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복기는 어떤 자극이나 원인이 작용하여 반응이 나타나기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대나무는 처음 5년간 땅속에서 뿌리를 내리는 동안 우리 눈에는 띄지 않지만 일단 지상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6주 만에 30미터 높이로 자란다고 한다. 얼음은 영하 1도까지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다 0도가 되면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물은 또한 99도까지는 그냥 그대로이다가 100도가 되면 비로소 끓기 시작한다. 우리에게 허튼 노력은 없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내공으로 인하여 결국 때가 되면 대나무처럼 쭉쭉 뻗어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이처럼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자연 현상이 꽤 많다. 문제는 이런 잠복기를 인내하며 견뎌내지 못하고 조급하게 촐싹거리다가 일을 그르치고 만다.
무슨 대단한 일이 아닐지라도 뭔가를 계획하고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면 과정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침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몰입은 이런 짐참의 결과이다. 몰입의 경지에 오르면 목표보다 오히려 지금 진행하고 있는 과정에 더욱 집중하게 되고 때로는 설정했던 목표조차 잊어버린다. 결과는 언제나 이런 몰입과 인내를 먹고 성숙해진다. 지진이 발생하는 순간도 오랜 시간 지각변동으로 인해 두 개의 지질판이 수십 또는 수백 년간 서서히 맞비벼지다가 어느 순간 강력한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회개혁가 야콥 리스Jacob Rils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세상이 날 외면했다고 생각할 때 나는 석공을 찾아간다. 석공이 100번 망치를 내리치지만 돌에는 금조차 가지 않는다. 그러나 101번째 내리치자 돌이 둘로 갈라진다. 나는 그 마지막 타격으로 돌이 갈라지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그건 그전에 계속된 내리침의 결과이다.
세상에 쉬운 일은 애당초 없다. 공짜도 당연히 없다. 무슨 일이든 계획하고 시작하고 일의 성취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끝까지 기다리면 반드시 결과는 나오게 되어 있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다. 잠복기는 숙성을 위한 프로세스다. 어설퍼보이는 계획과 실행일지라도 잠복기를 거치는 동안 단단하게 다져지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착각 속에 산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런 잠복기가 필요하지만 자신에게는 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간단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유혹에 누구나 쉽게 빠진다. 어느 누군들 힘들고 어려운 잠복기를 감내하지 않고 지나갈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내공이 쌓이지 않는다. 내공이 축적되지 않으면 갈대처럼 내부 혹은 외부 환경에 쉽게 흔들리고 만다.
잠복기도 전체 프로세스의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겪지 않으려고만 노력한다면 쉽게 낙담하고 단념할 수 있다. 진정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일일수록 이런 잠복기는 힘들고 더욱 어렵다.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듯이 결국 그 과정을 통과하면 탄탄대로를 만나게 된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무엇을 해도 만만치 않은 시대를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창직이 부각되는 이유는 기존의 직업이 소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새로운 기술이 물밀 듯 몰려오고 밀레니얼 세대는 이제 직업군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다. 소위 신인류라고 부르는 이들과 함께 불활실성이 가득한 미래로 나아가기 원하지만 앞으로 어떤 커다란 파고를 만날 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잠복기를 잘 견뎌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