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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브 고 Jan 24. 2021

10. 아이는 천천히 말한다.


마틴 루터 킹(미국 인권 운동가이자 목사), 스티브 잡스(미국 애플사의 창업자), 버락 오바마(미국 44대 대통령), 세 살짜리 유치원생 간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말을 천천히 할 때 생기는 강력한 힘을 알고 있다. 영어 말하기의 속도는 1분 동안 몇 개의 단어를 말하는지(wpm words per minute)로 측정한다. 마틴 루터 킹의 명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에서 중요한 구절에서 92 wpm(분당 단어수)의 속도를 사용했고, 스티브 잡스는 2007년 아이폰을 공개했던 전설의 프레젠테이션에서 94 wpm의 속도로 이야기를 풀어냈으며, 오바마 대통령 역시 하이라이트 부분에서는 말하기 속도를 112 wpm까지 낮추어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의 라이벌인 3세 아이의 평균 말하기 속도는 120 ~ 124 wpm이다. 아이들은 의도적으로 말하기 속도를 낮춘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한다는 면에서 스피치의 대가들과 견주어 뒤지지 않는 듯하다.

연령별 말하기 평균속도

이들과 비교했을 때 본인의 영어 말하기 속도는 얼마나 될까? 본인이 잘 알고 있는 단어나 숙어, 회화 패턴은 일반 성인 수준으로 말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자신의 영어 스피킹을 녹음해서 들어보면 중간에 말을 생각하기 위해 멈추는 부분이나 의미 없이 반복되는 단어를 제외하면 실제로 말하는 단어의 개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영어를 그래도 꽤 빠르게 잘하는 편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여러 외국인 친구들에게도 ‘스티브, 너 영어 좀 한다’라는 말을 종종 듣고 다녔다. 적어도 유치원에서 일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유치원에 부임해서 처음으로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지시사항을 (내 생각에는) 능숙하게 내렸을 때 아이들의 반응을 기억한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못했다. 말은 안 해도 이미 얼굴에서 티가 났다.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딱 봐도 ‘이건 아닌데’라는 말을 몸으로 하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영어를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내가 말하는 속도를 전체적으로 낮춰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실행에 옮겨봤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내가 하는 말에 점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반응을 보이니 자신감은 점점 더 생겨났고, 자신감은 좀 더 다양한 표현과 내 말의 실제 속도를 점점 높여주었다.


영어로 말하기를 할 때 단순히 말하는 속도를 낮추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효과를 줄 수 있다. 첫째로 천천히 말을 하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본인이 영어로 말을 할 때, 원어민의 첫 번째 반응이 “Sorry?(예? 뭐라고요?) " "Pardon?(잘 못 들었어요. 다시 말해줄래요?)"가 자주 나온다면 본인의 영어 말하기 속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 천천히 말한다고 결코 미숙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없는 표현은 그저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는다. 의사전달에서는 속도보다는 정확성이 우선시된다. 둘째로 말을 천천히 하면 다음 표현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된다. 특히 영어가 외국어인 우리에게는 적절한 단어 선택과 표현방식을 생각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말을 천천히 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또한 말을 천천히 한다는 것은 단순히 속도를 낮추는 것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호흡이 안정되고 좀 더 편안한 심적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 좀 더 창의적인 표현이 가능해진다.     


말하기 속도를 좀 더 정확하게 느껴보고 싶다면, spreeder라는 웹사이트를 소개하고 싶다.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말의 분당 단어수 (wpm words per minute)와 청크(chunk 연결된 단어의 수)를 세팅하고 시작 버튼을 누르면 어느 정도의 속도인지를 체감해볼 수 있다.


영어 말하기를 익히는 과정은 악기를 배우는 과정과 많이 비교된다. 특히, 영어에는 한국말에는 존재하지 않는 강세라는 특징과 억양이 합쳐져 만들어내는 특유의 리듬이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말은 음의 높낮이가 다이나믹하지 않고 일정한 억양이기 때문에 정말 악기 연주를 배우는 심정으로 임해야 하는 게 어느 정도 맞는 말 같다. 악기를 배워본 경험이 있다면 악기를 배울 때 빠른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이를 가능하게 할 기본기와 자세가 굉장히 중요하다가는 걸 알 것이다. 기본기와 자세가 확실히 잡은 뒤에 연주의 속도를 점차적으로 높임으로 화려한 연주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영어 말하기도 이와 같은 원리다. 영어의 기본인 단어부터 정확히 습득한 후에 단어와 단어를 하나씩 연결해가면서 속도를 붙여야 능숙한 영어 말하기가 가능해진다. 

말하기 속도를 조금 낮추고, 천천히 다시 시작하자. 영어로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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