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니까 소중하다.
시간 앞에 직장인은 초라하다.
그것 앞에서 직장인은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시간이야 누구도 개의치 않고 흘러가기 마련이지만, 그것을 얼마만큼 누리느냐는 직장인이 되기 전과 후가 천지차이다. 직장에서의 시간은 철저히 계산적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최대한의 노동력을 뽑아내야 한다. 월급을 주는 자의 시간과, 월급을 받는 자의 시간이 팽팽한 이유다. 직장인이 되기 전엔, 그러한 긴장감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아니하거나, 당장 생존과 직결되지 않았다는 그 마음의 여유로움은 시간 앞에 초라해질 일이 없다. 오히려,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그것이 얼마나 오만이었는가는, 직장인이 되어 화들짝 깨닫는다.
직장은 원래 '월(月)' 단위로 굴러갔다.
우리가 괜히 '월급쟁이'인 것이 아니다. 그런데 세상이 각박해지다 보니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연간, 반기, 분기로 그것을 구분하고 요즘은 주와 일일 단위로까지 쪼갠다. 점검을 위한 것이다. 예전엔 한 달에 한 번 하면 되었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해선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마감하고 결산하여 얼마를 벌어들였는지, 얼마만큼의 일을 하고 성과를 냈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회사도 그렇고 개인도 그렇고, 결국 무어라도 팔아 얼마라도 남겨, 먹고살아야 하는 팔자다 보니 그렇다.
시간은 쪼개어졌다고 천천히 가지 않는다. 오히려, 쪼개진 시간의 사이를 꾸역꾸역 이어가다 보면 '시간'은 전광석화와 같다. 차를 타고 갈 때 멀리 보면 나의 움직임이 여유로운 것 같지만, 차창 바로 옆의 풍경들은 알아차릴 새도 없이 휙 하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
그러한 '시간'이 얄미울 때가 있다.
상사에게 잔소리를 듣거나,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보고회에서의 '시간'은 느려 터지게 꾸물댄다. 식은땀이 머리에서 흘러 등짝을 타고 내려갈 때, 뜨거움은 온몸을 긴장시키는데 그 속도는 가히 느리고 또 느리다. 식은땀이 허리춤 부근에는 와야 그 상황이 끝날 것 같은데, 시간은 식은땀의 중력을 무력화한다.
반대로 제발 이 순간이 영원하기만을 바랄 때, '시간'은 우리를 조롱하며 앞서간다. 굳이 특별한 예를 들지 않아도, 이 세상 모든 직장인은 주말 일요일 저녁이나 연휴 마지막 날엔 '시간'의 얄미움과 무자비함을 마주한다.
그렇게 직장인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빨리 갔으면 할 때 느리게 가고, 느리게 갔으면 할 때 빨리 간다. 그것이 직장인을 정말 초라하게 만든다.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도 그렇다. 시간이 남아돌아도, 그 여유가 없으면 직장인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리고 대개는, 회사는 직장인이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두지 않는다. 언제라도 필요한 시간에 최대의 노동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스탠바이를 시키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시간은 거꾸로 가니까 소중한 것일지 모른다.
절대적인 '시간'이란 개념을, 상대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다. 사람이란 간사해서 '결핍'을 느낄 때, 비로소 무언가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직장인에게 있어 '시간'은 언제나 결핍이므로, 거꾸로 흐르는 그것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더 되새겨 봐야 하지 않을까. '시간' 앞에 초라할 때 초라하더라도.
"가치 있는 것을 하는 데 있어서 늦었다는 건 없다. 하고 싶은 것을 시작하는데 시간의 제약은 없단다!"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中
평생의 시간을 남들과는 반대로 산 벤자민 버튼도 결국 그의 자식들에겐 뻔한 말을 남겼다.
남들이 늙어갈 때, 그는 젋어갔지만 시간의 흐름은 방향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결국, 속도였고 마침내 '결핍'이었다. 어차피 '시간'이란 모자란 것이라면, 어차피 직장인인 우리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하지 않아서 내 맘을 불편하게 하는 그 무엇. 그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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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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