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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23. 2018

사원증

미리미리 잘 챙겨두어야지, 그래야지.

"아, ID 카드를 놓고 왔네"


집을 나설 때, 꼭 확인하는 것이 있다. 휴대폰, 지갑 그리고 ID카드. 그럼에도 1년에 몇 번은 그 세 가지 중 두어 개는 잊고 만다. 그것은 꼭 회사에 도착하면 생각이 난다. 인생이 그렇다.


ID카드가 없으면 나는 'anonymous (익명, 무명)이 된다. 십 수년을 다닌 회사지만, 그 카드가 없으면 나는 내 책상으로 갈 수가 없다. 누가 대신 나서 증인이 된다고 한들 될 일도 아니다. 안내 데스크로 가 시스템으로 신원을 확인한다. 그리곤, 내가 가진 다른 신분증을 내어주고, '임시' 카드를 받는다. '임시'란 글자를 보고는 동료들은 눈짓을 한다. 나는 그 눈짓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또?"라고 하거나 "나도, 어제!" 둘 중 하나다.


직장인이라면 목에 하나씩은 걸고 있는 그것. '사원증'이라고도 한다.

'줄'이나 '면' 어딘가에 회사의 로고가 박힌 카드 모양의 그것은, 공식적으로 어느 회사의 소속임을 증명한다. 취업 준비생 시절엔 그것이 그렇게 부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마치, 군대에서 훈련병이 이등병의 작대기 하나를 앙망하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등병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취업 준비생도 마찬가지. 사원증을 목에 걸면 그것의 무게를 깨닫게 된다.


취업을 막 하고 난 사원증의 무게는 가볍다. 어딘가에 소속되었다는 안도감, 어려운 취업을 뽀갰다는 성취감에 취해서다. 신입사원 때 잠시 잠깐 동안은, 그래서 나에게 사원증은 '자부심'과도 같았다. 더 이상 학생이 아니라는, 세상을 향해 나는 이제 어른이라고 외치는 객기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그것의 무게가 점점 더 무거워짐을 몸소 느낀다. 누군가는 그것을 '개목걸이'란 표현도 서슴지 않았고, 나는 동의했다.


대리 땐, 그 '동의'가 절정에 다다랐다. 사원증이 더 무거워지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몸을 부추겼다. 다른 회사, 공부 모임에 이리저리 기웃했다. 별 소득은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사원증의 무게는 시나브로 늘어났다. 어느새 사원증엔, '가정'이라는 액세서리가 붙었다. 그 무게를 말해 뭐할까. 이젠, 빼도 박도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고 불행하기만 한 건 아니다. 열심히 일하고, (느낌적으론 그보다 적게 받는) 대가로 어찌 되었건 나의 '가정'을 굴린다. 그 과정에 느끼는 인생의 맛은 달고, 쓰고, 짜고, 맵고, 시다. 인생의 묘미다.  더불어, 사원증의 무게만 늘어난 게 아니다. 내 목의 근육도 한껏 세졌다. 그리고 사원증의 한 귀퉁이엔, '가정'말고도 '다시 열정'이나 '그래, 한 번 해보자'란 액세서리를 달았다. 어차피 이번 생이 '직장인'이라면, 까짓 거 끝까지 가보자는 것이다.


사원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옷 안주머니에 잘 챙겨둬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문득. 미리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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