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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an 05. 2019

폭식

마음이 끝없이 허기지다고 아우성치는 신호일지 모른다

"요즘 살 좀 쪘네?"

"어? 살 좀 빠졌는데?"


회사에서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의 인사는 둘 중 하나다.

그러면 나는, "쪘다 빠졌다 왔다 갔다 해요"라고 한다. 나이가 들어 그런지, 살이 쪘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어제 참지 못하고 먹고 잔 라면을 증오한다. 반대로, 살이 좀 빠졌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제저녁 거르길 잘했단 생각을 한다.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대개 남자는 두 번 크게 살찐다.

처음엔 입사해서고, 그다음은 결혼해서다. 과학적 근거는 없다고 했지만, 실제 증거는 주위에 차고 넘친다. 나만해도 그렇다. 입사하면 운동부족과 스트레스, 회식과 같은 잦은 술자리로 몸무게는 늘고 배는 부지런하게 나온다. 결혼을 하면 여기서 더 찐다. 신혼 땐 맛집 투어를 다니고, 장모님의 요리 선물이 이어진다. 육아를 하게 되면 주말에도 피곤해서 아이들과 먹고 자고를 반복한다. 가끔은, 내가 나를 사육하고 있단 생각마저 들 정도다.


압권은 폭식이다.

자도 자도 졸린 것처럼, 먹고 먹어도 뭔가 당긴다. 분명, 배는 부른데 여기저기에 손이 간다. 짠 걸 먹으면 단 걸 먹고 싶고, 단 걸 먹고 나면 매콤한 게 당긴다. 매콤한 걸 먹으면 상큼한 게 떠오르고, 상큼한 걸 먹으면 고소한 게 먹고 싶다. 과학자들은 이런 날 아주 상세하게 분석해 놓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세로토닌의 수가 줄어드는데, 그것의 분비량을 늘리기 위해 배고픔을 유발한다고. 다른 말로 하면 '정서적 허기'다. 정신의학자 로저 굴드 (Roger Gould)는 실험에서 무기력증에 걸린 사람들이 탐욕스러운 허기가 높음을 발견했다. 결국 폭식이나 탐식은 먹는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 결론 지은 것이다.


그래.

어쩌면 폭식은 마음이 끝없이 허기지다고 아우성치는 신호일지 모른다. 내가 채워야 하는 건 뱃속으로의 무엇이 아니라, 회사에서 탈탈 털린 영혼이자 자존감 그러니까 마음으로의 무엇이 아닐까. 책도 좀 읽고,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그림도 봐야겠다. 가만히 앉아 생각이란 것도 좀 하고.


스스로 나 자신을 잊어가는 건 아닐까, 폭식이 나를 일깨웠다고 말하면 좀 오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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