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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상 Nov 27. 2016

맥아더스쿨

인생이모작 사관학교

[인생이모작 칼럼] 느리게 느리게

빠른 게 좋은 세상은 지나갔다. 이제는 느림이 오히려 경쟁력이다. 슬로우씨티나 슬로우푸드 등 슬로우slow로 시작하는 고유명사를 앞다투며 내놓는 시대가 되었다. 지난 40년 간 산업화 시대에는 누가 빨리 무엇을 해내었느냐가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꾸준하게 지속 가능한 것이이 끝까지 살아남는 시대가 된 것이다. 21세기 들어 엄청난 문명의 발달로 세상이 정신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마당에 도대체 왜 한가롭게 느림을 말하느냐고 반문할 지 모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라. 빠르기만 해서 뭐가 달라지고 좋아졌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젊은 날에는 몸도 마음도 민첩하기만 하면 세상을 모두 얻을 것으로 살아왔지만 정작 50세를 넘기고 직장에서 퇴직을 하고 나면 왜 그토록 아웅다웅 하며 살아왔는지 후회하게 된다.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필자는 대학 3학년 때 ROTC를 지원하여 3월 초에 학교 내에서 한 해 선배 기수들로부터 훈련을 받았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갑자기 선착순을 하라고 했다. 열심히 학교 건물을 돌아 뛰어 오면 앞에서부터 몇 명을 불러내고 나머지는 다시 뛰라고 했다. 그런데 열심히 뛰어 돌아와 보니 먼저 들어왔던 동기들이 엎드려 푸샵을 하고 있었다. 선배들 얘기는 의리 없이 먼저 들어와서 그랬단다.

맞다. 선배들은 우열을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모두에게 군기를 불어넣고 동료애를 살려주기 위해 그랬던 것이다. 4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오지만 그래도 순수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필자는 요즘 횡단보도를 지나거나 지하철 열차가 들어올 때 뛰지 않는다. 이번 신호등이나 열차가 지나면 다시 다음 기회가 있는데 조급하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 러시아워 때 복잡한 열차를 보내고 나면 훨씬 덜 복잡한 다음 열차가 이내 도착한다. 과 체중을 조절하기 위해 음식을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평생 습관이 되어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다시 생각해보자. 느려서 손해 보는 일이 얼마나 될까? 괜스레 주위에서 부산을 떠니까 부화뇌동하여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마냥 바쁘기만 한 것은 아닐까? 스마트폰도 너무 자주 들여다보지 말자. 그 시간에 진득하게 종이 냄새 나는 책을 읽자. 시를 쓰자. 음악을 듣자. 하늘을 보자. 여행을 떠나자. 스마트 세상에 아날로그로 살아보자. 스마트 기기를 잘 다루면서도 한편으로 느릿느릿 살 수 있다면 진짜 고수이다. 계절을 느끼고 시간을 아끼고 촉을 발달시키며 인간답게 살려면 이제 빠름을 멈추자. 멈추어야 보이는 것들이 많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어쨌거나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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