... 난 행복하네. 죽어도 좋네. 죽어도 좋아. 아... 난 결국 행복을 믿게 되었네. 숨 가쁘게 돌아가는 행복에 난, 죽어도 좋네!"
사내는 숨을 거뒀다.
그가 숨을 거둘 땐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그는 무신론자였다. 어렵게 자라온 그의 인생이 신의 존재를 인정할리 없었다. 신이 있다면 자신을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았으리라는 몽니였다. 그가 숨을 거둬가며 나눈 대화는 자신과의 대화였다. 그는 그에게 궁금했다. 행복은 있었는지. 행복은 느껴봤는지. 자신이 지나온 그 세월에, 행복이라는 흔적이 있었는지. 무신론자였고, 무행복론자였다. 하지만 그가 숨을 거둘 땐, 저 입으로 행복을 느껴 죽어도 좋다고 했다. 그 영사기를 돌려준 것이 신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행복'을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 가쁘게도, 그는 인생의 마지막에서 그것을 몰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