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겨울 밴쿠버에서 읽은 책
밴쿠버 와서 읽은 두 번째 책. 리사 랜들의 흥미로운 제목 ‘암흑 물질과 공룡’ 물리학 관련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흥미진진하고 결론이 궁금했던 책이 또 있었나?
리사 랜들은 하버드 대학 물리학과 교수이고 이론 물리학자이다. 입자 물리학과 우주론을 연구한다. 그러나 그녀의 전작 중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를 읽다 보면 그녀가 아주 수준 높은 공학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 책은 CERN의 LHC 구축 과정과 각 가속기의 특징을 매우 상세히 설명하는 책이었다.
이 책은 2015년에 출간된 책이고 (국내 출간은 2016년) 그녀와 그녀 팀이 제안한 아주 담대한 가설을 설명하기 위한 책이다.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는 우주 구조 형성 과정을 설명하고 그 가운데 암흑 물질와 암흑 에너지가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이 얘기는 워낙 많은 책에서 다루어서 다들 잘 알 것이다.
암흑 물질은 총알 은하의 중력 렌즈 효과를 측정하다 그 존재가 증명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직 그 정확한 정체는 모르지만.
2부는 갑자기 우리 태양계 형성 과정읗 설명하면서 유성체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한다. 소행성의 다양한 종류와 위치 그 다음에 단주기 혜성과 장주기 혜성을 얘기하면서 카이퍼 대와 오르트 구름을 끌어들인다. 참고로 태양계의 지평이 카이퍼 벨트인지 아니면 오르트 구름인지 아직 논쟁 중인데 만일 후자라면 바이킹 우주선은 아직 태양계를 떠나지 못한 것이다. 오르트 구름은 5만 AU 까지 구형으로 펼쳐 있고 지구로부터 1광년 정도 까지이다.
왜 이 책에서 장주기 혜성을 끌어들였냐면 지구의 멸종이 우리가 아는 큰 사건이 5번이 있었고 가장 유명한 것이 6600만년 전 트라이아스기 말에 유카탄 반도에 떨어진 혜성으로 소위 K-Pg 대멸종이다. 그 흔적은 칙슬루브 크리에이터라고 부르는데 모든 관련 분야 전문가가 이 사건이 공룡 멸종의 원인임을 인정한 것이 겨우 2010년 3월이라는 것도 놀라웠다.
여튼 랜들 교수는 다시 파고 든다. 이번에는 지질학자들을 만나고 온갖 장소를 방문하며 증거를 모은다.
랜들 교수는 지구에서 발생하는 멸종이 일종의 주기성이 있다는 여러 연구자들의 주장에 다가가면서 데이터 분석과 시뮬레이션으로 그 주기가 약 3,000만년에서 3,200만년 정도라고 추정한다. (뒷 부분에 가면 히브리 대학 교수팀이 3,200만 년 주기로 지구 기후의 변화가 있다는 주장도 소개한다)
3부에 가서 본격적인 그녀 팀의 분석과 주장이 나온다. 왜 이런 주기가 발생하나? 이는 태양이 은하 중심를 회전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은하 원반의 평면 위 아래로 진동을 하고 그런 상황에서 은하의 조력이 오르트 구름에 작용하여 섭동을 일으켜 혜성이 태양계로 진입하는 사건이 발생한다는 가정을 세운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물질로 만으로는 충분한 조력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추가 질량이 필요했다. 이미 암흑물질은 우리 은하를 구처럼 둥글게 감싸고 있는데 여기서 랜들 교수는 왜 암흑물질 간에 서로 상호 작용하는 종류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암흑물질이 일반 물질과는 아무 작용을 안하지만(중력은 가하지만) 자기들 끼리 우리가 모르는 힘으로 상호 작용하는 것이 일부 있다고 가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암흑물질이 구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은하에 같이 원반의 형태로 존재하는 일부가 있을 것이라는 추론을 하고 이를 유추 계산해 그 중력이 더해지면 오르트 구름에 영향을 얼마나 줄 수 있는 지 계산해 본다. 이게 유명한 암흑 원반 논문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우리 태양계는 원반 평면을 3,200만년 마다 지나치면서 오르트 구름 흔들리고 그 때 일단의 장주기 혜성이 태양계로 진입하다가 파멸적인 충돌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매우 그럴듯 하지만 확인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자는 책을 쓸 당시 발사한 가이아 위성이 은하 중심의 약 10억개 별을 관측할 예정인데 이를 통해 암흑 원반의 존재에 대한 근거가 나타날 수 있다는 기대를 보인다 (그러나 검색해 보니 2017년 UC 버클리 박사 과정 학생이 데이터 분석을 통해 암흑원반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논문을 발표해서 이 가설은 무너졌다고 한다. 물론 랜들은 아직 더 많은 데이터를 봐야 한다고 물러나지 않았다).
놀랍지 않은가? 우주 구조 태양계 생성 그리고 다양한 유성체의 얘기에서 지구 생명체에 가해지는 영향이 어쩌면 우리가 아직 그 정체를 명확히 모르는 암흑물질일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는 것이.
물론 랜들 교수는 현재까지 암흑물질 후보군들에 대해 다 점검하고 어느 것도 아직 인정 받은 것이 없음을 알려주며 동시에 전 세계에서 이를 탐지하기 위한 실험 장비와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우리나라가 언급된 것은 없다)
과학책이 모험과 탐색 과정을 흥미 진지하게 전개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과학 분야가 서로 융합하고 협력할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물리학자와 천문학자가 이렇게 서로 멀리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것도 재미있는 현실이지만)
올해 읽은 과학책 중에서 잠을 아껴 가며 읽은 책이다. 550페이지가 결코 두껍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중간 중간 얘기를 유튜브나 전문 미디어를 통해 확인하면서 읽으면 재미가 두 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