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득식 영어학습법 '바블링 원칙 2'
영어 알파벳의 조합으로 생긴 비슷한 모양의 영어단어라고 해서 다 똑같은 단어가 아니다. 단어에도 그 질감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질감은 각 영역마다 다르다. 영어단어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hat(모자)’라는 단어와 ‘hot(뜨거운)’이라는 단어는 비슷한 알파벳의 형태이지만 각각 질감이 다른 단어다. ‘모자’는 눈에 보이는 사물을 가리키는 단어(명사)이고, ‘뜨거운’은 상태나 느낌을 표현하는 단어(형용사)이다. 그냥 단어장에 적어놓고 외우면 되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영어를 한국말에서 해석해서 말하지 않고, 반사적으로 튀어나오게 하려면 이 두 단어를 익힐 때는 다른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
원어민 아이들이 영어로 말하는 단어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단어는 ‘눈에 보이는 단어’다. 원칙 1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현재 내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다. 물건을 저장해서 나중에 먹겠다는 개념이 아직은 없다. 그리고 그런 개념을 표현할 수도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개념이 지배적이고, 아직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가리킬 수 없는 추상적인 개념은 아직 형성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반면 성인인 우리는 이미 추상적인 개념이 머릿속에 자리 잡혀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좋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 좋지 않게 작용한다. 아이처럼 추상적인 개념이 잡힐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학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개념과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개념을 구분하지 않고 막연하게 학습하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는 단어와 눈에 보이지 않는 단어는 어떻게 다를까? 뇌 과학에서는 언어를 담당하는 영역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시각정보와 청각정보를 바탕으로 언어정보를 해석하고 처리하는 영역인 베르니케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말을 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브로카 영역이다.
우리가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눈으로 받아들인 시각정보는 그 사물이나 상황에 해당하는 청각정보(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를 베르니케 영역에서 찾아낸다. 그리고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해석이 완료가 되면 브로카 영역으로 전달해서 말을 하기 위한 각 근육 신경(성대, 입술, 광대 등)을 통해 말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단어는 시각정보만으로도 말하기를 할 수 있는 반면,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단어는 시각정보 이외의 감정이나 감각을 담당하는 뇌의 다른 영역의 개입이 있어야 언어로 말을 할 수 있다.
복잡해 보이는 뇌 과학 이야기를 쉽게 이야기하면, 눈에 보이지 않은 단어는 눈으로 만으로 익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시각정보가 아닌 다른 영역에 집중하면서 단어를 익혀야 한다. 예를 들어 ‘물방울이 송송이 맺힌 차가운 컵’을 보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 장면을 눈으로 보면 느껴지는 ‘차가운’ 감정이 있을 것이다. 이 감정은 컵 주위에 맺힌 ‘물방울’과 컵 안에 있는 ‘얼음’을 보고 느껴지는 감정이지, ‘물방울’이나 ‘얼음’은 그 자체는 아니다. 물방울과 얼음을 보고 느껴지는 이 ‘차가운’이라는 감정을 지칭하는 단어를 익혀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눈에 보이지 않는 단어는 어떻게 학습해야 할까? 우리는 이런 추상적인 단어를 익힐 때 학습 속도를 잠시 줄어야 한다. 그냥 눈에 보이는 단어를 익힐 때와는 다른 태도로 준비해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으로 가볍게 눈을 감는 방법을 추천한다. 시각정보의 유입을 의도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그러면 시각정보 없이 그 단어에 해당하는 정보를 머릿속에서 찾게 된다. 그리고 단어에 해당하는 음성정보를 듣고 그대로 따라 말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라면 최대한 집중을 해서 그 감정을 이입해보자. 전문 연기자처럼 감정을 몰입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렇게 한다면 더욱 효과적이기는 할 것 같다.) 그냥 가볍게 눈을 감는 행동 하나 만으로도 다른 단어와는 다르게 접근한다는 태도가 반영되기 때문에 뇌도 어느 정도 나의 의도에 협조해줄 것이다. 그렇다고 계속 눈을 감고 있을 필요까지는 없다. 해당 단어를 말로 따라 했다면 바로 눈을 떠도 된다.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눈에 보이는 단어만 먼저 학습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단어를 나중에 학습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두 단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까지는 기본기였다.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면, 다시 이론부터 원칙 1,2까지 충분히 익히고 따라왔으면 한다. 이제 곧 엄청난 양의 영어 말하기 응용이 시작된다.
마치 말이 터져 나오는 아이처럼, 우리의 바블링(Babbling 옹알이)은 이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