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모작 칼럼] 멈추면 보인다
멈춰야 보인다. 달려가면 놓치는 것들이 신기하게도 멈추면 눈이 고스란히 들어 온다. 현대인은 너나 없이 중병을 앓고 있다. 바로 멈추지 못하는 삶이다. 마치 브레이크가 없는 열차와 같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지만 끝까지 그래도 속도가 중요하다며 목표도 없이 달려 간다. 이제 멈추어야 한다. 스스로 멈추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멈추게 된다. 베이비부머의 직장생활 30년, 이제는 잠시 멈춰 서서 주위를 살펴볼 때가 왔다. 때가 되어 일모작 직장에서 퇴직했다면 이제 과연 인생이모작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가를 생각할 때가 온 것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며 지나다녔던 길이지만 정작 다시 도보로 그 길을 가보면 놀랍게도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 여행을 하며 증명사진만 열심히 찍는 사람은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의 디테일을 보지 못한다. 인공지능 구글 알파고와 싸워 네 번째 만에 승리한 바둑 천재 이세돌 9단은 세 번이나 연거푸 패배하고 난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멈춰 복기하며 전의를 다졌다고 한다. 멈출 줄 아는 자는 인내심이 있다. 모두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세상에서 의도적으로 멈춤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다시 시작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경쟁력이다. 자신을 바로 아는 것이 도약을 위한 발돋움이 된다.
가끔 포럼에 가보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꽤 있다. 주로 지위나 명예가 높은 사람일수록 인사를 주고 받을 때 건성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관심은 그들 자신보다 더 높은 지위와 명예를 가진 사람을 찾아 얼굴 도장을 찍는 것이 목표이다. 그래서 웬만한 사람과는 눈동자 조차 마주치지 않는다. 명함을 건네는 순간 얼굴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가 있다. 우리가 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 같이 그들이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며 그들 앞에 멈추어 서서 정중하게 인사하고 대화했던 하는 사람들이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런 일에 관심이 도무지 없다.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에 얼굴을 파묻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런 극히 휘발성이 강한 소비적인 행태을 잠시 멈추고 조용히 눈을 감고 주위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 봄이 오는 소리, 열차 바퀴가 레일에 닿는 소리 등 사소한 소리를 들어 보라.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의 소리이다. 멈춰야 보이기 시작한다. 하던 일을 멈출 때 여태 들리지 않던 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한다. 빠름을 멈추면 느림이 찾아오며 느림은 행복을 업고 온다. 행복은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내 것으로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행복을 미루지 말자. 지금 행복하자. 그러기 위해 멈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