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하면 주위가 보이지 않는다.
'자만심'은 '자신감'과 확연히 다르다.
그렇다고 그것들이 전혀 연관이 없는 건 아니다. 어느 정도의 '자만심'이 '자신감'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과한 '자신감'은 '자만심'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맞이하게 될 그 둘은 반드시 구분하고 조율해야 할 것들이다.
특히 직장인은 '자만심'을 경계해야 한다. 직장생활이란 게 일상의 반복이다 보니, '자만심'이 시나브로 자신을 둘러싸도 그것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급이라도 올라가게 되면 주위 사람들이나 풍경은 보지 않는 나쁜 버릇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직장인으로서 자만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해보고 스스로 그러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제, 그렇게 뛰시면 안돼요. 직장인이 농구, 축구하면 큰일 납니다. 그냥 골프나 치세요!"
올해 초 농구를 하다 오른쪽 다리 인대가 늘어나 병원을 찾았다. 의사가 정말 간절한 눈빛으로 나에게 한 말이다. 정말이지, 몇 십분 뛰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한 고통이었다. 마음은 몇 시간이고 뛸 수 있겠단 생각이었는데, 현실은 가혹했다. 나뿐만이 아니다. 직장 내 어떤 동료는 축구를 하다 공과 상관없이 다리를 다쳐 수술을 하기도 했고, 누구는 야구를 하다 팔에 철심을 박은 경우도 있다. 오랜만에 야외행사에서 달리기에 참가한 한 선배는 출발 신호와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다. 의지는 다섯 발 자국 앞을 뛰는데, 실제 다리는 한 두 발자국을 나간 것이다.
예전엔 약이나 병원을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요즘은 어디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병원을 찾으려 노력한다. 자연치유(?)가 되는 속도가 확실히 늦다. 얼마 전에도 치통을 잠시 참았다가 이를 뽑을 지경에까지 이르러서 놀란 적이 있다. 예전엔, 양치만 잘해도 자연스럽게 나았던 증상이었다.
더불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본인상'의 소식은 나를 놀라게 한다. 나와 나이가 멀지 않은 선배, 심지어는 동기나 후배들의 유명을 달리한 소식은 충격적이다. 그러한 일이 점점 더 익숙해지는 상황이 더 충격적이기도 하다. 그들의 건강했던 모습이 떠오르고, 함께 야근을 하며 젊음을 불태운 시간이 스쳐 지나간다. 그 누구도 지친 기색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직장인이라면 절대 건강을 자만해선 안된다. 매일 관리하고, 건강을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
직장인은 '내일'을 자만해선 안된다.
오늘 칭찬이나 인정을 받았더라도, 안주하거나 그것이 내일까지 유효하리란 생각은 버려야 한다. 내일까지도 갈 것 없이 순간순간 감정이 요동할 사건(?)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내일도 좋을 거란 맹목적 착각은 마치 술에 취한 것과 같다.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몸과 맘은 무방비 상태가 된다. 신입사원 때, 큰 입찰 건을 따내어 매출 1위를 달성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신입사원이 대단하다며 나를 치켜줬고 조심스러웠지만 우쭐했다. 술을 처음 마신 사람처럼 그것에 취해 출근한 다음 날. 내 다른 거래선의 수금 문제가 터져 신입사원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욕을 들어먹었던 적이 있다. 이게 뭘까? 우쭐함의 숙취가 해소되지 않아, 어제 나를 칭찬했던 사람들이 맞을까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객관적으로 그 둘은 개별 사건이다. 하지만, 취한 상태에선 그 둘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한 것이다. 감정의 양 끝단을 겪고 보니 너무나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오늘 잘 나간다고 내일을 자만해선 안된다. 오늘은 오늘이고, 내일은 내일이니까.
경험은 소중하다.
그러니, 우리는 여행도 가고 인턴도 한다. 그러나, 그 경험을 '맹신'하면 안 된다. 그것을 '맹신'하면 결국 '자만'이 된다. 자만은 주위의 의견을 깡그리 무시한다. 돌아가는 상황마저 온전히 보지 못한다. 나에게 일어난 일이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일어나리란 법은 없다. 또한, 내가 어느 시점에 이룬 성공의 경험이, 다음의 어떤 상황을 보장하지 않는다. 반대로, 내가 겪었던 나쁜 경험 때문에 매 순간을 의심할 필요도 없다.
왕년을 이야기하는 꼰대가 대표적인 나쁜 사례다. 왕년을 이야기하고 참고하는 것은 좋다. 누구나 왕년이 있고, 그것이 다른 사람이나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을 '강요'할 때다. 맹신을 기반으로 한 왕년은 무섭다. 나는 했는데 너는 왜 못하냐고 상대를 타박한다. 상대는 깨닫는 게 아니라 속으로 네가 직접 해보라고 말한다. 실제로, 왕년을 맹신하고 강요하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말한 방법은 잘 통하지 않는다. 실제로 하게 되면, '이게, 왜 이러지? 옛날엔 이런 방법이 통했는데'라고 할 가능성 100%다.
경험은 계속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왕년을 박제해두면 안 된다. 굳기 전에, 다른 경험을 받아들이고 깨달아야 한다. 모르는 건 후배들에게라도 물어봐야 할 용기가 필요하다.
이 밖에도 자만하지 말아야 할 것은 더 있다.
하지만, 이 세 개라도 마음에 담고 싶어 여기서 멈추려 한다. 더 쓰다간 많은 것들을 끄집어냈단 '자만'이 엄습할지도 모른다. '자만'의 끝은 아름답지 않다. 문제에 부딪치거나, 망신을 당하거나, 또 다른 일로 상처를 받아야 그때 제정신이 든다. 하지만, 아름답지 못하다고 해서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숙취에서 깨어날 좋은 기회일 것이다.
없는 것보단 있는 것이 좋은 게 '자신감'이다. 아니, 그건 꼭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만심'은 생길까 말까 하는 그 경계가 딱 좋다. 그 조절은 매우 미세해서 어렵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다. 스스로 잊지 않도록, 매일매일을 미세하게 관찰하며 경계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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