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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브 고 Jan 26. 2021

11. 아이는 솔직하다.

영어로 말하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말을 해야 하고, 말을 하기 위해서는 대화를 주고받을 상대방이 필요하다.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과목을 ‘영어회화(Conversation)’라고 한다. 혹시 우리가 영어회화 시간에 배웠던 내용 중 기억나는 부분이 있을까? 영어회화 교과서마다 다르겠지만, 이런 대화 장면이 생각날 것 같다.


영어회화 교과서 중


상대방이 “How are you?(잘 있어?)”라고 물으면 “I'm fine, thank you. And you?(난 잘 있어, 고마워. 넌 어때?)’”라고 대답하는 내용이다. 이후 서로의 괜찮음을 확인하고 안부를 묻는 이 챕터는 정리가 된다. 이 장면은 한국인이 외국인과 대화하는 실제 상황에서도 똑같이 반영된다. 세상에 무슨 천재지변이 나에게 일어나도 나는 언제나 “I'm fine (난 잘 있어”이다. 그리고 상대방은 내가 괜찮다고 하니 그런 줄로 알고 대화를 마친다. 마음은 외국인과 더 대화를 하고 싶어도 상대방에게 대화를 들어올 공간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는 대화를 더 이어갈 수가 없다.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원어민이 상대의 허락도 없이 함부로 사생활을 묻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대화를 더 이어가도 굉장히 어색한 상황이 연출된다. 내가 “난 잘 있어”라고 말했는데, 상대방이 “왜 잘 있어?”라고 물어본다고 생각하면 정상적인 범주에서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이처럼 대화의 단절을 피하기 위해선 솔직함이 필요한데, 우리의 라이벌 36개월 아이들의 경우는 어떤지 살펴보자.


원어민 아이들은 정말 솔직하다. 솔직해도 너무 솔직하다. 아침에 친구들의 안부를 묻기도 전에 이미 울면서 유치원에 들어온다. 엄마, 아빠랑 헤어지기 싫은 나이다. “왜 울어?” “엄마 보고 싶어?” “엄마 곧 올 거야.” “엄마가 기뻤으면 좋겠지? 엄마도 네가 우는 모습 보면 기뻐하지 않을 거야.” 우는 아이와의 대화는 최소 20-30분은 족히 이뤄진다. 우는 아이가 아니면 많은 친구들의 경우 들어오자마자 자기가 있었던 이야기를 바로 시작한다. “저 어제 신발 샀어요.” “저 머리 잘랐어요.” “엄마가 오늘 어디 놀러 가야 된다고 일찍 데리러 온데요.” 이런 친구들과의 대화는 또 진정시키는데 20-30분이 걸린다. 두 극단적인 부류에 공통점이 있다. 바로 솔직한 모습에는 상대방의 반응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너무 솔직하기 때문에 대화 이어 나가기를 잘할 수밖에 없다.

<로버트 플루치크의 감정의 바퀴>


그렇다고 우리가 마냥 아이들에게 뒤처지는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아직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이름표가 다 붙여지지 않은 상태이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기뻐서 흥분한 건지, 놀라서 흥분한 건지, 화나서 흥분한 건지 구분을 할 줄 모른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수시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어떤지를 묻고 확인시키며 각각의 감정을 뭐라고 부르는지 교육한다. 싫으면 울고, 짜증 나면 울고, 화나면 울고, 미안해도 울고, 잘못해도 우는, 모든 감정을 울음으로 표현하는 아이들에게 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아이들에게도 울면 다 끝나는 편안한 상태에서 감정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작업은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반면 우리들은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을 구분할 수 있고 또한 말로 표현할 수도 있다. 다만 그 언어가 영어가 아닌 한국어라는 점이 우리의 숙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싫으면 싫다’고 말을 못 할까? 본인의 내면을 솔직하게 살펴보면, 아마 ‘영어로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부담스러워서 피하는 것’일 것이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되려면, 또 상황을 설명해야 하고, 이유를 영어로 설명해야 한다. 영어로 잘 설명하지 못할 것 같고, 실수라고 할까봐, 영어를 못하는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냥 ‘I’m fine(괜찮아요).’라고 회피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화의 단절을 본인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인 셈이다. 대화하는 상대방이 나의 성향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관계가 아니라면 본인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대화는 솔직함을 바탕이되어 이어질 수 있다.


우리가 속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아마 내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할 단어를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모르는 단어는 알아가면 되는데, 기본적인 감정표현을 살펴보기에 앞서, 감정과 기억간의 관계를 살펴보도록 하자. 영어 단어는 우리 뇌에 가지 형태로 저장된다. 하나는 비교적 짧은 시간동안 기억이 되는 단기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오랜 시간 동안 잊혀지지 않고 남아있는 장기기억이다. 영어를 배우는 학습자의 목표는 단기기억으로 저장된 단어들을 장기기억으로 전환시키는 것인데, 이 감정이라는 영역이 기억의 전환에 굉장한 역할을 한다. 단기기억은 오랜 시간 반복된 숙달을 통해 전환되기도 하지만, 사람의 감정이 자극된 환경에서 익히는 단어는 단기기억보다 장기기억의 형태로 저장되기 쉬워진다. 따라서 감정을 실어서 말하는 학습방법은 굉장히 효과적인 언어습득 방법이다.


https://drive.google.com/drive/folders/1iPyW-DN6J-4_U1WFrEpDnP2sHkOmfjow?usp=sharing


오늘은 원어민 아이들이 배우는 감정 표현 단어를 준비했다. 공부법은 항상 동일하다. 단어를 익히는 방법은 알파벳 철자를 보지 않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림을 눈으로 보고, 녹음된 영어 발음 파일을 귀로 듣으면서, 그 영어 단어를 입으로 출력하는 단계를 반복하는 것이다. 여기서 덧붙여서 한국어로 알고 있는 각각의 감정표현을 영어 단어에도 동일하게 대입시켜보자. 한국어로 이름 붙여진 감정의 이름을 영어 이름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학습이 아닌 습득의 작업은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줌으로 그 존재를 살리는 방법이다. 이미 우리 머릿속에는 수많은 영어 단어들이 이름을 불러주기만을 수 년째 기다리고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다.’ 살려보자, 우리 머릿 속의 영어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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