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o Much'와 'Too Less'의 그 어딘가
길이 너무 길어져서 결국 이어서 쓰게 되었어.
참 할 말은 많은데 표현하기가 여간 쉽지 않네.
그저, 책의 내용에 대한 반박과 반발이라 여겨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서로의 입장 차이를 밝히고 건설적인 이해관계를 구축하고 싶은 거야.
"한국인은 미쳤다!"를 읽다 보면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라.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저자가 언급하는 회사에 몸담고 있고 그러한 일들을 실제로 목격도 하고 행하기도 했으며, 또 나와 우리 회사 젊은 세대들도 많은 것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거든.
다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은 미쳤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들어.
그래서 일전에도 언급했듯이 '관점의 차이'가 분명 있다는 거고.
"한국인의 자화상"
한 회사의 해외 법인 법인장이었다는 사람이, 한국 회사를 얼마간 다니고 난 후 "한국인은 미쳤다!"라는 글을 내었는데, 이에 대해 작가가 틀리다, 잘못 봤다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
즉, 한국 회사가 서로 크게 다르지 아니하고, 그 안의 문화도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을 서로 암묵적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거겠지.
더더군다나 책에 대한 댓글을 보면, "그래 맞아, 우리는 모두 변해야 해.", "한국 사람이 틀렸어. 살기 힘들고 회사 다니기 힘들다!" 등등의 자조석인 목소리와 한탄이 현실을 생생히 반영하고 있어.
모두가 잘 아는 세계 연간 노동 시간을 보면 한국은 2,163시간으로 멕시코 (2,237)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어. 멕시코의 업무 강도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진 않지만, 업무 강도나 중간중간 자주 있는 휴식시간을 포함한 업무 시간인 것을 감안하면 단연코 한국이 세계 1위인 거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앞서, 프랑스인들의 성향을 설명하려고 역사적인 설명까지 덧붙였어. 그리고 왜 그런가에 대해 상세히 고민을 해봤지.
그런데 말이야.
혹시 우리는 왜 그런지 생각해봤어? 역사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우리는 우리의 자화상이 잘못되었다고만 이야기하고 현실을 부정하려고 하지,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고찰은 잘 안 하는 것 같아. 스스로에 대한 고찰 없이 내뱉는 불평과 다른 것에 대한 동경은, 자신의 영혼을 좀 먹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돼.
그러니 우리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좀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한국 기업의 업무 방식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매우 소모적이고 힘이 들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다. 우리 서양인의 호불호는 중요하지 않다. 놀라운 효율성, 전략 이행 시 모든 세부사항을 일일이 통제하는 세심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에너지와 의지를 무한정 끌어내는 능력은 한국 기업이 단연 최고다"
[에리크 쉬르데주, 한국인은 미쳤다 中]
"한국인은 미쳤다!"라고 외치는 저자도, 한국인의 효율성과 과감한 목표 의식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을 하고 있어. 그리고 책 내용에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효율성이 몸에 배어서, 프랑스의 다른 회사에 갔을 때도 이상한 취급을 받았대. 물론, 그 사람의 눈에도 천천히 돌아가는 시스템과 사람들이 답답했겠지.
이렇게 잠깐 한국 회사를 다닌, 그것도 서양, 또 그것도 '유럽인', 또또 그것도 '프랑스인'의 몸에도 착착 감기는 이 효율성에 대한 습관이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어떻겠어?
한강의 기적을 일구며 전쟁의 상처를 딛고, 최단시간 세계로 뻗어나간 작고 작은 나라의 원동력이었던 것들이 수십 년 동안 몸에 배어 내려온 거지. 즉, 한국 사람이라면 거의 누구나 다 그런 성향과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어쩌면 그땐 '미쳤어야만'했고, 지금도 그러한 '미친'(이라 쓰고 삶에 대한 열정이라 읽자!) spirit이 한국 사람들에게는 여전하다는 말.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것을 무조건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봐. 한국 사람이 한국인의 기질을 부정하면 결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 되거든. 우리가 한국인인 걸 인정하고, 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질에 대해 인정하고 난 다음에, 그리고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적용, 변화하고 개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의 현실이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또 한국을 무조건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현실이 가슴 아프지만, 어쩌겠어... 결국 우리가 바꾸어야 나아가야 하는 거 아니겠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이 된 거라면, 언젠간 그것이 또 맞을 수도 있고 또 틀릴 수도 있게 되는 거. 결국 보는 관점에 따라, 시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거듭 강조하고 싶어.
"무조건적인 유럽 동경은 잠시 접어두고,
이젠 우리의 정체성을 돌아봤으면..."
우리나라 살기 참 힘들지? 직장 생활도 그렇고 여러모로 말이야.
사회 생활, 교육, 정치, 빈부격차 등등 모두 할 것 없이...'미쳤다'라는 말이 그리 어색하지 않을지도 몰라.
이러한 마당에 언론이나 여행기 등에서 심심찮게 비교되고 나오는 예가 바로 '유럽'이야.
특히, 한국인이라면 유럽에 대한 동경은 거의 맹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유럽은 선진국이야. 말 그대로 먼저 앞서가는 나라이고.
그런데 말이야. 유럽도 예전 유럽 같지 않아.
그리고 그들의 문제와 고민은 알지 못하고, 좋은 점만 보고 (언론이나 여행기 등을 통해...) 무작정 부러워만 하고 우리의 현실을 한탄만 하는 것은 우리 '젊음'들이 경계해야 하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해.
유럽의 역사를 보면, 사실 약탈의 문화야.
식민지를 통해 쌓은 부와, 종교를 이용해 사람을 억압하여 얻어낸 노동력으로 일부 귀족과 왕권으로 이어온 나라들이고. 그래서 일찍이 먹고사는 문제에서 조금은 빨리 자유로워지다 보니 많은 것들에서 앞서 가게 되었지.
문화, 정치, 인권, 예술 등에서 말이야.
(근데 최근에는 '선진'의 정도나 Gap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어. 오히려 유럽이 우리나라에서 배워가는 것도 많고, 다른 개발 도상국으로부터 벤치 마킹하거나 지원을 받는 경우도 많아지게 되었지. 즉, 세상이 변한 거야.)
반면, 우리나라는... 알잖아. 배고픔에서 자유로와진지 얼마 되지 않았어.
해서 유럽은 이런데, 우리는 이렇고... 등의 맹목적인 비교는 우리만 허탈하게 할 뿐이야.
우리와 유럽은 태생부터 다른걸? 인정할 건 인정하고 가자고.
사실, 우리도 엄친아 엄친딸과 비교되는 거 싫어하잖아? 우리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말이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유럽'이라는 선진국이 보여준 길 중에 옳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따라가야 하겠지만, 우리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거나 정체성을 잃고, 무조건적으로 따라가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는 거야.
그거 알아?
요즘은 글로벌로 닥친 불황과 경제 성장의 정체에, 유럽 사람들의 업무 강도도 높아지고 있고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들보다 못한 복지에 대해 큰 불만을 가지고 있어. 만약,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본다면, 그들이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은 예전 우리가 한강의 기적을 이룬 그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걸?
이를 반영하듯이, 유럽 내에서도 '비효율적인 업무 태도'와 '과한 복지로 인한 젊은이들의 도전 의식 결여'에 대해 자조적인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어.
"어쩔 수 없는 한국인,
젊음이 바꾸어야 할 무궁무진한 것들!"
계속해서 중언부언하고, 횡설수설하는 와중에 말하고 싶은 건 바로 우리 자신을 알고 시작하자는 거야.
(사실, 거의 이해했을 거라고 봐. 그냥 그저 노파심과 자격지심에 계속 떠드는 것 같다... 나 혼자.)
우리에게는 한국인의 기질, 그리고 우리가 겪은 것에 대한 경험들이 무의식 중에 뿌리 깊이 박혀 있어. 융이 말한 집단 무의식으로도 표현될 수 있겠지.
가끔은 한국인의 그 기질 (저자가 말하는 '미쳤다'의 한 부분?)이 돋보이는 경우가 있어. 많이 봤겠지만, 한국인의 끈기와 기질로 이루어낸 집요한 의지의 승리. 교육, 스포츠, 학계, 산업 등 현지인과는 다르게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 한국사람들 그렇잖아. 집요하게 파고들고, 모자란다 생각되면 끝까지 남아서라도 따라잡으려는.
SNS 어디선가 본 글 중에, 유럽의 어느 한 회사에서 야근하는 한국 사람에게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 야근하지 마라."라는 글을 봤는데,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어.
유럽에 있으면서 느낀 건, 유럽 사람들도 오히려 이런 사람을 추앙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쁘게는 생각하지 않아. 가끔은 열정적이라고도 하지. 그래서 오히려 한국 사람을 채용하는데 긍정적인 기업들도 있어.
그리고 그거 알아? 대부분의 유럽 사람은 그들의 일과 삶을 즐기며 지내지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에 높이 올라가고 싶은 사람들이나 이미 높이 올라간 사람들은 한국사람과 같이 야근하고 주말에도 일을 하곤 해. 물론, 삶과 일의 균형을 찾지 못하고 삶이 피폐해질 정도로까지 그러진 않지.
재밌는 건 말야.
우리 이제는 더 이상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주위에 무지 많은데, 우리 사회는 그 사람들의 합보다는 느리게 변하는 것 같아. 왜 그럴까?
우리의 시스템이, 우리의 무의식이 이미 고착화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단점을 잘 알고 고쳐야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막상 어느 위치나 지위에 오르면 혐오하던 '한국인'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거든.
당장 생각해봐. 우리 젊음들이 상사이고, 보다 어린 친구들이 말도 안 하고 퇴근한다면? 할 일은 쌓여 있는데 갑자기 휴가를 낸다면? 솔직히 아마 속 터질 걸?
우린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들이야.
하지만,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는 알고 조금씩은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 '젊음'들이지.
그리고 더디지만, 점차 변화되고 있다는 걸 느껴.
"Too Much와 Too Less의 그 어딘가"
가만 생각해보니 한국인은 미쳤다고 하는 작가에게 감사한 마음이 드네.
우리를 다시 한 번 더 돌아봐주게 하고, 반성하게 해주니까.
솔직히 한국 사람이 Too Much 하다면, 일부 유럽 사람들은 Too Less 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
프랑스 법인에서 일하는 동료가 가끔 전화하거든. 힘들다고. 프랑스 사람들이 챙기지 않는 부분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오고,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린다고.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중용'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중용(中庸):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한,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나 정도
"Too Much"와 "Too Less"의 그 어딘가 쯤이 바로 중용이 아닐까?
한국사람은 왜 이리 불행하게 미쳐 사는지, 계속해서 이럴 수밖에 없는 건지.
세상이 미쳤다고, 사회가 잘못되고 틀렸다고만 하기보다는,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믿음에 그 세계는 우리 '젊음'들이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어보는 건 어떨까?
우리가 정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을 읽는 '젊음'들은 한 가지만 약속했으면 해.
소위 말하는 윗사람이 되었을 때, 우리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최대한 지양하기!
그리고 한국인임을 인정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우리가 개선해야 할 것은 개선하고 지켜야 할 것은 지키면서 보다 풍요로워질, '다른'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가기!
[Epilogue]
갑자기 한국인은 미쳤다니, 돈키호테의 한 구절이 떠오르더라고.
"여기 그 용맹성이 극단에 치닫던 강력한 시골 양반이 누워 있노라. 미쳐서 살고 정신 들어 죽다."
아마, '미쳤다'라는 말이 나로하여금 돈키호테의 '광기'를 떠올리게 한 것 같아.
그의 광기는 무엇이었을까? 왜 광기를 부릴 수밖에 없었을까?
아마 그의 광기를 통해 작가가 내보이고 싶었던 것은 비이성적인 사회상이었을 테고, 우스꽝스럽지만 불굴의 인간형인 돈키호테를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사람으로 그려냈던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이 "한국인은 미쳤다."라고 할 정도로 우리는 미쳤어야만 했고, 그래서 지금 우리는 더 나은 세계를 위해 아웅다웅하고 있는지 몰라.
난 우리의 Too Much 한 광기(?) 속에 대부분은 '열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어. 그래서 중용을 찾고 싶은 거고. 그 중용을 갈구하다 보면 우리가 세상을 다르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좋은 느낌이 들어.
돈키호테는 고향으로 돌아가 제정신이 들었고, 바로 숨을 거두었어.
제정신이 든 것이 과연 좋기 만한 것이었을까?
돈키호테에게 있어 '광기'는 그에게 '꿈과 열정', 그리고 삶의 '원동력'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