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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상철 Feb 02. 2016

영화 <스티브 잡스>와 불광불급

불광불급이라는 말이 있다. 미치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한다는 의미인데, 일부 학자들은 잘못된 한자 사용이라 지적하지만 난 이 말이 마음에 든다. 해석 자체도 직관적이고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라는 뜻풀이의 라임이 착착 달라붙어서 좋다. 무엇보다 이런 태도는 내가 늘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영화 <스티브 잡스>는 이 사자성어와 그 궤를 같이한다. 자기 관점에 맹렬하게 집착하는 천재 비즈니스맨을 제작진 또한 집요하게 한 가지 시선에서 파고든다.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은 인생 자체가 워낙 비현실적으로 역동적이라 이야기할 거리가 무척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아론 소킨과 대니 보일은 이 구성이야말로 스티브 잡스를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영화는 오로지 갈등이라는 테마에만 주목한다. 세 번의 역사적인 프레젠테이션 장면 뒷이야기를 다루지만, 정작 프레젠테이션 자체는 한 번도 안 나온다. 잡스와 그 주변 인물의 갈등에만 포커스를 둔 것이다. 한정된 공간에 제한된 인물들의 감정을 집요하게 파고든 그 틀이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의 색깔을 그대로를 드러낸다. 미친 듯이 심플함에 집착하고, 사소한 디테일조차 타협하지 않는 그 집요함 말이다.


스티브 잡스의 일화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몰입이 잘 되는 영화다.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저런 사람이 어딨어?’ 하겠지만, 실제로 여러 가지 증언들을 통해 영화가 과장이 아님은 쉽게 알 수 있다. 잡스의 철학과 비즈니스 마인드를 잘 아는 나로선 인물의 괴팍함과 갈등보다는 대사와 구성이 더 흥미로웠다. 일반적인 영화였다면 중간중간 가벼운 장면이 들어갔을 법도 하건만, 시종일관 한 방향으로 몰아붙이는 걸 보니 이것이야말로 잡스를 잘 표현하는 방식이구나 싶어 감탄했다.


기존에 애쉬튼 커쳐가 주연했던 영화 <잡스>는 밋밋하기 그지없는 전기 영화였지만, 아론 소킨과 대니 보일의 영화 <스티브 잡스>는 정말 잡스의 캐릭터와 맞게 무엇에 집중하는 게 중요한지 아는 영화다.


돈이라면 거의 무한대에 가깝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온갖 비난을 감수하면서 자기 신념을 지키고, 비즈니스에 집착할 수 있다는 건 어떤 의미로는 정말 미치지 않고선 못하는 일이다. 돈이 없던 시절에도 돈이 아닌 오직 자기 철학과 비즈니스에만 미쳐있던 그 열정이 목표를 달성하게 한 기제가 아니었을까.


융통성이나 타협을 중시하는 나에겐 어떤 의미에선 큰 자극이 된 영화다.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매킨토시에서 ‘Hello’가 목소리로 안 나온다고 동료를 죽일 듯이 잡는 잡스를 보면서 ‘저러고 사회생활이 가능한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런 확고한 자기 신념과 의지가 한 편으로는 부러웠다.


로또 복권 한 번만 당첨돼도 회사 그만두고 여행 다닐 궁리하는 일반인들은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미친 열정을 간접 체험해 보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다. 그것도 이렇게 싼 가격에 말이다.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는 걸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스티브 잡스의 인생은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출처: 머니맨(http://moneyman.kr/archives/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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