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영화 <기생충>과 함께 인기 검색어를 장악했던 이름이 있다. 바로 통역사 ‘샤론 최’다. 아카데미 시상식 소감 발표 통역을 맡으며 일명 ‘봉준호의 입’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그녀의 통역 실력에 대한 극찬이 쏟아졌다. 봉준호 감독의 말이 끝나자마자 통역을 시작하는 놀라운 반응 속도는 전문 통역가들 사이에서도 믿기 어려울 정도의 실력이라며 놀람을 금치 못한다. 샤론 최는 통역을 빠르게 한다는 특징 이외에도 단어나 구절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전체의 뜻을 잘 살리는 의역을 굉장히 잘한다는 특징이 있다. 단어 하나하나 집착을 했다면 아마 그렇게 빠른 속도의 통역을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지금 영어를 기초부터 배우는 영린이(영어 어린이)들 앞에서 왠? 통역사? 이야기하는지 의아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 아는가? 우리 아이들이 의역을 굉장히 잘한다는 사실. 물론 아이들은 전문 통역사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표현하는 말을 잘 들어보면 그 창의성이 전문가를 뛰어넘는다. 문법이나 형식에 갇혀있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단어나 감정을 표현하는데, 그 뜻은 통한다.
우리가 아이들의 창의성을 따라 하는 불가능한 일을 해보자는 말은 아니다. 아이들은 알고 있는 단어가 많지 않지만 그 단어들을 활용해서 표현해내는 그 방식을 배워보자는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여기 '꽃병' 이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걸 영어로 뭐라고 할까요?”라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답할까?
꽃병에 해당하는 단어인 'vase'를 말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꽃병을 말하는 정확한 단어를 모르는 분이라면 ‘아~ 외웠는데 까먹었다’, ‘v... 모였는데’, ‘사전 찾아봐야지.’라고 생각하면서 아무 답을 하지 못한 분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뭐라고 대답했을까? 실제로 유치원에 아이들 중에는 꽃병에 해당하는 ‘vase’라는 단어를 아는 아이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렇게 표현했다. ‘a flower bottle(꽃 병)’, 'a bottle for flower(꽃을 위한 병)' 조금 더 표현력이 좋은 친구들은 ‘a square(rectangular) purple water bottle for flower' 이라고도 이야기했다. 우리들과의 차이가 느껴지는가? 우리는 '꽃병'에 해당하는 단어에만 집착하다가 말을 못 하는 반면, 아이들은 자신이 아는 단어를 활용해서 적게는 2 단어 많게는 5 단어까지도 활용해서 말을 만들어서 한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엄청난 차이다. 우선 아이들은 말을 했고, 우리는 말을 못 했다. 더불어 우리는 아이들은 다섯 단어까지도 말을 했다. 이런 단어 하나하나가 모이면 아이들은 엄청난 양의 단어를 표현하는 연습을 하게 된다. 이전 시간에 소개한 50개의 단어를 굉장히 우습게 봤을 것이다. 그렇게 쉬운 단어를 활용해서 엄청난 양의 스피킹 훈련을 할 수 있고, 다양하게 조합하면 수많은 단어들을 표현할 수 있다.
아이들이 익히는 단어들은 굉장히 직관적이다. 어떤 사물을 판단하거나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튀어나올 수 있는 단어들이다. 색깔이나 크기, 모양 등의 낱말들을 가장 먼저 익히는 이유는 이런 직관적인 단어들을 시작으로 어휘를 점차 풍성하게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유아용 낱말카드를 다 큰 어른이 들고 다니는 게 유치하고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감히 이야기하건대, 그 생각은 틀린 생각이다. 사고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이런 직관적이고 유치한 단어들에서 시작해야 응용력을 기를 수 있다. 이 단어를 서로 붙이고 떼어보고,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을 해보면서 표현력이 느는 것이다. 모든 분야에 고수들을 만나보면 하나같이 ‘기초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영어 스피킹의 기초는 직관적인 단어이다. 그리고 그 단어들의 조합해서 말하는 연습이다.
한국식 표현을 영어로 바꾸어 표현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먼저 문법이 다르고, 표현하는 순서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바꾸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진다. 우리나라식 표현은 배경을 먼저 설명하는 반면 영어는 주어(주체)를 먼저 설명한다. 예를 들어 다음 그림을 보자.
한국식은 ‘식탁 위에 있는 꽃병’이다. 반면 영어식은 ‘꽃병, 식탁 위에 있는’으로 표현한다. 짧은 문장이라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한국식 문장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영어로 표현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영어식 표현으로 순서를 바꿔야 하고, 이를 또 그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로 바꾸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한국식 표현은 문화적으로도 영어식 표현과 다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먹는다’는 표현을 상당히 다양한 의미로 사용한다. 우리는 충격도 먹고(충격도 받고), 마음도 먹고(다짐도 하고), 나이도 먹는다(나이도 든다). 만약에 "나 나이 좀 먹었어"를 영어로 그대로 표현한다면 어떨까? "I've had ages a bit(?)" 나이를 삼켜 먹는 SF 공상과학 영화에서 나올 법한 인물이 된다. 외국인에게 나이를 먹는다는 개념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 머릿속에 자꾸 먼저 떠오르는 한국말과 한국식 표현을 어떻게 영어식으로 바꿀 수 있을까? 내가 제안하는 방법은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 그림을 직관적인 영어단어를 사용해서 뱉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예전에 이야기 나눴던 표현 ‘우리는 가부장제에서 자랐어.’라는 표현을 하고 싶다고 하자. 굉장히 한국적 표현이다. ‘가부장’이 영어로 뭐지? Patri.a.. r... 생각을 멈추고, 재빨리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아빠는 가만히 앉아서 움직이지 않고 이런저런 지시만 내리는 모습을 그렸다면, "In my country, dads had absolute power. "라고 표현할 수 있다. 또는 엄마가 모든 집안일 혼자서만 다 하는 모습을 그렸다면, “Dads just talk and moms do everything in my country.”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 정확한 표현은 아닐 수 있지만, 쉬운 단어를 사용해서 그 뜻은 충분히 전달이 가능하다.
영어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분에게는 색깔이나 모양, 크기와 같은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활용해서 눈에 보이는 사물을 조합해서 영어로 말해보는 연습방법을 추천한다. (예. 사과는 a circle red juicy fruit 이런 식으로 쉬운 단어를 계속 조합해서 표현해보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사물들을 쉬운 단어로 표현하는 연습은 추상적인 표현에도 동일하게 사용할 수 있다.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을 지금의 연습한 방식대로 그냥 툭툭 내뱉으면 아주 훌륭한 영어 말하기가 된다.
내가 영어를 조금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나 심지어 통번역가로 활동하시는 분들에게도 이 공부법을 추천한다. 한국식 표현을 직역하거나 그에 해당하는 슬랭(Slang)이나 이디엄만 찾기보다 그 한국식 문장을 머릿속에 그림으로 그려보자. 그리고 그 그림을 직관적으로 표현해보자. 이런 연상법은 통번역 속도를 좀 더 높여줄 수 있고 창의적인 나만의 표현이 나오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아이들 단어 무시하지 말자. 영어 스피킹의 기본은 이 직관적인 단어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